묫자리란 게 있기는 있다.
3~4년 전쯤인가. 큰외삼촌의 장례를 치르고 장지로 이동했다. 족보에 맞춰 이미 정해진 묫자리였기에 옮기고 말고 할 것도 없었고, 풍수지리를 따질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지관이라는 분이 와서 절차를 진두지휘했다.
집안 어르신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마을 축제 즐기듯 지관의 행동을 지켜보셨다. 지역에서도 아주 유명한 사람이라며 귀에 들릴 듯 말 듯 인건비 얘기를 주고받는다. 그야말로 '헉' 소리 나는 표정을 짓는 걸 보아하니 '소비자가'는 또 아닌 모양이다. 거기에 손발이 맞는 인부로 조를 이뤄 꼭 그렇게만 움직인다고 한다.
-비즈니스구먼. 마케팅만 잘하면 프리미엄 전문가로 독과점도 가능하겠어.-
그냥 수평을 맞추고 봉분 모양을 잡는 일 말고는 특별한 것도 없어 보이는데 묫자리라는 게 그런 게 아니란다. 알 수 없는 곡조로 의식을 치르는 동안 나눠 준 현금을 들고 줄줄이 헌납을 했다. 땅이 좋아 자손들이 득을 본다는 풍수지리 분석도 잊지 않았다. 베어낼 나무를 짚어주는가 하면 추가로 길을 내면 좋을 곳을 알려주기도 했다.
"저 지관 쟁이가 명당을 기가 막히게 찾는다. 묏자리를 아무나 안 봐줘. 시간이 안 된다는 걸 사정사정해서 어렵게 맞춘 거야."
엄마가 목사 아들만 셋을 둔 큰이모를 잡고 용한 점쟁이 얘기하듯 한다.
"뭐 얼마나 대단한데? 명당으로 부동산 덕 좀 봤어?"
"그건 모르겠고, 얼마 전에 21살 어린 여자랑 재혼했잖아."
참 어르신들과 얘기하다 보면, 나의 국어 능력에 한 번 좌절하고 한글의 위대함에 탄복하고 만다.
알 수 없는 논리에서 내가 놓친 핵심이 무엇인가.
문맥 안에 숨겨진 함의는 무엇이란 말인가.
나만 빼고 다 알아들으신 듯한데 이야기 전개를 종잡을 수 없다.
"자기네 집안 묫자리를 잘 써서 어린 여자랑 결혼했다는 거야?"
"아니, 제 친구 딸하고 결혼했다는 거지."
죽은 친구 묫자리를 써줬다더니, 지관 쟁이 좋은 일만 했구먼. 무슨.
"배가 고프다!"
장례 후 처음 맞는 설날, 꿈에 찾아온 남자가 단호하게 한마디를 던지고는 매몰차게 돌아서서 가버렸다.
머리로는 큰외삼촌으로 인지했지만, 형상은 큰외삼촌이 아니었다. 큰외삼촌이라 하기에는 너무 말랐고, 아버지라 하기에는 키가 조금 더 컸다.
-매번 제사를 잘 지내는데 어쩐 일로 배가 고프다고 하실까.-
몇 번이고 엄마에게 전화할지 하다가 해몽만 뒤적이고 말았다. 괜히 속 시끄러운 일에 애써 모르는 체하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가 저녁 무렵 제사상 사진을 문자로 보내왔다.
-뭐가 달라졌는지 맞혀봐.
-여덟 명
밥과 국에 숟가락 여덟 개가 꽂혀 있었다.
전화를 드렸다.
"배가 고프시다지?"
"너 어떻게 알았어?"
같은 시간, 엄마의 꿈에는 외할머니가 찾아오신 모양이다.
"우리 밥도 같이 차리면 안 되겠냐?"
생전, 막내 외삼촌만 싸고돈다고 하도 뭐라 그래서인지 현관문을 들어서지도 못하고 계단 앞에서 눈치만 보고 계시더란다.
내가 엄마에게 화를 내는 거나, 엄마가 외할머니에게 화를 내는 거나 어찌 그리 똑같은지.
어차피 후회할 거면서 잔뜩 주눅이 든 외할머니에게 화를 내고 말았단다.
"제사상 다 차렸는데 이제 와 얘기하면 어쩌라는 거야?"
남편 제사만 올리는데 구색 맞출 것도 없어 떡국이 조금, 나물이 조금인 명절제사다.
그래도 '내 밥'이 아니라 '우리 밥'이라는 말이 못내 신경 쓰여 그 길로 일어나 밥을 더 안치고 수저를 챙기신 거다.
제사를 그리 지내고서도 엄마는 안절부절못한다.
"어쩐다니, 왜 배가 고프다고 하시지? 뭐가 잘못됐나?"
"친구를 많이 사귀셔서 나눠 드셨나 보지."
엄마는 예삿일이 아니라며 그달이 가기 전, 차례 음식을 잔뜩 준비해 선산을 다녀오셨다.
"그러니까 비싼 돈 들여 지관을 쓰는 게 무슨 소용이야?"
"그나마 지관이 묏자리를 잘 썼으니, 조상이 찾아온 거지, 멍충아."
누구 말이 맞는 건지는 더 살아봐야 알 것 같다.
중은 제 머리 못 깎는다는데,
무당이 제 굿 못하고 소경이 저 죽을 날 모른다던데.
지관은 제 좋은 묫자리를 미리 봐두었을까.
이러나저러나 죽은 친구 묫자리 잘 본 덕에 21살 어린 친구 딸과 재혼했으니 됐지 뭐.
사진출처: Unsplash의 Bruno Bra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