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은 낭만이다
사업했다가 망하면 사실 큰일이다.
잦은 밤샘과 고된 작업은 귀여운 수준이다. 여기에 더해 사업은 대표자에게 24시간 항상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alert 상태로 있도록 하며 모든 말, 행동, 만나는 사람, 쓰는 단어, 시간, 비용을 계산하게 되는 것 같은 예민함을 선사한다. 대표인 나 자신의 지식, 건강, 능력 어느 하나 도태되지 않기 위한 부지런함도 장착시킨다. 게다가 사업은 예민하고 부지런한 사람에게 외로움이라는 것도 덤으로 주기 때문에 사업했다가 망하면 어떡해는 경제적 수준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인격적 수준 즉 인생 전반에 걸친 후유증에 가깝다는 점에서 그 부담의 크기가 달라도 아주 다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그리고 나도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오아시스 같은 행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훌륭한 선배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나는 스트릿 출신이라 세상을 예쁜 눈으로만 바라보기 어렵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였다. 거짓말 같은 이 단어는 나에게 청담의 3층짜리 초호화 집에 살고 기사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며 비싼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일 년에 두어 번 관심도 없는 기관에 몇십억 기부해서 세금 공제받는 소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업을 하다 보니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존재했다. 내 옆에, 서울 전역에, 전국 곳곳에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이를 행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만난 분들은 몇 가지의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보통 수수한 옷을 입고 연비 좋은 차를 타거나 아예 차를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 어린 사람들에게도 존대를 하며 존중한다는 것, 그들 사업의 경제적 가치보다는 사업가 개인에 대한 관심과 사업가 개인이 이 일을 왜 하는지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 그리고 계속해서 배우려고 하며 나누려고 한다는 것이다. 단, 천천히, 아주 조용히.
4-5년 차 때쯤, 이 판이 왜 이리 더러운가 역겨워했던 적이 있었다.
왜 이렇게 내 주변에 '이사'라는 사람들이 많은 거지? 사업자등록도 없이 이곳저곳의 타이틀을 달고 나에게 돕겠다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이사라고 불리기도 하고 사장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교수, 컨설턴트, 팀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보통 그들은 비싼 차를 타며 브랜드 로고가 덕지덕지 크게 보이는 옷을 입고 딱 봐도 어려 보이는 대표들에게 내가 널 언제 봤다고 반말 존댓말을 섞어서 했다. 그야말로 날라리 양아치 같은 행세를 하고 다녔다. 본인의 돈을 자랑하고 배경을 자랑하기도 했다. 이번에 매출이 얼마였으며 자기가 아는 분의 아는 분이 이번에 무엇을 했다는 등, 본인의 능력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껍데기들만 시끄럽게 보여주기 바쁜 와중에도 술이나 따라보라는 개념 없는 말을 내뱉는 것을 잊지 않았다(이런 사람들은 지금도 있다).
그래서 나는 초기 5년 간 '선배'에 목이 말라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기술 베이스의 소셜벤처 여성 선배가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박 대표님을 만났다. 박 대표님은 젊은 대표로 내 바로 앞의 이정표를 만들어 주시는 분이자 대학 때부터 에너지와 제조 영역에서 이름을 날린 여성 창업가자 발명가인데, 알면 알수록 그 스케일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나는 이 분을 한국에서 꽤 큰 기관을 통해 만났다. 그때 당시 나는 탄소 측정과 배출권 거래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박 대표님은 그 일을 너무 세련되게 잘하는 분이었다. 그날은 대표님이 발표를 하는 날이었고 나는 이 분의 발표를 듣자마자 깨달았다. '아 이분이다.' 나는 발표가 끝나는 대로 바로 달려가 명함을 내밀며 인사를 드렸다. 또 뵙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리고 그날 저녁에 친구와 통화를 하며 말했다. "내가 그렇게 원하던 선배를 오늘 만난 것 같아." 그 후로 박 대표님과 나는 탄소와 에너지, 그리고 장애인 고용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제주도도 가고 프랑스도 갔다. 우리는 와인과 위스키를 먹었고 러닝을 했다. "현진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울고 웃으며 불멍을 한 날 새벽, 오두막에 나란히 누워 이야기하던 중 박 대표님이 나에게 했던 말이었다.
장 대표님은 아버지 같은 분이다.
사실 누가 이 분을 이렇게 소개할 수 있을까 싶다. 장 대표님은 벤처 1세대 창업가이자 공학도이자 예술가다. 내가 일반 직장인이었다면 대표님과 나의 관계는 아마 열심히 한다고 해도 사장과 대리 정도의 관계였을 것이다. 하지만 장 대표님은 나에게 처음부터 대표라는 호칭을 써 주셨다. 박 대표님의 소개로 인사를 드린 첫날 우리 셋은 와인을 마셨는데, 막내인 내가 결코 술을 따르지 못하도록 하시는 분은 처음이었다. 당신 술은 당신이 따르겠다고 하시며 나에게도 어디 가서 술 따르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 아빠에게서도 듣지 못한 말이었다. 내가 만난 어른들은 한 손으로 당신이 잔을 들면 아랫사람이 두 손으로 술을 따라주는 그 맛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들뿐이었는데, 그게 아닌 분을 처음 본 것이다. 그날의 충격과 감사함은 일 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지금의 나는 대표님께 가끔 아무런 이유 없이 맛있는 것을 사달라고 하는데, 그러면 대표님은 언제나 "그러자"라고 하신다. 대표님께 "이런 사업을 해 보고 싶다"라고 하면 "그래, 네가 하고 싶은 것 다 하자"고 하신다. 어딜 가나 나를 소개하실 때 "딸 같은 아이예요. 잘 챙겨주세요"라고 하시는, 아무런 대가 없이 그야말로 내리사랑을 하는 선배인 장 대표님은 나에게 "김 대표가 도와달라면 도와야지" 하시는 분이다.
"우리는 현진 씨 같은 청년을 돕고 싶어요."
우연한 기회로 만난 선생님이 계시다. 여성 선배이자 학자이자 경영인이신 이 분은 무엇이든 내가 필요한 것을 말하라고 하시며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현진 씨 같은 청년을 찾고 있었다고, 그러니 필요한 것을 요청하라고 하셨다. 내 눈을 지그시 보시며 웃으시는 그분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자식과 같은 마음으로 진실되게 나를 아끼셨고 그렇기에 혼도 내시고 위로도 건네시며 나를 응원하신다. 이 얼마나 큰 행운이란 말인가. 내가 이런 분들을 어떻게 만날까.
사업은 낭만이다.
가장 차갑고 냉정할 것 같은 사업가들이 가장 따뜻한 위로를 하는 곳. 셈에 가장 능통한 사람이 가장 바보 같은 투자를 하는 이곳은 어쩌면 정말로 낭만이 가득한 곳인지도 모른다. 사업이라는 큰 리스크를 지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행운임에 분명하다. 좋은 일은 당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슬픈 일은 같이 울어주며 좋은 사람들을 소개하고 술을 기울여 밤새 같이 고민해 주는 선배들이 있어 참 감사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