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도둑질을 지켜봤다.
학교 앞 문구사에서 볼펜 훔치는 학생을 감시하는 알바가 있던 시절도 겪어봤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참으로 보기 드문 어른의 도둑질이다.
먹고살 만하기도 하고 CCTV나 보안이 잘되어있어 아주 쉽고 빠르게 반드시 잡히는 범죄 아니던가. 눈치를 보고 가슴 졸여가며 숨는 노력에 비하면 참 남는 것도 없어 보이는데 다이소에서 도둑질이라니.
동네 전통시장에 아주 큰 다이소가 들어섰다. 그래서인지 지하철 역사에 있는 다이소보다 어르신이 유독 많다. 물건이 많아 자주 가지만 어르신들의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은 쉬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환불하려고 직원이 있는 계산대를 이용하려면 불경이든 성경이든 뭐라도 외어야 할 판이다. 무인 계산대 사용이 어려운 어르신들이 직원에게 계산하려고 줄을 선 탓에 어지간히 긴 줄을 기다려야 한다. 게다가 막무가내로 물건부터 올려놓고 계산을 해달라고 성화인 어른도 많아 지성과 무지성, 예의와 배려 등 다양한 각도로 <나이 듦>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도둑질이다. 나이 든 어른의 도둑질을 지켜보고 섰더랬다.
할머니 한 분이 바닥에 앉아 바코드 스티커를 떼고 계셨다. 바구니 가득 담은 물건의 스티커를 제거하고 낚싯줄이 달린 텍을 잡아 뜯어 본인의 시장 가방에 옮겨 담았다. 비닐봉지, 에코백, 방수 천으로 만든 가방. 보따리가 세 개나 된다.
다이소에 아주 많은 사람과 직원이 있었지만, 그 모습을 목도하고 선 건 나 하나였다. 어르신의 노림수였는지는 몰라도 직원들은 마침 새로 들어온 물건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창고로 옮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손님들이야 지하철에 연예인이 타도 얼굴 볼일 없다는데 매장에서 타인을 관찰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직원에게 말할까.’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을 일러바치는 일이 과연 잘하는 짓일까.‘
윤리와 양심, 측은지심과 안타까움이 뒤엉킨다. 엎질러진 사이다를 손으로 짚은 것처럼 끈적이고 불편하다.
배고파 훔친 음식도 아니고, 생필품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것들.
어디 되팔아 버리려는 의도로 여러 개 챙긴 물건들.
형편이 어렵다고 하기엔 지방 덩어리가 차고 넘쳐 덜렁덜렁 흘러내린 몸매.
‘가난한 게 맞지. 부자들은 비싸고 좋은 재료로 건강하게 먹어 몸을 잘 관리하거든. 서민들이 식용유 먹을 때 유기농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 먹는 격으로.’
나도 지갑 사정이 팍팍한 40대지만 사는 게 뭐라고 복지가 문제인지 가난이 문제인지. 선거도 끝난 마당에 별생각을 다 하다가 표표히 돌아서 버렸다.
계산부터 해달라고 새치기를 하고 밀치는 나이 든 사람에 대한 무지성의 문제도 아니고,
가난하고 살기 팍팍해서 죄의식 없이 하는 행동도 아니다.
그냥 사람이 문제인 것을 윤리가 무슨 소용이고 측은지심이 웬 말이란 말인가.
혐오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을 막아서기엔 그녀가 너무 늙었다. 세 살도 어려울 판에 여든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죄의식을 말하기엔 너무 늦어 버렸다.
그녀.
이렇게 예쁘게 불리던 때가 있었을 텐데 어찌 그리 노욕을 부리는 노인네로 불리기를 자처하는가.
여인이여, 할매요, 그대여.
한때 크레파스 같은 꿈도 그렸을 텐데 어쩌다가 늙기만 한 사람이 되었는가.
사진출처: Unsplash의 Austin Guh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