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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진택 Nov 01. 2019

친일 친미만이 유일한 해법인가?
- ①

쿠르드의 눈물



많은 사람들이 독립군이 청산리 대첩과 봉오동 전투에서 일제에 대승을 거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이후의 역사는 역사책에서 어째서인지 그다지 자세히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봉오동 전투 이후 우리 독립군의 역사는 최근 쿠르드족의 상황과 비슷한 점이 있다.


독립군을 추격하던 일본군이 대패를 당하고 숨어버린 독립군을 찾지 못하자, 일제는 약 4개월에 걸쳐 간도 지역의 수많은 한인 마을을 불태우고 수만 명의 한인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간도 참변 이후 간도와 만주,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해온 4천여 명의 독립군 부대는 1921년 6월 소련의 영토인 알렉세예프스크(자유시)로 집결했다. 이곳에서 독립군은 대한 의용군과 고려 혁명군의 두 세력으로 나뉘어 군권을 놓고 대립했다. 


일제는 소련 정부에 독립군의 무장해제를 요구했고, 소련은 일제에게 캄차카 만 연안 일대의 어업권을 받는 대가로 대한 독립군에게 무장해제의 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저항하는 독립군을 공격했다. 이를 흑해사변, 또는 자유시 참변 등으로 부르는데, 이 사건으로 대한 독립군은 매우 큰 피해를 입고 다시 재기하지 못하고 만주 등에서 산발적인 무장투쟁만을 하게 된다.


흑해사변이 독립군 내에 이르츠쿠파와 상해파 등 파벌이 나뉘어 분열이 일어나 서로 살상한 사건이라고 폄훼하는 경우가 있는데, 소련 공산군이 이르츠쿠파 공산당(고려 혁명군)과 함께 대한 의용군 주둔지를 포위하고 대규모 공격을 가한 것이다.  



애당초 홍범도 장군은 1918년부터 일본군이 러시아 10월 혁명을 탄압하고 백군을 지원할 때 적군(볼셰비키 혁명군)과 함께 반일 투쟁을 벌이며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소련 혁명군은 혁명을 위해 대한 독립군을 용병으로 사용하며 도움을 받았으나 이후 일제의 외교 공세에 굴복하여 독립군을 토사구팽 하게 된다.


이는 혁명 직후 불안한 정세에서 내전을 우려해 일제와의 충돌을 피한 것일 수도 있으나 장기적으로 부동항을 원하는 소련 입장에서는 기회가 되면 한반도를 침략할 생각도 없지 않았기 때문에 잠재적인 위협 요소를 제거한 것일 가능성도 있다.


흑해사변에서 많은 독립군 부대가 피해를 입을 때 홍 장군의 부대는 중립을 지켜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고, 남은 독립군 부대들은 나중에 소비에트 적군 소속으로 개편되었으나, 1922년 볼셰비키 정권이 일본의 시베리아 철수 조건으로 내건 한인 독립군의 해산을 받아들여 이를 명함에 따라 이후 무장투쟁 활동은 더 이상 지속되지 못했다.




쿠르드족 분열의 역사

쿠르드족은 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 등에 걸쳐 존재하는 산악 지방에 여러 작은 부족 단위로 모여 살고 있으며, 주변 아랍 국가들과 다른 독립적인 언어와 문화를 보유하고 있다. 나라가 없는 민족 중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추정 인구는 3천만에서 4천만 명 정도 된다.



쿠르드족의 전통적인 종교인 야지디교는 상당히 유래가 깊다. 야지디교도들은 조로아스터교의 조로아스터(자라투스트라)가 쿠르드인 성인이며, 유대교는 야지디교를 베낀 종교이고 기독교와 이슬람 역시 쿠르드족 민족종교의 표절이라고 주장한다.


조로아스터교는 최초의 유일신 신앙이라는 말도 있는데,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은 아후라 마즈다 외의 다른 신은 모두 거짓이라고 했지만 아후라 마즈다는 여러 가지 불사의 존재나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등 다신론적 세계관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중동에 남아있는 조로아스터교는 이슬람교에 비해서 매우 교세가 약하고 신자 수도 극소수이지만, 한때는 페르시아의 국교였고 불교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등 고대 인류 문화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은 사실이다.


성경외전 등에 자세히 묘사된 사탄을 비롯한 악마 이야기는 성경이 만들어질 당시 성경을 저술하던 세력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조로아스터교에서 전승된 이야기들을 적대적으로 해석하며 서술된 것일 가능성이 꽤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에서는 쿠르드족의 민족종교를 악마와 뱀을 숭배하는 종교라고 매도하며 핍박해 왔다. 


애당초 쿠르드족은 종교색이 강하지 않은 산악 오지의 가난한 유목민 무리에 불과하며 많은 시간이 지나 현재 쿠르드족에는 민족종교보다 기독교나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이 더 많게 된 상황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핍박하고 있는 터키와 같은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이 가장 많다.


쿠르드족은 오스만 제국 아르메니아 학살 사건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라고 알려져 있다. 



오스만 제국은 한때 흑해 일대와 발칸 반도 전체,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아라비아 반도까지 영향력이 있던 거대한 제국이었는데,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점차 국력이 기울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동맹국의 일원으로 연합국에 패배한 후 대다수의 내부 소수민족이 독립해 나가 대부분의 국토를 잃은 뒤 술탄 제도를 폐지하고 터키 공화국으로 재편되었다.

오스만 정부는 제국 내 여러 민족들의 독립운동을 막기 위해 종교를 떠나 튀르크 민족주의에 반항하는 세력은 모두 제거하겠다며 닥치는 대로 학살을 벌였는데, 희생자 수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으나 100만에서 150만 명으로 추산된다.

쿠르드족은 애당초 여러 부족으로 나누어져 살았기에 서로 동족으로 여기지 않아 서로가 죽고 죽이는 비극을 연출했으며, 이 시기에 쿠르드는 독립 국가를 건설해주겠다는 영국을 믿고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는데 일조했으나 배신당해서 뿔뿔이 분단되었다.


오스만 제국이 쿠르드인을 이용해서 학살을 벌였다가 쿠르드인의 배신을 두려워해서 다시 쿠르드인 학살을 했다는 시각도 있다.


쿠르드가 독립을 하지 못했던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쿠르드인 스스로가 통합이 되지 않아 통일된 공동체를 이루지 못한 것이며, 현재까지도 극렬 독립파와 터키의 지지를 받아 자치를 주장하는 무리들이 자기들끼리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이는 등 내부적으로 세력 분열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의 끝없는 배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 선언 후 미국 온라인 뉴스 매체 더 인터셉트에서는 쿠르드족이 지난 100년간 수차례 미국을 돕거나 믿다가 배신당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이라크에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고 압둘카림 카심 장군이 서방 세력에 맞설 것을 천명하자 쿠르드족에게 무기를 지원하고 이라크 중앙정부에 맞서게 했는데, 1963년 미국의 지원을 받은 바트당이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카심 장군을 제거하자 쿠르드에 대한 지원을 즉각 중단했으며, 이라크의 새 정부는 미국이 지원한 네이팜탄 등 군수 물자를 사용해서 쿠르드족을 진압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친미에서 친소련으로 돌아서자 미국은 이라크의 쿠르드족을 다시 무장시켜 중앙정부에 맞서게 했는데, 당시 친미 국가였던 이란을 통해 무기를 공급하려고 했지만 이란은 이라크의 쿠르드족이 독립을 추진하면 자국의 쿠르드족도 동요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오히려 사담 후세인과 협정을 맺었다. 이후 후세인이 쿠르드족을 공격해 수천 명을 살해했지만 미국은 수수방관했다.


이란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1988년 3월 이라크 정부는 쿠르드 마을 할라브자에 신경가스를 살포해 수천 명을 살해했다. 당시 레이건 정부는 이슬람 혁명으로 반미정권이 들어선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국제 사회가 금지한 화학무기를 사용해 학살을 저지른 이라크를 제재하기는커녕 오히려 지원했다. 사담 후세인은 미국을 도왔다는 이유로 18만 명 이상의 쿠르드족을 학살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점령하자 미국 주도의 연합군이 이라크를 공습하며,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군대와 국민이 스스로 나서서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권좌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쿠르드족이 이에 호응해 봉기한 후 이라크군이 진압에 나서자 미국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클린턴 정부는 나토 동맹국인 터키에 무기를 지원했는데, 터키가 이를 사용해 수만 명의 쿠르드족을 살해하고 수천 개의 마을을 불태우는데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충격과 공포 작전으로 유명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쿠르드족 민병대 페슈메르가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적극적으로 도왔고, 전쟁으로 국경이 사라지며 독립의 꿈에 부풀었으나 2007년 터키가 국경을 넘어 쿠르드 지역을 폭격하고 지상군을 투입했다. 이는 이라크를 점령 중이던 미국이 승인한 폭격이었다.


2019년 트럼프 정부가 터키를 이용해 쿠르드 족을 제거하려고 한 것은 배신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미국은 꾸준히 쿠르드족을 이용하고 배신해왔으나 이용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독립을 얻기 위해 강대국의 힘을 빌리려 했던 쿠르드족의 눈물을 마냥 남의 일로만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역사에 만약이란 것은 없지만 광복 이후 한국이 최소한의 내부적인 단결 없이 계속 분열했다면 오늘날 쿠르드족과 비슷한 입장에 놓여있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위치, 나라 잃은 슬픔과 독립운동의 역사,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분열하여 격렬하게 대립하는 것, 끈질긴 투쟁의 역사 등 우리나라 역사와 비슷한 점이 적지 않다.




IS 격퇴 후 토사구팽

미국이 명분 없는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가 참혹한 폐허가 된 이라크와 시리아를 내버려두고 철수한 후, 국경과 질서가 없어진 지역에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세력이 나라를 세우고 IS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를 상대로 끔찍한 테러 행위를 많이 저질렀다.


참수 영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IS는 석유 밀수출, 약탈과 인질 몸값 등으로 군자금을 확보하고 인터넷을 통해 조직원을 모으고 자발적으로 테러를 일으키라고 선동하는 한편 우상숭배를 파괴하겠다며 이라크 내 유서 깊은 문화유산들을 닥치는 대로 파괴했다.



종교나 종파에 상관없이 IS의 조직원과 자신들에게 충성을 맹세한 집단 외는 전부 죽인다는 식의 과격한 사상은 확실히 정상이 아닌데, 기존 이슬람 극단주의는 최소한 쿠란의 본분에 충실한다는 원칙은 있었던 것과 달리 IS는 술 마약 음란물 등에 엄격한 이슬람의 교리를 충실히 따르지 않고, 테러 과정에서 무슬림을 죽이는 것도 망설이지 않으며, 심지어 쿠란을 훼손해 폭탄을 설치한 부비트랩을 만들기도 하는 등 기존의 상식을 많이 벗어나 있다.


자살 테러를 하면 천국에 갈 수 있으니까 가서 죽으라는 선전에 선동되는 사람도 정상은 아니지만, IS의 선전은 실제로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 부적응자들에게 꽤 매혹적으로 다가오기도 해서, 심지어 한국인 대원도 등장했다고 한다. 꾸준한 인터넷 홍보 활동을 통해 IS는 100여 개 국에 수만 명의 외국인 대원을 보유하고 있다.


IS는 결국 미국이 만든 괴물이라고 평가되는데, 미국 입장에서는 이들을 격퇴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산악 지방에 숨어서 게릴라전을 펼치는 테러 집단을 인명 피해 없이 제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국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전쟁 예산안이 통과가 되어야 한다. 미군 장병이 계속 사망하는 사실은 국회 내 여론에 매우 불리하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다른 희생양이 필요했다.


IS 격퇴전에서 미군 피해는 몇 명 되지 않았으나 피를 흘린 것은 쿠르드족이었다. 2만 명에서 3만 명 규모였던 쿠르드 민병대는 IS와의 전쟁에서 병력 1만 2천 명을 잃었으며, 2017년 IS의 수도 라카를 점령하는 등 IS 격퇴에 가장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쿠르드족은 주변 아랍 국가들과 달리 여성의 권리를 중시하는 편이며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하다. 쿠르드 민병대에는 다수의 여군이 존재하는데, 이는 여성의 손에 죽음을 당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미신을 믿는 IS 대원들에게 영향이 컸고 결과적으로 IS의 사기를 꺾는데 매우 큰 역할을 했다. 



쿠르드 민병대는 독립 국가를 세워주겠다는 미국의 약속을 믿고 목숨을 바쳐 후손들에게는 나라 없는 슬픔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용맹하게 싸워 IS를 격퇴했으나, 미국이 제공한 무장은 철저하게 백병전에 특화되어 있었고 중화기는 일체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수의 탱크와 한국에서 수입한 K-9 자주포 등을 몰고 쳐들어오는 터키 정규군을 상대로는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미국은 쿠르드족을 이용해 IS를 처리한 것은 좋은데 쿠르드족에게 독립 국가를 세워주는 것은 또 다른 분쟁의 씨앗을 만들 뿐이고 미국에 아무 이득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2019년 10월 7일 트럼프와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과의 전화 회담 후 백악관은 터키가 오래 준비해온 시리아 북부 군사 작전을 곧 추진할 것이며, 미군은 그 작전에 지원도 개입도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쿠르드 주민들이 자신들의 땅을 지키겠다며 라스알아인, 코바니 등의 지역에 거대한 규모로 텐트를 치고 인간 방패를 만들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는 이 지역에 있던 미군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라고 지시했다. 


터키는 시리아 접경 지역 쿠르드 민병대가 자국 내 쿠르드 독립운동을 하는 테러집단의 분파라며 이들이 당장 철수하지 않으면 대대적인 공격을 하겠다는 경고를 보내며, 민간인은 보호하겠다는 형식적인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분노한 쿠르드족 주민들은 시리아를 떠나는 미군 차량을 향해 썩은 감자와 돌을 던지며 꺼져라 배신자들, 거짓말쟁이 미국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일부 주민은 맨몸으로 차량 행렬을 가로막고 플래카드를 흔들며 항의했다.


터키 남동부에 대한 자치권을 주장하고 있는 쿠르드노동자당(PKK, Kurdistan Workers' Party)은 1984년부터 이라크 북부 산악지대에 본거지를 두고 터키를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는데, 수십 년간 터키군에 숨진 쿠르드 독립운동 세력은 4만 명이 넘는다. 



결국 10월 11일 시리아 국경을 넘은 터키군과 쿠르드 민병대 간 교전이 발생했다. 터키 관영 아나돌루통신은 터키군이 쿠르드 대원 228명을 사살 또는 생포했다고 발표했다. BBC에서는 쿠르드족이 주축인 시리아민주군이 터키군 22명을 제거했고, 터키군 공습으로 쿠르드 민간인 9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국제 사회는 터키의 군사 행동을 일제히 비난했다. 쿠르드 민병대와 민간인의 희생도 문제지만 현재 쿠르드 민병대가 관할하는 구금시설에 1만 7천 명 이상의 IS 대원들을 수용하고 있는데, 터키군의 공격으로 쿠르드족이 통제권을 상실할 경우 IS 세력이 부활할 가능성과 대규모 난민의 발생 가능성 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터키는 쿠르드족 자치 지역에 대한 점령보다는 미군이 떠나고 무주공산이 된 시리아 땅에 대한 영향력 확보를 원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았으며, 다시 한 번 터키에 의한 쿠르드족 인종 청소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다. 극적인 시점에 러시아가 개입하면서 다행히 최악의 사태는 면했지만 이 지역 쿠르드족 전사들은 3000년간 살아왔던 땅에서 일방적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미국이 의도한 것인지 모르지만 이 지역 쿠르드 민병대가 괴멸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면 살아남은 쿠르드족은 뿔뿔이 흩어져 미국에 대한 한을 품은 제2의 IS가 될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트럼프는 미군의 과제는 세계의 치안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며 터키에 부과한 제재를 해제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이 러시아가 개입한 휴전 합의로 일단락된 가운데 혼란을 틈타 쿠르드 민병대가 관리하던 시리아 동북부 지역 내 수감시설에서 IS 조직원 100명 이상이 탈옥했다. 


트럼프의 시리아 철군 결정은 장기적으로 미국의 국익에 전혀 부합하지 않지만, 트럼프에게는 지지자들에게 미군 해외 파병을 통해 낭비하는 예산을 줄이고 있다는 어필을 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트럼프의 계획대로 천여 명의 시리아 주둔 미군이 대규모 귀향 행사와 함께 돌아와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은 상당히 극적인 그림이 될 것이며 전쟁 피로감을 느끼는 미국 유권자들에게 매우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사실 시리아와 아프간 파병 미군의 철군은 트럼프의 대선공약이었다.


트럼프는 시리아 주둔 미군의 철수 방침을 재확인하면서도 시리아의 유전을 지키기 위해 일부 병력을 시리아 북동부에 잔류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0월 21일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트럼프는 쿠르드족 거주 지역의 유전을 개발해 원유를 생산하면 미국 기업이 이 원유를 수출하도록 지원하겠다며, 석유를 지키는 것을 제외하고는 주둔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매우 위험한 지역으로 나는 어떠한 병력도 남기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미국이 IS 격퇴를 위해 함께 싸웠던 동맹을 배신했다는 주장을 일축하며, 우리가 쿠르드족을 도왔고, 그들은 천사가 아니다. 미국은 400년 동안 쿠르드족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한 적이 없고, 우리가 그들의 나머지 생명을 지키겠다고 합의한 적이 결코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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