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중요한 건 동업자다
난 분명히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훌륭한 파트너가 궂은 길을 함께 가자고 나에게 와 주었을 리 만무하다. 우리 회사 이야기를 하려면 제일 큰 역할을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우리 회사의 임원이자 친구이자 파트너인 박경이 이사다. 우리는 대학 선후배 사이었는데, 경이님은 우리 학부에서 공부 잘하고 일 잘하고 성격 좋기로 유명했다. 그런데 심지어 웃기기도 한 사람이었다. 유니콘 같은 사람이었다.
대학 때부터 나와 경이님은 재밌는 프로젝트들을 많이 했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주머니를 불리려는 목적도 아니었다. 지역 고등학생들의 진로 고민에 도움을 주기 위한 토크 콘서트, 입봉 하지 못한 신진 작가와 영화감독들을 위한 영화제, 훌륭한 동문들을 한 데 모아 주소록을 제작하는 일 등 모두 지역 사회와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위한 일이었다. 뭐, 대단한 일도, 무엇 하나 돈 되는 일도 아니었지만 우리는 그 일을 밤을 새워서, 누구보다 진심으로 재밌어하면서 했다. 그러다 내가 4학년, 경이님이 3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졸업을 위해 단편 영화를 제작했어야 했다. 동기들은 부모님께 조금씩 손을 벌려 적게는 20만 원에서 많게는 30-50만 원을 제작비로 모은 반면, 나는 경이님을 데리고 이리저리 다니며 지역의 공공기관과 소상공인들로부터 1,000만 원 가까이를 펀딩 했다. 거의 삥을 뜯었다고 볼 수 있다. 기관장들과 지역의 사장님들은 우리를 어여삐 보셨고 흔쾌히 대학 졸업작품에 후원을 하셨다. 그래봤자 대학생 졸업 작품일 텐데 이렇게 큰 금액이 모인 것은 학과 설립 이래로 전무후무했기에 교수님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우리를 쳐다보셨다. 우리는 펀딩한 금액을 어떻게 쓸까 고민했고, 다른 팀이 삼각김밥을 먹으며 밤을 새울 때 우리는 팀원들을 고기 뷔페에 데려가 밥을 먹였다. 섭외비에 보태 좋은 배우들을 섭외하는 데 썼다. 그리고 우리 팀은 A+을 받았다. 그저 이 사람과 하는 작업이라면 무엇이든 걱정이 없었다.
세 번. 나는 경이님께 러브콜을 총 세 번 보냈다.
창업을 시작하고 아무런 돈도 없고 팀원도 없을 때, 당연히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은 경이님이었다. 대학 졸업 후 오랜만에 안부차 첫 번째 전화를 했을 때, 경이님은 이미 다른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언니, 나 스타트업 다니고 있어!" 아니, 이 회사 대표 누구냐 운도 좋다, 경이를 데려가다니. '안되는데. 너 나랑 일해야 되는데'라고 하고 싶었지만 "잘 됐다. 축하해!"라고 했다. 한두 달 후, 두 번째 전화를 했을 때 나는 긴장했다. 해선 안 될 말을 하는 사람처럼 떨었다. "경이야 있잖아, 사실 나도 창업했는데" 공기가 싸해졌다. "네가 들어왔으면 좋겠어!" 수화기 너머의 경이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이님은 스타트업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매일 해야 하는 야근에 불확실한 미래, 복지가 무엇이고 워라밸이 무엇인지 입 밖으로 꺼내기도 어려운 분위기. 근무 조건도, 일하는 환경도 쉬운 것이 없고 무엇보다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고 했다. 심지어 본인이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사가 어려워졌고 그 때문에 지금 회사에서는 대규모 레이오프가 진행 중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자기 월급은 몇 개월째 밀렸다고 했다. "언니 미안, 나는 앞으로 스타트업은 더 다니기 어려울 것 같아." 나는 끄덕였다. 그래, 나는 경이한테 줄 한 달 월급도 없지.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럼 경이한테 줄 여러 달 월급을 마련하면 되는 거 아닌가? 내가 물었다. "그 회사, 계약 언제까지야?" 나는 일 잘하고 믿을만한 파트너가 필요했고 나에게 그건 경이님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 분을 데려오기 위해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찾았다. 그렇게 여러 달을 거쳐 신용보증기금의 100% 보증서가 나왔고, 나는 마지막으로 경이님에게 전화했다. "나랑 같이 하자. 나 이제 너 월급 줄 수 있어."
4억 대출에 사인하러 가는 날, 나는 은행에 경이님을 데리고 갔다.
융자인지, 투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이 돈으로 경이님과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많은 것을 의미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미래는 재밌게 할 수 있는 것들 투성이었다. 경이님은 나를 걱정하고 있는데 정작 나는 신나서 4억 융자 계약에 사인했다. 이제 우리 같이 일 할 수 있다며 신나서 팔짝팔짝 뛰던 내 모습을 경이님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로부터 7년 후, 우리는 지금도 같이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이 쪽 벽에서, 경이님은 저 쪽 벽에서. 나는 대표로, 경이님은 아래 25여 명을 둔 사업총괄이사로.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팀원들의 면접을 봤고, 많은 수를 내보냈고, 또 많은 수를 채용했다. 같이 울어도 보고 웃어도 보고 밤새서 놀다 각자 다리 한 번, 팔 한 번 부러지기도 했다. 엄한 사람과 시비도 붙어 보고,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도 맞아 봤다. 우리는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땄다. 우리는 서로의 남자친구와 남편을 만났고, 그 스토리를 세세히 알고 있으며 해외와 국내 이곳저곳을 함께 다녔다. 많은 수의 인증을 받고 상을 받고 사업을 따 왔으며 언론에 나왔다. 이 모든 게 가능했던 이유는 정말로, 경이님 덕분이다.
창업자에게 돈보다 중요한 것은 사업 아이템도, 기술력도, 시장성도 아니다. 사람이다.
아이템은 바뀐다. 기술력도, 무한할 것 같은 시장도 바뀐다. 하지만 결국 일을 만들어 내는 것은 사람이 한다. 많은 대표들이 착각하는데, 대표자가 혼자 해 내는 일은 거의 없다. 무슨 말을 해도 믿어주고 들어주는 사람, 불가능할 것 같은 계획을 현실적으로 평가하고 이행하고 잘근잘근 쪼개어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 누구보다도 회사의 미션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동료들을 사랑하는, 그 한 명의 핵심 멤버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내가 힘들 때 버팀목이 되어주고, 못 했을 때 혼내주고, 쓸데없는 고민을 들어주고, 결국 더 나은 결론을 내게 해 주는 것은 사실 모두 그들이 한 것이다. 창업의 외로운 길을 외롭기만 한 것으로 끝나지 않게 하는 것은 나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의 힘이다. 우리 옆에 있는 세상의 모든 동료들에게 박수를!
박경이 바보 똥개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