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에 관하여
작가의 꿈을 갖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당시
수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었다.
주 4회 등교, 주 2-3회 아르바이트를 했고
등교, 퇴근 후 그림을 그렸다.
시간 내서 운동도 했다.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순조롭게
학업과 아르바이트, 작품활동과 운동을 병행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잠 조금 줄이면 되지',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데 나라고 못 할 거 뭐 있겠어'
하며 스스로를 다독였고 한동안은 순조롭게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매일 전력질주를 하며 달리던 중 몸이 신호를 보내왔다.
처음엔 조금 피곤했다.
그래서 뿌듯했다.
피곤해? 나 열심히 살고 있구나. 좋았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달리던 삶에 익숙해져 이것을 긍정 신호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문득 '잠들면 또 내일이 오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잠들기 전 이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며칠을 또 보내다 보니
결국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이 누워 있는 것이 고작인 상태가 되어버렸다.
분명 남들도 다 열심히 살 텐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할까.
조금 고민해 보니 뻔한 답이 나왔다.
뜨는 시간을 참지 못하고 어떤 일이든 사이에 집어넣어
제대로 쉬었던 적이 없었다.
물론 놀기도 잘 놀았다.
너무 재밌게 놀아서 노는 것과 쉬는 것의 차이를 잘 몰랐던 것 같다.
술을 마시지도, 여행을 가지도, sns를 하지도 않는 온전한 휴식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번아웃이 온 뒤에야 깨달았다.
번아웃이 온 스스로에게서 영감을 얻었고,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두꺼운 초 하나를 하루 종일 녹였다.
녹아서 흘러내리는 촛농과 그 사이로 빛나는 작은 불꽃 한 송이,
위태로운 그 한 송이의 불꽃이 꺼지면 나를 완전히 잃어버릴 것 같은 초점 잃은 표정과 눈.
정확히 당시의 나를 표현한 작품이었다.
<번아웃>을 그리며 나의 상태를 다시 한번 알 수 있었고,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기말고사를 앞둔 종강 1달 전에 중도휴학을 했다.
아까웠지만 나를 위한 결정에 후회는 없었다.
그렇다고 온전히 쉰 것은 아니었다.
코앞으로 다가온 전시 일정을 맞추기 위해 가용한 모든 시간을 그림에 쏟았다.
그렇게 나온 작품 중 하나가 <찬란한 세상>이다.
말끔하게 입은 정장,
반쯤 열려 있는 커튼 사이로 나오라며 손짓하는 달콤한 색.
외출할 준비도 끝났고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밝게 빛나는 찬란한 세상을 만끽할 수 있음을 알지만
온몸에 힘이 빠져 표정조차 알 수 없는 무기력한 모습.
이것이 당시의 내 모습이었다.
위 두 작품을 그리며 스스로를 정면으로 마주 보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불쾌함을 느꼈다.
나는 항상 밝고 힘찬 사람이길 바랐기에 그랬던 것 같다.
이 작품들을 완성하며 비로소 나 자신의 내면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었고 큰 위로를 받았다.
덕분에 요즘에는 찬란한 세상을 만끽하며 살고 있다.
스스로 드러낸 불쾌와 아픔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니,
그림에는 참 묘하고 강한 힘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는 작품들이었다.
세 번째 자화상 시리즈는 여기까지입니다.
어쩌면 불쾌하고 거부감이 들 수 도 있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도
<번아웃>과 <찬란한 세상> 두 작품을 통해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평안한 저녁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