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2주 동안 매일을 울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나와 이사님은 국가고시를 치르고 오는 길이었다. 그 시험은 합격률이 낮은 시험이었는데, 우리에겐 반드시 올해 안에 시험을 치러 실기 합격까지 받았어야 하는 마일스톤이었다. 중요한 일이니만큼 나는 시험 전 이틀부터는 밤을 새우기 시작했고 핸드폰도, 노트북도, 슬랙도, 이메일도 보지 않고 밥도 거의 안 먹고 공부했다. 그리고 우리는 시험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귀가했다. 기분이 좋았다. 그 이메일을 보기 전까지.
'김**님 부고를 알려드립니다.'
이상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일했던 동료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눈을 다시 씻고 날짜를 봐도 오늘이 만우절은 아니었다. 스팸이겠지. 여러 명에게 무작위로 보낸 저급한 광고겠지. 수신자 목록을 열어 확인했지만 이 이메일은 나에게만 와 있었다. 이 사람은 자신이 누군지, 연락처는 무엇인지, 우리 동료와 무슨 관계인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이 사람은 '회사 직원분들의 번호를 알 수가 없어 부득이하게 메일로 연락드린다'라고 하면서 발인 시간만을 알려줬다. 발인 장소는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누가 메일을 이렇게 써? 심지어 이 메일은 이틀 전에 와 있었다. 말도 안 돼. 고인이 되셨다고 주장하는 우리 동료의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받겠지. 여느 때처럼 중저음의 멋진 목소리로, '네, 대표님' 하시겠지. 그러면 나는 '아, 깜짝이야. 놀랬잖아요' 하겠지. 하지만 전화는 아무도 받지 않았다.
이사님에게 전화했다. '긴급연락망을 써주세요.'
나는 이 이메일 주인을 찾아 연락할 테니 이사님은 이 소식을 우리 직원들에게 모두 공유해 달라고 했고, 짧은 시간 안에 25명 직원 전체가 이 소식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동료들은 각자 이 분의 지인들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이 이메일 주인과 연락이 닿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발인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두 시간 후였다. 이메일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도 발인 장소는 적혀있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 동료가 어딘가에서 발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야 했다. 동료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계속 걸어보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이렇게 긴 통화 연결음은 처음이었다. 거짓말 같아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내 전화를 누군가 받았다. 동료의 목소리를 기대했지만 다른 사람이었다.
친척 동생이라고, 지금 가족들과 발인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두 시간 되는 거리를 지금이라도 가도 되냐는 내 질문에 그분은 너무 늦을 것 같다고, 마음만 전달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 동료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주지 못했다. 왜 나는 이메일을 보지 못했을까, 왜 나는 내 명함을 이 분의 집에 두지 못했을까, 왜 나는 우리 회사 홈페이지에 내 개인 전화번호라도 올려놓지 않았을까, 왜 나는 여기서 멍청하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걸까. 나는 사랑하는 나의 동료가 이렇게 갑자기 하늘로 먼저 떠난 것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고 그 마지막 길에 내가, 우리 회사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하루 종일 울었다.
그날 저녁, 고인이 된 동료의 동생분과 연락이 닿았다.
나는 눈물이 나 말을 길게 내뱉기도 어려워서 짧은 단어로 그저 너무 늦게 알아서 죄송하다고 했다. 그분은 대표님이시냐고, 연락 주셔서 감사하다고, 오빠가 그동안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너무 즐거웠다고 가족에게도 여러 번 말했다고 했다. 나는 목이 막혀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잠을 잤는지도 모르게 밤이 지났다. 다음 날인 월요일 아침 우리 직원들은 모두 사무실에서 모여 봉안당으로 출발했다. 누군가는 술 냄새를 풍겼고 누군가는 눈과 얼굴이 잔뜩 부은 채로 차에 탔다. 멀리 경기도 군포에서 온 동료는 휠체어 대신 지팡이를 짚고 왔다. 그분은 걷기가 힘들어 여러 번 넘어졌고 동료 생각에 눈물이 눈 밑까지 차올랐지만 고인이 자신에게 '선생님은 성격이 정말 밝으시니 앞으로도 계속 웃으시면 좋겠다'라고 했다며 그 말씀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울지 않겠다고 했다. 그분은 그 자리에서 끝까지 울지 않았다.
대표님, 이 말 너무 좋은데요. Standard is shit.
우리 동료가 살아계셨을 때, 오랜만에 회사를 방문하셨던 어느 날이었다. 이 분은 내가 여기저기 휘갈겨 써 벽에 붙여 놓은 여러 문장들을 보시고는 하나를 딱 찍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Standard is shit.' 오, 좋은데요? 이 분은 장애인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우리 회사가 마냥 착한 회사가 아니라 젊고 재밌는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재미없고 지루한 포용이 아니라 젊고 힙합 포용을 하자고 말이다. 나는 그렇죠, 이 말 좋죠? 신나서 대답했고 그 이후로 이 문장은 우리 회사 여기저기에 붙어있다. 그렇게 생겨난 우리 회사의 얼굴, 우리 회사의 슬로건이 담긴 '하티' 인형은 지금도 그분 옆을 따뜻이 지켜주고 있다.
나는 아직도 우리 동료가 너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