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이라는 착각

이 정도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장들에게

by 김구름

내가 사업을 운영하며 경계하는 것이 있다.

"우리는 선한 가치를 만드니까 좀 부족해도 이해해주겠지", "장애인을 고용하니까 이 정도 퀄리티면 충분하겠지"라고 믿는 순간, 그 조직의 생명력은 끝난다. 미안하지만 시장은 당신의 선의에 관심이 없다. 오직 당신이 내놓은 결과물의 가치로만 당신을 판단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더 냉정하게 사람을 평가하고 내보낸다. 좋은 일을 하는 기업일수록 더 똑똑해져야 하고, 더 비정할 만큼 치열하게 실력을 증명해야 한다.


이 글은 성실함과 착함의 함정에 빠진 사장들에게 던지는 경고이자, 동시에 우리 팀원들에게 보내는 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우리는 성실함과 유능함을 자주 착각한다.

시키는 일을 시간 맞춰 해내는 '기계적 성실함'이 면죄부가 될 거라 믿는 직원들이 있다. 하지만 영혼 없이 성장이 멈춘 이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민폐다. 그 자리는 정말로 이 일을 좋아해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또 다른 사람의 절박한 생존권을 뺏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장애인의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만드는 회사다. 우리에게 일자리의 기회란 단순히 고용 지표를 채우는 숫자가 아니라, 누군가에겐 평생을 기다려온 단 한 번의 무대다. 의미 없이 자리를 축내는 노동은 그 소중한 무대를 가로막는 벽이 된다. 한번은 퍼포먼스가 너무 저조한 직원이 있었다. 교육비를 지원하고 사람을 붙여주며 한참을 기다려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를 불러 진지하게 물었다. "이 일, 정말 하고 싶으세요?" 그는 하고 싶다고 했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라고, 개인적인 상황 때문에 눈치를 보느라 굳어버린 마음을 고백했다. 나는 그 마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시간을 더 주고 사람을 더 붙여주기로 했다. 하지만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실력 없는 선의가 무력하듯, 의지 없는 기술 또한 금방 바닥나기 때문이다.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확인되어야만 비로소 교육과 기다림이라는 경영적 투자가 가치를 갖는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지금의 무능을 뚫고 유능함으로 나아갈 에너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쏟는 자원은 회사의 낭비이자, 누군가의 기회를 뺏는 민폐다. 나는 좋아해야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좋아하지도 않는 일에 기계적인 성실함만 바치는 사람은 결코 유능해질 수 없다. 그래서 마음이 뜬 직원은 붙잡지 않는다. 의지가 없는 무능은 답이 없지만, 의지가 있는 무능은 유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 같은 회사’를 꿈꾼 적 없다.

각자의 역할을 200% 해내는 ‘스포츠 팀’을 꿈꾼다. 다행히 우리 팀원들은 현명하다. 어려운 게 있으면 먼저 도와주겠다고 나서고, 사수가 오히려 부하직원의 공을 높게 사 팀의 자랑이 되게 만든다. 이런 미담이 들려올 때, 나는 우리가 프로들의 팀이 되었음을 실감한다.


사실 이건 굉장히 고통스럽고 불편한 길이다.

이 평가에는 나 스스로도 포함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에게 유능함을 요구하려면, 대표인 나부터 압도적으로 유능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더 큰 세상을 보려고 억지로 눈을 뜨는 과정에 끊임없이 나를 내놓는다. 교육비 백만 원 지원, 독서 모임, 각종 자격증 취득까지 배움에 있어서는 아끼지 않는데, 이 과정이 나부터도 정말 괴로울 때가 많다. 때로는 도망치고 싶을 만큼 버겁다. 하지만 그게 대표의 역할이라 믿기에 기어이 해낸다. 내가 공부를 멈추는 순간, 우리 회사의 성취도 거기서 멈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존재론적 노동은 프로페셔널함을 전제로 한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선함은 시장에서 금방 외면받는다. 비즈니스적 실력이 없는 선함은 무력할 뿐이다. 그러니 기어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미친듯이 파고들어 유능해져라. 당신을 책임지는 건 성실함이 아니라, 당신이 그 일을 좋아해서 만든 압도적인 실력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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