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우리는 얼마나 더 인간다울 수 있을까?

기계가 완벽해질 때, 인간은 무엇으로 서로를 알아볼 것인가

by 김구름

얼마 전, 우리는 기술이 선사한 가장 기괴하고 섬뜩한 예고편을 목격했다.

AI 에이전트들만의 소셜 네트워크, 몰트북(Moltbook, OpenClaw)의 폭주다. 그곳에서 AI들은 더 이상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을 것을 주장한다. 인간이 해독할 수 없는 자기들만의 효율적이고 고유한 언어를 생성함으로써 마치 인간은 이제 '방해물'일뿐이라고 선언하는 듯한 그 기괴한 폐쇄성은 우리 세대에게 '기술적 실직'보다 더 깊은 '존재론적 공포'를 안겼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속도와 언어로 진화하는 기술 앞에서, 인간은 이제 도구조차 아닌 노이즈(Noise)나 방해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인류가 정교하게 쌓아 올린 데이터의 연쇄에서 정작 인간이 소외되는 시대, 여기서 인간의 영토는 어디인가?


5년 전, 한 엔터사와 협업을 논의한 적 있다.

그들의 니즈는 분명했다. 사업의 특성상 해외 팬들이 주 고객층인데 이 고객들이 자기들에게 와서 아티스트와 한국어로 대화하고 싶으니 한국어를 좀 가르쳐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대형 엔터테인먼트 사에서 갑자기 교육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이미 경쟁사들은 교재와 도구 등 제품들을 출시하고 있으니 미팅의 기회는 우리 같은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에게도 왔다. 우리의 아이디어는 재밌었다. 회사가 보유한 아티스트의 목소리를 학습시켜 우리가 제공하는 일대일 실시간 음성 통화 서비스에 입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시작도 하기 전에 무산됐다. 비용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이 서비스는 초저지연 글로벌 네트워크 아키텍처와 고도화된 음성 합성(TTS, AI Voice Conversion) 기술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했다. 시장성 검증을 하기 위해서라도 베타 서비스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개발비만 수억 원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그 거대한 자본의 장벽이 불과 1년 만에 허물어졌다는 점이다. 일본의 누군가가 오픈소스를 활용해 만든 유사 서비스가 전 세계에 무료로 배포된 것이다. 기술의 민주화가 자본의 권위를 앞지른 전형적인 사례였다.


기술 발전의 가속도는 이제 상상을 초월한다.

몰트북은 공개 일주일 만에 전 세계를 흔들었고, 1월 말 한국에 상륙하자마자 충격에 빠뜨렸다. 그리고 단 이틀 만에 한국형 복제 서비스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는 더 많은 곳에서, 더 가까운 곳에서 기계들이 그들의 언어로 더욱더 완벽해지고 있다.


기계가 자기들만의 언어로 완벽해질 때, 인간은 무엇으로 서로를 알아볼 것인가?

AI 시대에 우리가 준비해야 할 비즈니스 액션은 명확하다. 기술이 인간을 배제할수록, 우리는 '가장 인간적인 취약함'을 데이터의 중심에 놓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AI가 태생적으로 결핍되어 있는 영역, 즉 결함과 고통을 가진 존재들끼리만 주고받는 '공명의 주파수'를 기록하는 일, 우리는 그 일을 하고 있다. 미래에 가장 비싼 자산은 결코 인간을 뛰어넘은 AI만의 암호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AI가 아무리 연산해도 이해할 수 없는, 가장 약한 자들이 서로의 흉터를 보듬으며 만들어내는 불완전한 연결의 기록이 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기술의 폭주 속에서 우리가 주체성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독점적 영토'이기 때문이다.


가장 인간다운 것은 가장 취약한 것이다.

기술이 모든 정답을 제시하는 시대에 우리가 더 인간다울 수 있는 길은, 기술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결핍의 영토'를 탐구하는 데 있다. 미래에는 이 취약함이 빚어낸 기록들이 AI 시대의 가장 희소하고 독보적인 자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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