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무계획 여행 上
작년 여름 오사카를 갔다.
동행자는 엄마였고 엄마와 벌써 세 번째 국외
여행이었다. 다만 불안한 점은 내가 지독히도 싫어하는 여름이란 점과 여행 장소가 하필 덥기로 유명한 일본이라는 것. 더불어 일을 마치고 바로 떠난 일정이라
체력의 분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하여튼, 이미 정해졌으니 떠났다.
여행 전 비행기가 자연스레 취소되는 일은 없더라.
아시아나를 탔던 것 같다. 기억이 벌써 가물한 점
양해 부탁한다. 비행기는 쾌적하고 좋았다.
단시간 비행인 게 아쉬울 정도.
짧은 비행의 좋은 점이라면 사람들의 설렘이 비행시간 내내 지속되고 있음을 바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여담이지만 난 엉덩이가 배기는 여행은 못할 것 같다. 설렘과 몸의 편안함이 함께 하는 여행이 늘 좋다.
어찌어찌 여행지에 도착.
서치를 미숙하게 한 탓에 전철 플랫폼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하고 오결제까지 해 가며 헤맸다. 이전에도 온 적이 있었던 터라 자만했다.
겨우 탑승한 전철의 창 밖 풍경은 투명하고 쾌적했다.
일본은 중심지에서 벗어날수록 보는 맛이 있다고 느꼈다. 건물이 띄엄띄엄 자리 잡은 풍경이 가장 좋았다.
사실은 위의 사진을 첨부한 후 이 장소가 어디였는지 떠올리는 데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찾아보니 텐노지역이라고 한다.
만화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유명한 역 같은데?
-라는 되지도 않는 말을 하며 텐노지 역에서 하차했다. 고른 후에 찾아보니 츠텐카쿠라는 유명한 타워가 있는 장소였고 다행스러운 결과에 흥이 올랐다.
복작복작한 난바와는 다르게 인파가 덜한 것 같았다. 상점가와 시장, 두 단어의 조합만으로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동네의 색조합이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시야가 트여 있어 넓게 내다 보이는 곳이었다.
지하상가였던 것 같다. 내려가 보니 식당이 있었고
그 외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패스하겠지만 하여튼, 저 장식물 하나가 마치 ‘귀를
기울이면’이나 ‘고양이의 보은’에 나올 것만 같아 찍었다.
텐노지 공원에 갔다.
운 좋게도 근처에 이것저것 볼 것이 꽤 되었다. 너무나 더워 잘 마시지도 않는 찬 음료를 내내 들이키고 하드 바를 사 먹었던 게 기억난다.
경비원 분이 보였는데 이 더운 날씨에 땡볕 아래서 서 계셨다. 저건 말이 안 된다고 이야기했더랬다.
덥고 그늘막이 적어 체력의 한계를 느낄 뻔했지만 좋았던 것은 식재료 마트가 볼만했다는 것이다. 찾아보니 ‘요테테’라는 이름의 마트인데 무엇보다 참 특이한 상품이 많았다. 특산품의 분위기를 풍기는 물건이 좀 있었다. 품목과 진열에서 느껴지는 정취만으로 싱그러워 즐거웠다.
더위를 식히러 들어온 사람들의 열 오른 얼굴이
냉장고로 향했고 여름의 완벽한 한 장면이란 생각이 들었다.
알림판의 하단 디자인이 정말이지 일본 스러워서
찍었다.
일본의 오사카가 좋았던 건지, 여름이라 좋았던 건지
아님 여름이라 괴로웠던 건지 구분할 수 없었던 무렵.
츠텐카쿠에 도착했다. 비교적 사람이 많았다.
오사카 여행 가이드북에 실릴만한 사진 느낌으로 찍고
싶어 요리조리 각도를 맞추었다. 레트로가 느껴지는 타워였다. 보아하니 전망대로 갈 수도 있는 모양이었지만 둘 다 높은 곳을 싫어해 찾아보지도 않았다.
주변이 온통 꼬치집뿐이었다.
한참을 둘러보다가 옆 가게, 그리고 앞 가게와의 차별점을 도무지 알 수 없는 식당 하나에 들어갔다.
꼬치를 입에 넣는 순간, 나는 이게 무슨 맛인가 싶어 짧게 탄식했다.
참 예쁜 킷사텐. 하지만 이름에 걸맞게 담배 냄새가 심해서 엄마는 지나치자고 했다. 다음엔 담배 연기 없는 킷사텐을 찾아서 가고 싶다.
시장에서 보았던 빵과 풍경. 오른쪽 가게에서 수박빵을 팔았는데 엄마는 거의 강매당하다시피 구매했다. 귀여운 빵이었다. 여행이고 하니 사 먹어볼 법도 하다.
모케케라는 묘한 인상의 인형을 샀다.
너무 귀여워 현관에 걸어두고 지금까지도 종종 눈을 맞춘다. 기념품 하니 떠오른 기억이 있다. 2년 전 여름에도 오사카에 갔었는데, 그때는 교토를 들렀더랬다. 기념품들을 쭉 구경하던 중 낯익은 고양이 파우치를 발견했다. 다름이 아니라 초등학생이던 시절 학교에서 열린 물물교환 장터를 통해 구매한 파우치와 같은 만듦새였다. 가짜 화폐로 구매한 정체 모를 파우치의 출처를 깨달음과 동시에 이 디자인의 명맥이 몇 년째 이어져오는 것인지 감조차 잡히질 않아 아득해졌던 것이 기억난다.
정말 놀랍도록 더웠고 예뻤다. 사진은 귀신처럼 더위를 쏙 빼고 쾌청한 하늘만을 담는다.
기록물이 없다면 우린 여름을 미화할 수 있었을까.
일본뿐 아니라 국내든 어디든 마트 구경하는 것을 너무도 애정한다. 결과적으로 저 사진 속에서 사 먹은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마트 투어의 메인 코너는 가격과 비주얼을 보면서 놀라워 하기, 그리고 코멘트하기 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끝내주게 잘 해냈다.
네 번째 사진 속 바나나크림빵은, 이번 여행에서 꼭 먹어야지 결심하고 결국 먹지 못했다. 배가 불렀기 때문인데 여행이란 허기짐을 조절하는 훈련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실패할 시 나처럼 되기 마련이다.
무계획으로 텐노지역을 돈 뒤 난바역(아마도)의
숙소로 돌아왔다. 짐을 풀고 밤을 구경하러 슬렁슬렁
나갔다. 밤이 이렇게 깨끗하고 예쁘다니, 날씨 한 번 기가 막히다고 생각했다.
저녁으로 라멘을 먹었는데 취향은 아니었다.
실은 일식 자체가 취향이 아니다. 무엇 때문인지 명확히 꼬집을 순 없지만 그저 내가 한식이나 동남아의 음식처럼 여러 맛이 혼합된, 소위 레이어가 쌓인 맛을 좋아한다고밖엔 설명이 안된다.
이를 테면 교토에서 먹었던, 이런 표현이 너무도 죄스럽지만 그걸 먹은 나와 엄마가 더 안타까워 말하자면 끔찍했던 요리 세트(상호와 음식의 종류는 말하지 않겠다)는 어떤 의미로는 내게 맛의 신세계를 열어주었지만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무(無) 맛을 경험케 해 주었는데 아직도 떠올리면 오한이 들 정도이다. 모든 게 과장된 표현처럼 들리겠으나 그날 그 시간 식탁을 더듬던 우리를 누군가 보았어야 이해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일식을 맛볼 때마다 약간의 주춤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고, 어떤 음식을 먹어도 자꾸만 그날의 기억이 소환된다.
(어디까지나 취향의 영역일 뿐, 대부분이 좋아하고 있음은 인지하고 있다.)
이튿날 아침.
일식은 취향이 아니지만 편의점 음식은 훌륭하게 느껴진다. 고로케라든가 크림이 든 빵, 주먹밥 파트에선
강자인 듯하다.
기상 후 호텔에서 한참 동안 휴식을 취하고 나서야 밖으로 나섰다. 혼자 타국의 낯선 거리를 걷고 있자니 기분이 고양됐다. 지도에 대충 의지하여 모르는 길을 걸었다. 그러다 지름길을 발견하고는 빠르게 도착했다.
도톤보리로 가니 역시나 사람으로 바글바글했다.
몇 발자국 걷고는 시원한 것을 먹으러 아무 식당에나 들어갔다. 학생이 된 느낌을 주는 가게였는데 모든 디저트가 먹을만했고, 특히나 애니메이션에서 보아 궁금했던 커피젤리를 먹을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누군가 혼자 춤이나 공 차는 연습을 하고 있을 것만 같다. 언젠가는 사진을 목적으로 한 여행을 가 보고 싶다. 재능이 있거나 기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그런 목적이라면 더 즐겁지 않을까 싶다.
호텔 근처의 마트가 편의점보다 저렴해 자주 이용했다. 일본 마트의 초밥은 간장과 와사비를 따로 가져가는 형식이라 가장 중요한 이 두 가지가 미포함돼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매번 와사비를 잊어버린다.
마감 직전의 도톤보리 거리를 걷다가 사 먹었다.
상당히 양이 많은 아이스크림 멜론빵. 이렇게 여행다운 길거리음식을 사 먹는 것도 재미이긴 하다.
마지막 날의 목적지로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역을 골랐다. 둘째 날 숙소에서, 우리는 어디를 가면 좋을지 궁리했다. 지하철 노선을 보며 갈 만한 곳들을 물색했다. 차라리 아예 처음 들어본 곳으로 갈래? -누구 하나가 제안했고 우린 낯설면서도 당기는 장소를 재빠르게 찾았다.
공항과 그다지 멀지 않으면서 갈만한 장소.
고즈넉한 카페 하나를 찾아 공유했다. 우리는 이후 조사라고 할 것도 없이, 그 브런치 카페가 있는 동네에 가 보기로 했다.
텐가차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