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양면
비를 싫어한다. 머리로는 비옥하게 만들어 주는 가치 로운 것임을 알면서도 직장인의 마음은 따라주질 않는다.
비가 내리는 평일의 밤은 심란한다. 내일 어떤 옷을
입어야 하나,에서 시작된 고민은 끝이 없다.
하필 일찍이 출근해 비를 맞아야 하는 일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그렇지 않아도 늦는 버스가 얼마나
늦을지 가늠하느라 긴 밤을 보냈고, 몇 분을 더
일찍 기상해야 하는지,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렸다.
조심스레 말해보자면 여행과 소풍날의 비보다
출퇴근과 등하굣길의 비를 곱절로 싫어했다. (지금도
성실히 싫어하는 중이다.)
입버릇이 있었다.
“대체 왜 현재까지도 간편한 우산이 없는 거야?”
라는 초등학생이나 할 법한 불만을 진담으로
뱉곤 했다. 진심이었다. 21세기잖아, 심지어 이질적이다 못해 징그러운 2025년이란 숫자가 우리 앞에
질질 몸을 끌고 왔단 말이다.
아직까지 손으로 들지 않아도 되는 우산이 없는
까닭을, 나는 모르겠단 뜻이었다.
인간이란 참 양면적이고 입체적이어서 재밌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기심이 엉켜 그리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과연 이기심 뿐일까,
무작위로 조리해 레시피를 알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자연을 만끽하는 순간을 좋아한다. 모순되게도
비가 내리는 날을 좋아하기도 한다. 흔한 흐름이지
않은가. 집에 있을 때면 비 내리는 소리가 유독 귀에서
굴러가는 듯한 평온을 준다는 이야기 말이다.
자박자박 얇은 비가 내리는 주말 초저녁,
사람이 없고 추운 바람으로 채워진 거리가 내 것만
같다.
자박자박 가느다란 비가 내리는 일본의 교토.
수국이 흠뻑 머금은 물기가 아름다워 눈길이
가고.
자박자박 고요한 비가 내리는 야심한 학교에서의 시간도, 밝은 조명과 대조되는 까만 창 밖 풍경도 모두
황홀하다.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지 싶다. 나는 이때가 좋다.
아무도 없는 길은 마치 폭풍이 오기 전의 언덕 같고
고요한 목장의 양치기 소년이 된 기분에 기댈 수
있다.
비는 생각의 원료가 되어준다. 앞서 비에 대한 험담과 앞뒤가 전혀 다른 말이지만, 분명히 비는 나를 쓸쓸하고 행복한 마을로 데려가 준다.
차가운 집 안, 따뜻한 이부자리 속에서 조용히 빗소리를 듣는다. 건조한 실내와 바깥이 부딪혀 타들어가는 촛불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나는 그 불꽃을 계속해서 되뇐다.
좋은 순간이다, 좋은 기분이다, 좋은 날씨야.
이내 미치는 생각은 평소의 나를 내다 버린 마음이다.
어쩌면은 사람이란 간사하다 싶은 부분이 이런 부분이다.
나는 건조한 대자연 속에서 폭포라든지 나무 부딪히는 소릴 듣는 상상을 한다. 풍부한 녹음 안에서 하찮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데까지 생각은 가 버린다.
실은 그렇다, 나는 온 계절을 싫어한다.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망할 봄이나, 온몸의 땀을 모조리 빼앗는 여름이나, 몸이 적응을 못 하는 가을이나, 더러운 눈 내리는 겨울이나 전부 싫다.
그러나 동시에 자연을 사랑한다. 자연이 주는 감각을
좋아하는 모순된 인간이다. 마치 어항을 관리하기 싫어 남에게 맡겨놓고는 즐겁게 구경하길 즐기는 못된 인간 같다.
나도 계절의 비하인드를 포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여전히도 입 안에선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에 대한
100페이지가량의 불만을 담은 논문이 펼쳐져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