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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Apr 13. 2024

왕 소금구이 대폿집



"성진이 엄마, 오늘은 밥하지 말고 외식하게."

 

집 앞에 왕소금구이 가게가 즐비하다.

값싼 돼지 부위를 투박하게 썰어 막 굽는 맛에 먹는 대폿집이다. 빠듯한 형편 탓인지 아버지가 참 좋아하던 안주였다.


"나 오늘 회사 관뒀어."

"어메야."

어머니가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구조조정으로 명예퇴직을 한다는 건 알았지만, 오늘이라는 말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연탄배달, 포장마차, 젓가락공장 닥치는 대로 돈을 벌었다.

그러다 직장다운 곳에서 월급을 받으며 일한 지 겨우 10년이 넘어간다.

 

3교대 경비 일이다. 고생한 세월에 비하면 고될 것도 부끄러운 것도 없는 직업이다.

나름 공기업에서 운영하는 발전소 경비원이라 상여금도 있고 애들 학자금도 나온다. IMF가 터지기 전까지 더할 나위 없었다. 엄마가 소주 공장에서 병을 닦아 돈을 벌지만, 아버지 월급 없이는 생활이 안 된다. 당장 집에 대학생이 둘이다.     


아버지가 술잔을 털어 넣는다.

십수 일, 누구보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밤을 보냈으리라.     


"퇴직금으로 방앗간 차리자.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엄마의 유일한 기술이다.

방앗간 일이 고되 기술자가 오래 버티지 못한다. 기계도 보통 위험한 게 아니다. 그래서 큰이모가 엄마와 아빠를 푼돈으로 부렸다. 가난하니 쇠푼이라도 벌겠다고 마다하지 않았다.

벌어 먹고사느라 배운 떡 기술이다.     


개업하기도 전에 큰이모가 사흘이 멀다고 행패를 부렸다.

같은 업종끼리 모여 장사하는 시장 골목에 방앗간 자리가 빤하다. 그런데도 기술 훔쳐 이모네 근처에 방앗간을 차려놓고 손님까지 빼돌린다며 패악을 부렸다.     


“주는 대로 받아먹고 살지.”

이 한마디에 제사떡과 푼돈을 쥐여 주며 큰댁 마님 노릇을 하던 이모의 민낯이 드러난다.

직장 잃은 아버지가 더 쪼그라든다. 이모네 떡 배달을 하느라 배곯아가며 고생한 세월을 모르는 체하는데도 야속하다 말하지 못했다.     


개업식 이후로도 가게 앞에서 한 달이나 손님을 가로막았다.     


4개월 후,

큰이모가 아버지 장례식장에 찾아왔다.     

"이 어린것들을 어찌할꼬."

신발을 벗기도 전에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행패 부리던 목청 그대로다. 위로랍시고 힘으로 끌어안는다. 상복도 채 입지 못한 내 팔뚝에 이모의 손톱자국이 새겨진다.     


'부잣집 방앗간 큰이모'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다.     


기술 훔쳐 방앗간 차리더니 남편 잡아먹고 돈 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모가 낸 건 아니라는 말만 전해 들었다.     


기록적인 태풍 이후 싸구려 왕소금구이 노포가 사라졌다.

지금은 토박이만 아는 가게 자리다.     


20년 만에 방앗간 건물을 팔던 날, 대신 들어선 삼겹살집에서 소주 한잔을 했다.     


"아빠가 퇴사했다고 말하던 곳이야. 방앗간 팔고 한잔하는 기분이 어때?"

"이제야 정말 끝난 것 같네."     


고생하셨습니다.




사진출처: 미트타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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