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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진택 Nov 23. 2019

지소미아 종료 중단의 의미

억울하다, 우리는 언제까지 양보만 해야 하는가


2019년 11월 22일 오후 6시 한국 정부에서는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우리 정부는 언제든지 지소미아의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같은 시간 일본은 경제상업성의 브리핑을 통해 한국 정부가 12월 중 일본이 한국 수출 품목 3개에 대해 내린 제재를 해제하는 조건으로 지소미아 협정 유예를 결정했으며, 한국과 일본 정부가 수출 제재 해제와 관련한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한국 정부의 일본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후 3개 품목 수출 규제라는 경제 보복을 단행하고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하는 조치를 취하자 한국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 방침으로 맞대응했던 바 있는데, 23일 오전 0시로 예정된 지소미아 종료 시한을 불과 6시간 앞두고 극적으로 조건부 지연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11월 23일 국민적인 거센 반대 여론을 철저히 무시하고 신속하게 체결됐다. 표면적으로는 일본과의 협정이었지만 그 뒤에는 일본 중심 안보 체계에 한국이 협력할 것을 강요하는 미국의 압박이 있었다.


미국은 동북아의 신속한 군사 작전 태세 유지를 위해 한일 간 군사 정보의 실시간 교환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지소미아 체결 후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미사일 관측과 관련한 정보를 일본에 넘겨주는 등 꾸준히 협정의 취지를 지켜왔지만, 일본은 한국이 파악하지 못하는 의미 있는 다른 군사 정보를 확보할 만한 특별한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은 데다가 노골적으로 한국에 넘겨준 군사 정보가 북한으로 넘어갈 수 있다며 일본 측의 군사 정보를 한국과 공유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지소미아가 한국에 이익이 되는 부분은 전혀 없었고 전적으로 한국보다는 일본에게만 유리한 협정이었다.



한국은 다수의 조기경보통제기를 운용하고 있고, 전천후 영상 레이더가 탑재된 아리랑 5호, 55㎝ 해상도의 전자광학 카메라와 적외선 센서까지 탑재한 아리랑 3A호 등 의미 있는 다목적 위성들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 30㎝에서 50㎝ 사이의 해상도를 가진 IGS 위성을 4기나 운용하고 있으나, 지소미아 종료 정국에서 많은 유사언론이 한국은 정찰 위성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반면 일본은 8개나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군사 정보 공유를 그만두면 손해라고 주장한 것은 상당히 가짜 뉴스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과 일본 모두 우주 산업은 걸음마 단계에 있는 상황으로, 한국과 일본 모두 가장 중요한 군사 정보는 주로 미군에 의해 제공받고 있다. 한일 양국의 정찰 위성은 판독 능력이나 기동 성능에서 큰 차이가 없으며 한국과 일본 모두 2021년 발사를 목표로 고해상도 광학위성을 개발 중이다.




지소미아 종료 효력 중단 선언

미국 상원은 21일(현지시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연장 촉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는데, 이는 한일 간 분쟁의 원인을 제공한 일본에 대한 지적이 전혀 없이 한국의 무조건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결의안이었다.


일본은 한일 간 분쟁의 근본적인 원인인 식민 통치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미국은 한일 간의 과거사나 국민감정 등에는 전혀 관심 없고 오로지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 같은 약소국은 무조건 미국 말대로 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일본이나 미국이나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이 결국 굴복할 것은 명약관화했다. 애당초 미국도 일본도 한국이 무조건 양보할 것이라고 믿고 초지일관 강경한 자세를 유지한 이유는 역사적으로 한국은 항상 양보만 해왔기 때문이다.



사실 지소미아 협정 자체가 MOU 비슷한 성격이라 지소미아가 종료된 상태에서도 한일 양국은 필요하면 군사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것이고 협정이 지속되는 상태에서도 중요한 정보를 서로 넘기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라서 실질적인 의미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지소미아 종료 결단은 다만 당장 한국이 미국의 터무니없는 방위비 분담금 요구에 순순히 응하지 않고 있는 것과 함께 미국과 일본의 압박에도 한국이 강경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으로 주권국가로서 권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는 데에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일본이 안보상 한국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를 빌미로 경제 규제를 단행한 상황에서 한일 간 안보 협력 협정을 지속한다는 것은 확실히 명분이 전혀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종료 결단을 내렸다면 안보 비협조를 핑계로 방위비 협상에 더욱 증액을 요구하는 무자비한 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꾸준히 일본에게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마지막까지 매달린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도 막상 일본의 수출 규제 후 국민이 주도한 일본 불매 운동으로 일본은 꽤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는데 반하여 한국 경제는 그다지 타격을 받은 게 없고 일본만 손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대화의 여지가 있었다.



수출 규제 중단 선언과 지소미아 종료 취소를 교환하거나, 일단 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하고 일본의 태도에 따라 다시 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대화하거나 했어야 옳았지만, 단지 앞으로 협의를 시작하겠다는 정도로 일본 측이 양보한 상황이 전혀 없이 지소미아 종료의 효력을 중단한 것은 한국이 백기를 든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데, 결국 한국 정부는 명분을 버리고 실리를 택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3개 품목 수출 규제의 취소와 지소미아 유지를 교환한다는 것이 협의가 잘 된다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겠지만, 앞으로 구체적인 실무 협상에서 일본의 태도 변화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문제다.


아마도 한국 정부도 뻔히 일본이 양보 안 할 것을 알고 있지만 일단은 수출 규제 문제에 대하여 실무 협상을 한다며 시간을 끌다가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해결한 이후에 다시 지소미아 종료를 하면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

방위비 분담금 협상 문제도 한국 측이 명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끌면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미국은 트럼프식 미치광이 전략을 발휘해서 일단 다섯 배를 부른 뒤 최종적으로 두 배 정도로 결론을 내면 된다는 계획으로 보이는데, 애당초 한국이 이미 주한미군 운용비의 절반 이상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그 다섯 배 이상을 내라는 것은 너무 말이 안 되는 일이고 심지어 미국 국회와 언론에서도 다들 트럼프가 너무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 매체에서는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요구와 관련 미국은 한국을 젖 짜는 암소, 자금조달자로밖에 여기지 않는다며 양키식 오만성, 날강도적 심보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강도적 요구에 강경한 태도를 취하지 못하고 보수패당이 미국 상전과 엇나가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민족적 수치를 자아내는 사대매국 행위라고 주장했다.


중국 관영신문에서는 미국이 동맹국들에게 방위비 부담금 바가지를 씌우는 것은 공갈협박이라며 한국의 체면과 느낌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모욕적인 강요를 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한국과 비슷한 요구를 받고 있는 일본 정부는 자국 언론에게 구체적인 증액 규모는 협상 중이라며 미국의 요구에 대해서 유체 이탈 화법으로 모르는 척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지소미아 문제와 달리 방위비 분담금은 협상이 타결이 안 되면 당장 주한미군 운영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결국 주한미군 감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정부 입장에서는 훨씬 더 부담이 될 사안이다.


애당초 토지 사용료와 환경오염 배상금을 받아야 했는데 터무니없는 명목으로 주둔비를 나눠 내고 있는 것 자체가 매우 황당한 일이기는 하지만, 한국이 안보를 위해 미군 주둔이 꼭 필요하고 미국 주도의 안보에 무임승차하지 않기 위해 일정 부분 방위비를 낸다는 것은 국민여론도 찬성이 더 높을 것 같다. 사실 금액이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가 주권의 문제다.


한국이 낸 방위비 분담금이 어떤 식으로 쓰이는지 전혀 공개되지 않고 불투명하게 쓰인다는 것이 우리의 경제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 사실 한국이 낸 돈은 주로 미국 커뮤니티 뱅크에 맡겨 이자 수익을 올리는 용도로 쓰인다는 의혹이 있다.


어차피 시간을 두고 협상을 할 계획이라면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돈을 깎는데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방위비 분담금이 어떤 식으로 쓰이는지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확실히 할 필요가 가장 시급하며, 가능하면 한국이 많은 분담금을 내는 만큼 미사일 사거리 규제 해소나 국산 무기 개발에 대한 협조 등 받아낼 만한 것을 확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미국은 야비하게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미군부대에서 일하는 한국인 근로자들에게 강제 무급 휴직을 시키겠다고 협박하고 있는데, 이에 주한미군 노조는 안보 공백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임금을 받지 못하더라도 일하겠다. 한국인 근로자 생계에 대한 걱정이 협상의 결과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면 한다며 우린 잘 견딜 테니 떳떳한 자세로 협상해달라고 정부에 당부했다.



당장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는 별개로 주한미군은 한국인 노동자 감원 계획과 하청화할 계획을 실행하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우리가 돈을 보태주면 그 돈으로 미국이 미군기지에서 일하는 한국인들 월급을 내줄 게 아니라, 우리가 한국인들을 직접고용하는 형식으로 한국인 근로자의 고용보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대체 왜 환경오염 얘기는 안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한국이 안보를 위해 지불한 돈에는 당연히 미군기지의 오염처리비가 포함되어야 한다. 




그래도 일본과 화해해야 한다.

한국이 완강하게 주장하던 지소미아 중단 입장을 포기한 대가로 일본에 받은 것은 겨우 경제 분쟁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를 시작했다는 것밖에 없다. 


일본은 버텨봐야 일본만 손해인 상황이긴 하지만 하여간 과거사 논란을 일으킨 한국이 오히려 문제라며 한국의 태도가 바뀌기 전에는 대화나 협상의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고, 협상을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당장은 일본이 성의 있게 협상에 임하며 한국이 납득할 만한 양보를 할 리가 없어 보인다.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우며 경제적으로 고도로 발달한 두 나라가 경제 분쟁을 지속한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손해가 매우 크기 때문에,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예전처럼 애매한 성명문이나 하나 내고 실리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이 나아 보이기는 하다.


한국 입장에서 일본이 부당한 식민 통치와 전쟁 범죄에 대하여 도무지 사과가 없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것은 매우 억울한 일이지만, 사실 냉정하게 바라보면 대항해시대 이후 세계열강들의 온갖 반인륜적인 범죄,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중 발생한 수많은 전쟁 범죄들, 오랜 시간 강대국들이 주위 국가들을 꾸준히 괴롭히고 수탈했던 사실들에 대하여 공식적인 사과가 있었던 예는 전세계적으로 거의 없다. 당장 우리나라도 월남전 민간 학살에 대하여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사과와 배상 같은 것은 안 하고 있지 않은가?


특별히 독일인이 일본인보다 양심이 있어서 독일이 전쟁 범죄를 인정하고 사과를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단지 독일이 유럽에서 정상적인 교역과 교류를 유지하며 지내기 위해서는 전쟁 피해 국가들과 화해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고 유대인의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게 크기 때문에 사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은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한 인정과 사과가 없는 상태에서 명분 없이 과거를 덮고 경제 교류를 시작한 박정희 정부가 상당히 잘못한 것이다. 심지어 일본으로부터 전쟁 배상금 비슷한 명목으로 받은 돈을 징용 피해자를 위해서 쓰지 않고 경제 개발에 투자하며 일본이 이 문제에 적반하장으로 나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일본이 과거사를 부정하며 전쟁 가능한 국가로 변신을 시도하는 것이 정말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만이 후쿠시마 충격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인지, 초장기적 경기 침체와 극단적 인구 노령화, 국민 연금의 고갈, 사토리 세대의 출현 등 내부적인 모순으로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냥 국민의 관심을 돌려보려고 하는 짓인지 알 수 없지만 하여간 일본의 도발은 직접적으로 강제징용 및 성노예 피해자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일 뿐 아니라 일본인 스스로에게도 매우 불행한 일이다. 


앞으로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라도 한국인의 잠재력을 발휘해 일본도 독일처럼 깨끗이 사과하고 과거사를 정리하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한국만의 힘으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고 남북 간 협력과 공동 행동은 물론 중국 및 아세안 국가들과의 장기적인 협력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도 일본이 한국을 무시해도 될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큰 착각이다. 경제 분쟁을 이어가는 것은 한일 양국 모두에게 너무나 큰 손해이지만 한일 간 무역에서 흑자를 보고 있는 일본에게 훨씬 더 큰 손해가 된다.


한국 입장에서는 이번 기회에 몇몇 국가들에만 지나치게 높이 의존하는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과 광범위한 국산화 자립화는 그대로 추진하되, 결국 어떤 식으로든 일본과 화해하고 협력해야 한다. 


일본에 정상적인 정권이 들어서서 진지하게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표하며 화해 협력하는 길이 열린다면 더 좋겠지만 좀처럼 정권 교체가 어려운 내각제의 특징과 극도로 정치에 무관심한 일본인의 특성상 당장은 요원한 일로 보인다.


일본을 믿을 수 없고 한국은 자립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 잊지 않고 가슴에 간직한 채 필요한 것은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며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불매는 언제까지나 계속해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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