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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uart Dec 13. 2024

작가의 첫 걸음_자화상 시리즈④

스스로 들어간 감옥

습관이 하나 있다.

엄밀이 말하면 습관보단 중독에 가까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시작하여

밥을 먹을 때에도

이동을 할 때에도

잠을 자기 직전에도

남는 시간에는 언제나, 꾸준히, 늘 그래왔듯

핸드폰을 본다.


틈만 나면 유튜브, 인스타그램, 웹툰, 넷플릭스 등을 보며

두 눈을,

집중력을,

맑은 정신을 소비한다.


이것만 보고 꺼야지,

30분까지만 봐야지,

웹툰 정주행만 해야지,

근데 오늘의 이슈는 뭐지?


눈만 피곤했다면 크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다.

문제는 정신이었다.


생각이 필요 없는 자극적이고 도파민이 가득한 8분짜리 영상을 넘어

그마저도 견디기 힘들어 쇼츠만 넘기게 되었다.


영화 한 편을 보기보다

영화를 소개해주는 20분짜리 영상을 찾게 되었다.


SNS에서 본 근거 없는 이야기들을 믿게 되었고

익명의 사람들이 댓글로 싸우는 모습에 익숙해졌다.


인플루언서들의 과거 혹은 만행이 폭로되고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올리는 사과 영상이 재밌어졌다.


폭발적인 도파민을 제공하고

혐오가 만연한 인터넷 세상을 비판하기보단 즐기게 되었다.

이런 세상이 너무나 당연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를 요약해서 보여주는 영상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지고

쇼츠가 재미없어졌다.

인스타그램에도 흥미를 잃었다.


조금 있어 보이게 말하자면

무분별한 영상콘텐츠를 소비함에 피로감을 느꼈다.


'그럼 난 이제 뭘 해야 하지?'


더 이상 자극을 줄 수 있는 것이 없어졌다.

그런데도 습관처럼 쇼츠를 넘기고 인스타그램을 본다.

재밌어서가 아니라 그것 말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그렇게 시간을 죽인다.


말 그대로 시간을 죽인다.

죽은 시간은 돌아오지 않고 썩어 없어진다.

시간을 죽이고 남는 것은 없다.

굳이 뽑자면 '피폐해진 정신'정도인 것 같다.


<미디어 감옥>_46cm*53cm_oil on canvas

결국 스스로를 미디어란 감옥에 가둔 꼴이 되었다.

문제는 스스로 감옥에 들어간 만큼,

그곳에서 나올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핸드폰을 오래 보다가 거울을 보면 정확히 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초점은 흐리고 표정은 없다.

생각도 없고 감정도 없다.

활기도 없고 의욕도 없다.


스스로 들어간 감옥에서 너무나도 크 고통을 받고 있었고

그것이 고통인 줄도 모른 채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캔버스에 옮기고 싶었다.

반성하기 위해, 조금 더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그리고 경솔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타인의 공감을 얻기 위해.


그릴 대상의 상태가 온전치 못하여 정밀묘사대신 형태만 잡는 표현을 택했다.

그 위에 에어브러시로 감옥의 철창을 덮었다.

미디어 감옥은 물질적인 공간이 아니기에

딱딱한 철창보다는 흐릿한 철창이 나을 거라 생각했고,

결과물도 의도와 맞아떨어졌다.


<미디어 감옥>을 완성하고 난 뒤에도 감옥을 빠져나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천천히 독서를 시작하고 SNS 사용시간을 줄여 나가고 있다.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서 남는 시간이 없어진 것도 한몫했다.


대상을 탐구하고, 독서를 하고,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집중력을 조금씩,

느리지만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올리고 있다.


작가로서 홍보하는 용도 외에 SNS에 쓰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날까지 꾸준히 노력하겠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아오는 화요일 '자화상 시리즈⑤'를 끝으로 작가의 첫걸음은 끝납니다.


이후 자화상이 아닌 새로운 작품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평안한 저녁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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