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공포 소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날이었다. 학교에 가기 위한 준비를 마친 동생이 식탁에 앉았고, 밥부터 먹자는 마음으로 준비를 미룬 난 맞은편에 앉았다. 몽롱한 기운이 얼굴을 떠나질 않았다. 동생은 그런 나를 한심하게 보는 듯했다. 언니 아직도 자는 거야? 진짜 언니 맞냐? -라며 쏘아대는 목소리가 들린다. 재깍재깍 기상하는 것이 오히려 특이한 경우 아니냐고 속에서만 반박하며 부엌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는 저런 사소한 시비에 하나 하나 반응할 기력이 없다. 내 나이 고작 15살인데 인생 다 산 것만 같은 소릴 한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동의한다.
주황과 미색이 섞인 아침 햇살이 주방 창문으로 들이쳤다. 엄마는 등을 들썩거리며 요리를 접시에 담고 있었다. 엄마의 새까맣고 긴 머리는 먹을 쏟은 것 같기도 했다. 저렇게나 긴 머리였던가, 새삼 의아했다.
냉장고에는 갖가지 메모지가 붙어 있다. 일반적인 메모부터 인생에 대한 글귀가 적힌 종이도 있다. 엄마답다. 냉장고 바로 옆에는 일력이 달려 있다. 2017년 7월 17일. 17이란 숫자에 시선이 박혔다. 정말이지 망치질이라도 한 것처럼 꽂힌 시선은 쉽게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왜일까, 나는 그 숫자에 순간 매몰됐다. 동생은 학교에 가기 싫다며, 수행 평가와 시험에 대해 두서없이 투덜댔다. 엄마는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여전히 미미하게 등만 움직였다. 허리까지 닿는 머리는 반면 요지부동이었다. 강렬한 아침 햇살이 온 집안을 연노랑으로 물들였다.
어째 점차 진해져 곧 노을색이 될지도 모른다. “야, 오늘 17일 맞아?” 뜬금없는 순간에 내가 물었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성대를 써본 적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동생에게서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 말이 처음부터 성립될 수 없는 질문이었다는 듯 다소 엉뚱한 표정으로 날 바라볼 뿐이다. 무슨 말이야 그게?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귓가가 먹먹했다. 잠시 거실을 바라보았다. 말끔하게 여기 저기 쓸고 닦아 흠 한 점 없는 공간 한 가운데 찰나, 무엇인가 보였다.
아. 등줄기로 땀이 흘렀다. 신체의 분명한 감각이 내가 이 일을 겪고 있는 것이 맞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오늘은 17일도 2017년도 아니다. 덧붙여 7월 역시 아니다. 아니었지. 왜 이제서야 알았을까? 동생의 차림새도 생각해보면 그랬다, 이상하다. 7월 한창 더운 날씨에 두꺼운 천으로 온 몸을 꽁꽁 감싸고 있다. 얼굴까지도. 거실에 고정한 시선을 다시 돌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놀랍게도 정말로, 정말로 그랬다.
주먹을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톱깎기로 손바닥 살을 깎은 것처럼 파인 자국이 났다. 일정한 간격으로. 피가 맺힐 게 분명했다. 동생도 엄마도 그 누구도 소릴 내지 않았다. 조잘대던 동생의 입과 식사 준비로 분주하던 엄마의 손이 동시에 멈췄다. 무슨 일인지 파악할 겨를 따위 없었다. 집 안은 강렬한 햇살을 자꾸만 빨아들였고 곳곳이 더욱 선명하게 보여 미칠 것 같았다.
“밥은 먹을 거지?” 처연한 듯 무겁게 긁히는 목소리가 울렸다. 울렸다는 표현이 맞았다. 언뜻 다정해 보이는 질문에 난 온 몸의 힘이 빠져나가고 식은땀으로 젖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감고 싶어 죽겠는데 눈은 고정한 것처럼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회색으로 질렸을 얼굴에 장식처럼 텅 빈 눈이 벌벌 떨렸다. 몸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진심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돌린 순간 부엌 대신 텅 빈, 그러나 여전히 햇살로 눈 부신 공간이 나왔다. 가구와 물건 하나 없는 아주 넓은 방 같았다. 그 한가운데에 엄마로 추정되는 인물이 서 있었다. 내 뒤로 어느샌가 문이 있었고 틈새에는 시뻘겋고 새까만 동생이 날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 애가 문을 닫자 공간에는 나와 엄마-뿐 이었다.
목에 숨이 걸렸다. 째깍대는 시계초침 소리는 아마 손목에 찬 작은 시계 속에서 들리는 것일 테다. 난 헉헉거리며 눈을 떴고 어째서인지 길 한 가운데였다. 사람은 없었다. 무언가 형언하기 어려운 것에서 깨어났다. 환상이었을까?
쥐 죽은 듯 고요한 동네는 노을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온 사물과 건물에 주황을 덮고 있었다. 고요하다. 희뿌연 안개가 시야 가장자리에 번져 있다. 개미 한 마리 없는 길을 떨리는 다리로 천천히 나아갔다. 체력이 나빠져 기절을 한 모양이다- 부디 그래야 했다. 심장이 미칠 듯 요동쳤다. 난 이 이야기를 당장 누구에게든 하고 싶어졌고 휴대폰을 꺼내 글을 남겼다. 자주 들락날락하던 사이트에 남긴 글 아래로 댓글이 달렸다. 오싹하다는 반응부터, 왜 그런 환각을 경험한 것인지 유추하는 글까지 있었다. 새로 달린 댓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동생이랑 엄마한테 연락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 무슨 일 생긴 거면 어떡함.]
바람이 가볍게 불어왔고 텅 빈 동네를 의식하자 오금이 저렸다. 천천히 답글을 남겼다. [생각해 보니까 나 실제로는 동생이...] 거기까지 타이핑했을 때, 누군가 나를 불렀다. 땀을 잔뜩 흘려 망가진 몰골로 고개를 들었다. 시야 한 가운데 아는 얼굴이 있었다.
자신을 나의 친구라고 밝히는 이를 만났다. 사람이 있었다. 크게 안도했다. 반가운 척 나눈 인사 끝에 나는 참지 못하고 방금의 일을 이야기 했다.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다. 이야길 듣던 ‘친구’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 힘들었나보다. 어릴 적 풍경을 봤다는 건... 그리웠던 게 아닐까.” 친구는 그런 말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립다고? 그립다는 예쁜 감정이 재료가 돼 그런 장면이 펼쳐질 수 있는 것일까? 친구의 말소리가 점점 아득해졌다. 얼른 집에 가야한다는 감각에 사로잡혔다. 그 생각 뿐이었다. 그러던 중 새빨간 노을이 눈을 찌르듯 발광하는 탓에 대충 안부 인사만을 남기고 다시 휘적휘적 빈 골목으로 걸어갔다.
그리움일 리가 없다. 주방에서 무한히 요리하는 엄마와 조잘대는 동생의 모습같은 것, 애써 잊은 끔찍한 기억이 한 켠에서 깜박이는 것일 테다. 작성하던 댓글을 지우고 휴대폰 화면마저 껐다. 어디에도 내 탓은 없다. 그을린 얼굴이라든지, 환각이라든지, 7월 17일에 멈춘 일력 따위가 내 탓일리 없다. 타오르는 것들 전부 단순히 빛일 뿐 내 손을 거쳤을 리가 없지 않은가.
겨우 숨을 가다듬고 집에 도착했다. 노을이 신경쓰일 정도로 강렬했다. 이를 애써 무시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긴 복도가 나를 삼킬 듯이 있었다. 거실과 주방, 현관 모두 살짝 차가웠다. 오랫동안 에어컨을 켜두다 한 시간 전 쯤 끈 것마냥 미묘하게 습했고 찼다. 집 안은 그늘을 답습한 듯 어두웠다. 주위를 빙 둘러보다 자연스레 반 뼘 정도 열린 큰 방과 눈이 마주쳤다. 방문 틈새로 익숙한 빛이 새어 나왔다. 부드럽고 선명하게 노란 빛. 그대로 둘 수도 있겠지만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전신이 땀으로 젖었음에도 턱이 고장난 것처럼 덜덜 떨림에도 어쩔 수 없었다. 눈물이 차올랐다. 문고리를 밀었다.
가구와 물건 하나 없는 아주 넓은 방이 나왔다.
그 한가운데에 엄마로 추정되는 인물이 있었다. 새까만 엄마의 얼굴에 달린 눈과 코와 입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아, 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소리의 근원인 입은 툭 벌어져 있다. 등 뒤에 바짝 붙은 문 틈으로는 시뻘건, 또한 새까만 동생이 있었다. 그 애가 문을 닫자 공간에는 나와 엄마-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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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가 고장난 인형처럼 떨렸다. 엄마로 추정되는 인물 앞에 완전히 얼어붙었다. 오래 전, 기억도 안 나는 그 날, 아니 사실은 거짓말투성이인 그 날 내가 둘을 향해 저지른 일은 아직도 형상화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그걸 알면서도 난 이 풍경이 진짜라고 믿고 만다.
마른 침이 넘어가고 도무지 똑바로 응시할 수 없어 기절할 것만 같다. 방 안에 스며드는 빛이 자꾸만 감각을 깨웠다. 이쪽을 바라보는 두 눈은 시선에서 비릿한 냄새를 풍겼다. 엄마-로 추정되는 이의 엉성하게 벌어진 입이 소릴 냈다. 내 이름이다.
얇고 불균형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발에 무언가 걸렸고 그건 해결을 위한 장치였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피었고 엄마일 리 없는 존재를 향해 던졌다. 욕지기가 치솟았다. 입을 틀어막고 눈 앞의 비상식적인 광경을 보았다. 내 마음 안에는 불꽃 대신 기도와 같은 바람이 피어올랐다. 불길 속에선 짐승같은 소리가 흐르고 있다.
그 때 동생이 나를 밀쳐냈다. 그 앤 어찌할 줄을 몰라하더니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하고 울어댔다. 동물같다고 생각했다. 나를 밀쳤던 동생의 손이 몹시도 물컹했던 게 뇌리에 박혔다. 동생은 들러붙은 입을 뻐끔대며 물을 찾았다. 동시에 나를 향해 미친 이처럼 분노했다. 말소리가 뭉개져 무슨 뜻인진 알 수 없었다.
쓰러진 엄마와 동생 앞에, 난 그저 망연히 서 있어야 했다. 환각이 끝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