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초청한 한국 대표 여성 창업가

미국에서 배운 자본의 논리

by 김구름

이 프로그램은 지원서가 없다.

미국 대사관이 직접 선발하고, 미국 국무부가 9개월간 검증을 거쳐 최종 승인하는 국제 방문자 리더십 프로그램(International Visitors Leadership Program, IVLP)이다. 전 세계 리더들을 대상으로 미국 국무부가 직접 '핸드픽(Hand-pick)' 하는 이 프로그램은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다녀간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프로그램에 나는 작년, 여성 기업가 정신(Small Business and Women's Entrepreneurship) 분과에 유일한 한국인 대표로 선정되었다.


미국은 왜 나를 불렀을까?

공항으로 향하며 자문했다. 하고많은 훌륭한 기업가들 중 왜 내가 뽑힌 걸까? 단순히 장애인을 고용하는 '착한 여자 사장'이라서? 내가 남들보다 열심히 살아서? 하지만 내가 만난 미국 정부는 그렇게 낭만적인 곳이 아니었다. 그들은 철저히 가능성과 확장성, 그리고 이 사업이 자본주의의 그림자를 걷어낼 임팩트가 있는지를 계산했다. 3주간의 연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워싱턴 D.C에서 만난 동료들은 총 23개국에서 온 23명의 각국 대표 여성 리더들이었다.

독일과 스페인 같은 유럽 국가부터 인도, 방글라데시를 거쳐 남미의 가이아나, 태평양의 솔로몬 제도, 그리고 아프리카의 모로코, 르완다, 앙골라까지. 평생 가본 적도, 심지어 이름조차 생소했던 나라의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누군가는 기업의 수장이었고, 누군가는 국가의 정책을 움직이는 정부 기관의 수장이었다. 우리는 3주 동안 다섯 개 주, 다섯 개 도시(Washington D.C, Chicago, Detroit, Tulsa, L.A)를 횡단했다. 각국의 비즈니스 모델을 공유하고, 미국의 정책과 우리 시스템의 융합 가능성을 타진하며 쉼 없이 파트너십을 논의했다. 함께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이동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 거대한 문화 인류학 현장이었다. 우리는 저녁마다 서로의 나라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을 찾아가 문화를 먹고 마셨다. 낮에는 치열하게 미팅하고, 저녁에는 바와 클럽에서 놀았다. 나도 다 모르는 로제의 'APT.' 가사를 지구 반대편에서 온 이 친구들이 더 열정적으로 떼창 하던 순간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미 국무부는 이 모든 과정에서 최고 수준의 예우를 제공했다.

전 일정 항공권과 숙식은 물론, 품격 있는 호텔의 개인실이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심지어 프로그램 첫날, D.C에서 우리는 각자의 이름이 정갈하게 적힌 봉투 하나씩을 받았다. 그 안에는 현지에서 자유롭게 문화를 체험하라며 넉넉한 현금과 카드가 들어있었다. 이름이 적힌 돈 봉투를 건네받으며 느낀 설렘만큼이나, 내가 여기서 무엇을 얻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그 고민은 프로그램의 꽃인 기업 네트워킹 시간에서 '충격'으로 돌아왔다.

나는 우리 회사의 미국 진출에 대한 파트너십을 생각하며 매 순간 치열하게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하면 우리 회사가 미국에 진출하여 장애인 채용을 100명, 200명 더 늘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은 내가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가장 무거운 숙제였으므로 나는 이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 하지만 함께 연수받던 다른 국가의 리더들은 달랐다. 내가 우리 회사의 채용 숫자를 세고 있을 때, 그들은 자기 나라의 정책을 바꿔서 우리 회사 같은 기업이 100개, 200개 더 태어나게 만드는 법을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했다. 하나의 회사가 장애인 100명을 고용하는 것보다 장애인 10명을 고용하는 회사를 100개를 만드는 것, 그리고 그것이 당연한 '판'을 짜는 것. 아, 임팩트는 이렇게 내는 거구나. 이것이 더 큰 가치를 가진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나는 묘한 무력감과 동시에 뜨거운 갈증을 느꼈다.


그 갈증에 마침표를 찍어준 건 IFC (국제금융공사) 담당자와의 미팅이었다.

수조 원의 자본을 움직이는 그 기관은 여성 기업가를 위한 자금 조달 프로그램을 설명하며 우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여성 기업에 투자하는 건, 당신들이 소외계층이라서가 아닙니다. 지난 몇십 년 간의 데이터가 증명합니다. 여성 기업이 수익률이 더 높고, 상환율도 더 높으며, 성장 속도가 더 빠릅니다. 우리는 철저히 우량한 파트너에게 투자할 뿐이니, 우리의 자본을 가져가 잘 써주십시오." 전율이 돋았다. 나는 실제로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사업을 키운 뒤 지체 없이 상환하고 있는 기업가였기에 '잘 부탁드린다'는 그의 말이 나에게는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 세계 자본의 심장부가 나에게 "당신의 실력을 믿으니 제발 우리 자본을 가져가 달라"라고? 이게 말이 되나? 그 어디에서도 받지 못한 위로이자 용기였다. 결국 여성 기업이든, 소셜벤처든, 우리가 선택받는 이유는 우리가 약자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압도적으로 유능하기 때문이어야 한다. '여자니까, 좋은 일 하니까 도와달라'는 시혜적인 태도로는 결코 세상을 설계할 수 없다. 자본이 먼저 찾아와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실력, 그것만이 시스템을 바꿀 자격을 부여한다.


미국에서의 3주는 내게 확신을 주었다.

약자라서 돕는 것이 아니라, 수익성 좋은 파트너라서 투자한다는 그 비정한 데이터가 오히려 나에게는 가장 큰 위로이자 해방구였다. 한국의 작은 임팩트 시장 속에서 동정심에 기대어 연명하는 방식은 이제 유효기간이 끝났다. 우리는 더 냉정히 실력으로 증명하고 자본으로 쟁취할 것이다. 우리가 만드는 가치가 '선한 의지'가 아닌 '우량한 데이터'로 읽히는 순간, 비로소 세상의 진짜 변화는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확신을 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착한 일을 한다는 이유로 가난을 기대하는 이 지긋지긋한 현실부터 깨부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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