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맞이한 과거의 나에게
올해 초 친구들과 저녁을 먹었다. 지난해를 회고하는 시간을 가지며 각자의 사랑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는 막 헤어진 상태였고 누군가는 헤어진 후 시간이 조금 흐른 시기였다. 친구들의 사랑 이야기는 그들의 개인적인 것이니 여기에 쓰지 않고, 대화하며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기록해 보겠다.
최근 만났던 사람 이야기다. 그는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 나는 이유를 모른 채 잠수 이별을 경험했다. 나는 내 탓을 했다. 그때 내 마음을 기록한 글을 보면 나는 무려 다섯 가지나 되는 이유를 추측하며 그가 연락을 끊었다고 생각했다. 잠수 이별 6개월 후 그는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 생일을 축하한다면서. 나도 아무 일 없던 듯 그와 친구처럼 연락했지만 그가 잠수 이별을 한 이유가 궁금했다. 어느 날 그는 술을 마시고 나에게 연락을 했고 우리는 솔직한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 마지막 즈음 나는 그에게 연락을 끊은 이유를 물었다. 그가 말한 이유는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내 이야기를 잘못 듣고 오해를 한 것이었다.
처음 내가 느낀 감정은 당황스러움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에게 사실을 알려주며 오해를 바로잡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나의 어떤 말이 그에게 큰 두려움을 일으켰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믿을 만큼, 이별을 생각하게 할 만큼 그를 두렵게 만들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누군가는 혼자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것을 뺏길까 봐 두려워한다.
이별 이유를 들은 후 내가 느낀 또 다른 감정은 자유로움이었다. 이별 후 나는 여러 가지 이유를 추측하며 나의 부족한 점을 떠올렸다. 그것을 그가 이별을 하게 만든 이유라 믿었다. 하지만 그중에 진짜 이별의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나 스스로를 그렇게 비판적으로 볼 필요는 없었는데.... 과거의 나에게 미안했다. 동시에 자유로움을 느꼈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 그러니까 내 마음에 안 드는 점이 다른 이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나의 단점이라 생각한 부분을 그는 나의 장점이라 생각했다. 전에 만났던 사람들도 내 단점을 장점으로 봐주었다. 단점이 단점이 아니구나. 단점이 장점이 될 수 있구나. 나를 가두었던 부정적인 시선에서 자유로워짐을 느꼈다.
그와 재회한 후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 트라우마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도 알고 있었다. 나도 내 과거의 상처를 알고 있었기에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가진 두려움을 줄여줄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가 가진 두려움은 너무 커서 연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그의 말과 행동이 트라우마에서 기인한 것을 알았지만 내가 모든 것을 받아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와 연락을 끊은 후 지난 사랑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헤어짐이 서로의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지난 사랑이 다시 보였다. 처음 사랑을 했을 때 나도 내 두려움 때문에 상대의 어떤 행동을 과하게 걱정했다. 두 번째 사랑 때는 나의 사소한 어떤 말이 상대의 두려움을 건드렸다. 상대의 어떤 말이 나를 서운하게 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성장환경 때문에 내가 그의 말을 더 서운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때 내가 지금만큼 나 자신을 알았더라면, 나의 상처가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어떤 감정을 크게 느끼는 사람인지 알았더라면, 어떤 것을 특별히 서운하게 느끼는 사람인지 알았더라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알 수 없었다. 사랑을 하며 나는 나를 알아가게 되었으니까.
나는 사랑을 시작할 때 유독 용기가 많이 필요한 사람이다. 이제는 그 이유를 안다. 망설이는 나에게 '괜찮아. 네 마음에 솔직해져 봐.'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이 가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다독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