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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씨 후레쉬 Nov 12. 2022

모과를 주웠다

#주소사산문집_B004


# 모과를 주웠다.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선천적 조기기상증을 는 터라 토요일 아침에도 6시에 눈을 떴다. 수면 ASMR의 대명사 이말년이 읊어주는 삼국지 유튜브를 들어도 쉬이 다시 잠에 들지 못했고, 일어난 김에 집 정리나 하는데. 이른 시간이라 청소기는 돌리지 못하고, 분리수거나 슬슬. 아파트 15층에 살 때는 분리수거하러 내려가기가 그리 귀찮았는데- 회사 가까이 빌라로 오고 나서는 출근할 때도 페트병 하나 택배 상자 하나 툭툭 던져버리고 차에 오를 수 있어 좋다. 분리수거함이 있는 담벼락을 따르다 보면 우리 집의 감나무와 옆집의 모과나무가 나오는데- 덕분에 가을에는 딱딱한 열매가 떨어질까 겁이나 주차할 수 없는 공간이 두 개나 생겨버린다. 빈 주차 공간에 가끔 감이나 모과가 나뒹굴기도 하는데, 오늘의 주인공은 모과였다. 민법 상 상린관계를 서로 주장하지 않는 양측 건물주의 인심인지 서로의 무관심인지- 가지는 넘어와있고, 열매가 떨어져도 딱히 아무도 소유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새벽에 모과를 주웠다.


# 모과향이 그득하다.

새벽에 모셔온 모과를 주둥이가 넓게 퍼진 맥주잔 위에 얹어놓았더니 은은하니 향이 그득하게 퍼졌다. 일찍 일어나는 새는 벌레를 잡고, 일찍 '일어나진' 나는 향을 얻었다. 울퉁불퉁 예쁘지도 않은 것이 어찌 이런 향을 품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또 생긴 것이 못생겼지 입고 있는 옷은 레몬 빛인지 노랑빛인지 그 사이의 오묘함이 있어 제법 취향에 맞다. 국어사전에도 모과 색이라며 모과 빛깔과 같은 노랑이라고 뭉뚱그린 표현을 쓰며 모과를 대우하고 있으니 오묘하고 예쁜 색인 것은 틀림없다. 국어사전 공식 인증 모과 색에서 퍼져 나오는 향은 교보문고 시그니처 The secret of page 디퓨저 향을 압도하는데. 모과가 단풍지고 낙엽 떨어지는 계절만의 것이 아니라면 일 년 내내 내음을 모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괜한 아쉬움도 방안에 떠다니지만- 크기로 보아하니 근 한 달은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도 없지는 않고.


# 목과를 목과라 부르지 못하고.

모과는 한자로 木果라고 하던데. 목과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는 木이 나무 목, 모과 모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는 TMI. 목이나 모나 아무렴. 심지어 모과나무는 장미과로 분류되는 데다- 5월에 내미는 분홍 색감의 모과꽃의 꽃말은 '유혹'이라 하니. 열매는 못생긴 녀석이 가지가지 반전 매력의 능력자라는 점은 새삼 놀랍다. 만성 비염환자로서 물고기 마냥 입으로 호흡하는 탓에 편도가 편치 않은 날도 잦은지라- 기관지에도 좋다는 모과 녀석을 예찬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고.


모쪼록 모과처럼 단단하니 내실 있고, 은은하니 향이 스미는 사람이면 좋겠다. 너도, 나도.




모과를 술로 담가 먹으면 그리 맛있다던데.

100일 정도만 지나면 마실 수 있다 하니.

지금쯤 슬쩍 저며두면 정월대보름 즈음 귀밝이 술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귀밝이 술을 마셔야 1년 내내 좋은 소리가 들려올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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