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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Apr 18. 2024

너를 본 지 오래되었다


너를 다시 만나게 되는 날이 있을까.

다시 만나게 되는 날에 너는 나를 사랑스럽다고 여겨줄까.

그래서 어느 날엔 내가, 태어나길 잘했다고 말하게 되는 순간이 올까.


너를 본 지 오래되었다.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창비, 2014.)




먼 훗날 아빠를 만났을 때 못 본 사이 훌쩍 커버리고 부쩍 늙어버린 딸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걱정이 되었다. 인생을 고스란히 받아낸 행색이 참 사랑스러웠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나를 알아보지 못해도 좋으니, 한 번만이라도 만나게 해 주십사 간절하게 바랐더랬다.

군중이 스치는 찰나에도 사랑스레 바라보는 아빠의 눈빛을 놓칠세라 길 잃은 다섯 살 아이처럼 불안하게 두리번대고 발을 구르고 서 있는 상상을 수만 번도 더 하며 살았다.


아버지도 바라는 자식의 삶이 아닐 테지만,

아버지도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겠지만


본 지 오래되어 버리고 만 삶을, 산다.


다시 만났을 땐, 사랑스럽다고 여겨질 인생을 살려고 부단히 애쓰지만, 그냥 본 지 오래된 삶만 산다.

 

묻고 싶은 게 백만 가지는 더 되는데 마침맞게 대신해 주는 문장을 오늘만도 수십 번 홅아본다.




사진출처: 본인(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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