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겨울.
9초.
오후 네시 삼십구분이 지나던 순간.
여행에 관해 무언가를 쓸 때면 늘, 이 장면이 떠오른다. 2011년 겨울, 오타루에서 하코다테로 가는 버스 안에서 마주친 모습이다. 두 번째 출국, 여행이 아닌 일로 해외에 나가긴 처음이었다. 출국일을 삼일 앞두고 갑작스레 출장이 정해졌다. 카메라를 새로 구입하고 미팅을 하고 모든 일이 정신없이 진행됐다.
신치토세 공항으로 입국해서 삿포로, 노보리벳츠, 오타루, 하코다테를 거쳐 다시 삿포로 신치토세 공항에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삿포로에 내리기 전까지도 내게, 일본은 그저 먼 나라였다. 섬나라, 우리나라와는 관계가 껄끄러운 사이, 게다가 북해도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는데 괜찮을까 하는 걱정뿐이었다.
새 카메라와 삼각대를 어깨에 메고 정신없이 뛰었다. 공항에서 곧바로 대절버스를 타고 이동했고, 어딘지도 모모르는 곳에 내려 촬영을 하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눈이 쌓인 도로를 달렸고 다시 어딘가에 내려서 똑같은 일을 했다. 영상을 촬영하며 겨우 사진을 몇 장씩 찍었다. 낯선 나라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둘째날 일정이 끝난 오후였다. 아기자기한 상점가를 몇 번이고 왕복했다. 촬영이 모두 끝나고 길가에 서서 구운 해물을 먹었다. 비슷한 얼굴이지만 다른 사람들, 익숙한 듯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 어디선가 본 것 같지만 낯선 거리. 그제서야 내가 멀리 떠나왔다는 걸 실감했다.
장비를 챙겨 버스에 올랐다. '아마 서울은 아직 밝겠지만, 여기는 벌써 한밤중입니다'라는 여행사 사장님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창밖은 깜깜했다. 눈 쌓인 거리를 느리게 달리는 차들, 붉게 반짝이는 브레이크등, 마주치는 차들의 환한 전조등, 그리고 낯선 나라의 거리.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를 들고 아무 생각 없이 셔터를 눌렀다. 어쩌면 10초쯤, 나는 홀로 낯선 나라를 떠도는 영혼이 됐다.
몇 년이 지났다. 그 거리가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었다는 것도, 지금은 아기자기한 관광도시가 됐지만 예전엔 부자동네였다는 사실도, 패키지 상품으로 여행을 가면 반드시 거치는 곳이라는 것도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그 후로 오타루에 몇 번이나 더 갔는지 모른다. 눈 쌓인 오타루 거리를 걸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선술집에서 밤새도록 맥주를 마셨다. 술이 덜 깬 오후에 겨울항구를 혼자 서성거렸다. 한여름 서늘한 날에도 머물렀다. 오타루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차를 멈추고 먼 바다를 바라봤다.
며칠 전, 잊고 있었던 파일을 찾았다. 그 순간이 담겨 있었다. 내가 낯선 나라에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서울은 아직 낮이었을 시각엔 밤이 찾아온 거리, 반짝거리는 불빛들이. 사실대로 말하자면 늘 내가 생각했던 그 풍경과는 달랐다. 그저 흔한 겨울밤거리의 풍경이었다.
그렇지만 내게 여행은, 여행의 꿈은 오타루에서 시작된다. 무릎까지 눈이 쌓인 거리와 그 거리를 밤새도록 달리던 제설차 소리, 얼음처럼 차갑던 맥주를 떠올리는 순간 내 여행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