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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May 02. 2024

장미 사주


“장미 사주라지?"

"그게 뭔데?"

"인생에서 5, 6월쯤이 되는 나이에 활짝 피는 사주를 장미 사주라 그러는데 좋은 거야. 지금이야 안 풀리는 것 같고 힘들어도 초년이 지나 피는 인생이라 노년이 편하거든.”


사주를 보고 왔다는 직장동료에게 결과를 듣기도 전에 그녀의 사주를 풀어줬다.


당연히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일찍 결혼했으면 이혼했을 거라는 둥, 집에 사과나무가 있네, 없네 하는 논리다.

젊은 나이에 사주를 보러 온 사람의 고민이야 뻔하지 않겠는가.


"맞아. 지금은 힘들어도 중반에 풀린데. 또 얘기해 봐."

“또 얘기해 줘?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네가 겉으론 강해 보여도 마음이 약해. 거기에 갑자기 의도치 않게 팀장이 되고 나니 압박이 말도 못 하지. 그런데 팀원들이 네 맘 같지 않아 속이 문드러졌지?”


누구에게나 툭 던져도 먹히는 장미 사주만큼 기가 막히게 잘 맞는 경우가 또 있다.


목주름.


그 동료는 눈매가 날카로워 강해 보여도 목주름이 유독 많았다.


나이가 들어 생긴 목주름이 아니라 그냥 목에 주름이 많은 사람이 있다. 근거가 전혀 없는 신체에 관한 이야기 중 목주름이 많은 것은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서 생긴 것이란다. 심장 기관이 아니라 약한 마음을 보호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목주름이 나이에 비해 많은 사람은 성격이 강해 보여도 마음이 아주 여리고 속앓이를 많이 한다고 들었다. 과학적이지도, 의학적이지도 않지만 대충 눈대중으로 풀어 틀린 적은 없었다.


"손은 왜 모아?"

불안하고 답답해 점을 보고 온 동료의 손이 공손하게 모인다.


"관상 공부했어?"

"비슷한 거 했어. 그러니 앞으론 점 보러 가지 마. 술사면 내가 얘기 들어줄게."


사주카페, 신점, 부적까지 근 백만 원쯤 되는 돈을 내다 버리고서야 얻은 알량한 깨달음으로 사주 놀이를 했더랬다.




이삼십 대 젊은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 때 승승장구 일이 잘 풀린다고 여겼을까.


다들 그렇게 사는데도 나만 인생이 꼬인 것 같아 메모까지 해가며 점쟁이에게 의지하고 사주라도 붙잡았던 시절이었다.


초년,

압구정동 사주카페 사주쟁이가 내게 툭 던졌던 장미 사주.


장미가 피는 계절이 해마다 찾아오니 잊지도 못한다.


사십도 훌쩍 넘었는데 인생의 오뉴월은 언제라는 겁니까.

장미가 올해도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도대체 나는 언제 피는 겁니까.

이젠 기후변화도 생겨서 장미는 점점 더 빨리 피는데 어쩌라는 겁니까.


동료에게 던져버린 말이 무색하게 장미가 필 때마다 원망하는 사주쟁이 말을 아직도 놓지 못한다.


-장미 사주라 했다.-

-지금은 힘들어도 노년이 편할 거라 했다.-




사진출처: Unsplash의 Reanimated Man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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