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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씨 후레쉬 Nov 25. 2022

축구와 장례식

#주소사산문집_B006 / 내 장례식은.

# 경사보다는 조사가 많은 나이가 되었다.


장례식에 다녀왔다. 자연스레 헌화를 하거나 향을 올리고, 두 번의 절을 하고, 상주와 맞절을 한다. 언제 몸에 익었는지, 경사보다는 조사가 많은 나이가 되었다. 십 년을 함께 공을 찬 풋살팀 동생의 아버지 상. 풋살팀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결혼식이 많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조사에 술잔 기울일 날들이 자연스러울 게다. 꼭 정장을 입지 않아도, 휘황찬란한 복장이 아니라면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나이기도 하다. 금요일이라 더 캐주얼하게 입은 날, 이미 운전대를 잡은 지 10여분이 지났고. 돌아가기에도 그리하여 마음을 더 짙게 담아 장례식에 가기로 결심.


# 짠하기에 '짠'하면 아니 된다.


상주의 슬픔은 경사가 아니기에 장례식은 건배를 하지 않는다. 다행히도 오늘은 차를 가져간지라 술잔을 기울이지는 않았다만. 자연스레 몸에 밴 술자리 '짠'을 쉽게 지우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장례식은 오랜만에 만나는 이들의 내심 반가운 장이기도 한 것도 어쩔 수 없고. '짠'을 하든 안 하든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 북적대고, 화환이 가득한 장례식은 어쩌면 호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피어오르는 밤. 


# 축구와 장례식


북적대는 장례식을 꾸미기에 좋은 취미는 축구다. 축구의 아류 풋살만 해도 최소 10명은 모여야 경기를 한다. 축구는 22명이 모여야 하고. 각자의 삶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집단적 취미활동을 한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종교처럼 정기적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가정 내 암묵적 합의를 이끄는 것이 어려운 바. 그리하여 축구나 풋살팀은 최소 2배~3배의 인원이 구성되어야 어느 정도는 운영을 할 수 있기에, 북적대는 장례식을 위해서 추천드리는 취미는 축구라는 말씀.


"형, 엄마가 왜 이렇게 축구하는 사람이 많이 오냐는데?"

"엄마, 나의 아저씨 안 보셨어?"

*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는 친지가 없는 주인공을 위해 조기축구 회원들이 몰려가 북적대는 장례식으로 만들어 준다.


# 준비된 이별은 덜 힘든가요.


"아버지 돌아가셔서" 

아침 출근길에 왔던 상주의 카톡은 담담하기만 하고. 장례식에서도 차분하니 조곤조곤 조문객을 맞이하는 몇 안 되는 상주를 만난 날. 사실 이 친구는 아버지의 투병 생활 중 언젠간 떠나시겠거니 하고, 틈틈이 근교로 여행을 모시고 다니던 효자였는데- 틈틈이 마음이 정리가 된 건지, 후회 없이 모셨다는 마음인 건지. 준비된 이별은 덜 힘들까 싶기도 하다만, 담담하고 차분하니 우직한 뒤태에도 허한 마음이 가득하리라. 


# 나만의 미신.


좋은 마음으로 다녀오는 장례식도 혹은 다른 기운이 함께 할까 생겨난 미신들이 있는데. 상갓집에 다녀올 때는 옷에 소금을 뿌려야 한다던가, 사람 많은 곳을 거쳐서 집을 향한다던가. 소금을 편의점에서 뭉태기로 사서 뿌리는 과소비적인 행위는 할 수 없고, 주로 차를 이용해서 이동하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이 많은 곳을 거치기 꺼려 하기에. 나만의 뇌피셜 가득한 미신이 생겨났는데. 장례식을 다녀오는 즉시 입었던 모든 옷을 세탁기에 때려 넣어 돌리고, 인센스 스틱에 불을 붙여 혹시나 누군가 함께 왔더라면 조심히 가시라는 나만의 의식.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나름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종종 단어 뜻을 찾아보는 경우가 있는데. '삼가'도 마찬가지. 회사 경조사 게시판에 자연스레 복붙으로 댓글을 다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에서 '삼가'는 겸손하고 조심하는 마음으로 정중하게 라는 뜻이라는 것을 언젠가 찾아본 적이 있었다는. 모쪼록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내 장례식은.


기억이 맞다면 싱어송라이터 강백수의 산문인지 노래가사인지에 나왔던 내용 같은데. 내 장례식은 내가 주인공인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다 모이는데- 내가 없으면 억울하니, 살아 있을 때 장례식을 미리 치르면서 즐거이 보내고 싶다고. 이런 방식도 제법 괜찮은 바, 나도 살아 있을 때 장례식을 치를 수 있다면- '삼가'의 뜻을 알려주면서 아는 체도 좀 하고, 돌아가실 때는 나만의 미신도 함께 하실 수 있게 인센스스틱을 나눠주는 것도 제법 좋을 것 같은데. 오래전에 읽었던 내용이라 강백수 작가님 글이 맞았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생전의 내 장례식은 좋아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면 좋겠어. 사람도 많이 모인김에 공도 한번 차고, 라스트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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