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랑 부산 가 살래?"
나보다 8살이 많아 오빠라고 하기에는 미안했던 모양이다. 술에 취하면 함께 고향으로 내려가잔 소리를 하곤 했다. 그러던 그에게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은,
"내가 먼저 연락한 적은 없잖아."... 였다.
"오빠가 확실히 말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라는 여자 친구 성화에 휴대전화를 건네받은 그가 던진 말이다.
당황해서 바로 답할 수는 없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봐야 했다.
항상 내가 먼저 연락했던가, 우리는 내가 연락해야 만나던 사이였던가.
아닌 것 같은데 맞는 것 같았고 아니어도 맞아야만 했다.
"죄송합니다."
누구에게 죄송한 건지도 모를 말을 뱉었다.
어차피 스피커폰일 텐데 각자의 생각대로 나눠 가졌을 말이다.
그가 먼저 회사를 그만뒀고 몇 개월 후 내가 그만두고 나서야 이년이 채 안 되는 서로의 시간이 끝났다.
이후로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누가 됐든 '그'의 옆에 있을 사람이 신경 쓰였다. 문자를 보낼 수는 있어도 전화하는 건 두려운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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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다른 사람하고 같이 못 살아."
-네가 그러니까 혼자 사는 거야.- 정도의 문장이었다.
자음, 모음이 귀에 때려 박힌다. 아저씨의 말이 최악인 줄 알고 살았지만, 시간에 희석되어 결국 최근이 최악이 되는 순간이다.
죽어도 같이 살 일이 없는 관계임을 굳이 확인시켜 주었다.
같이 살 일이 없어서 만나는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수없이 물어도 들을 수 없었던 관계에 대한 답이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와 버렸다. 부산 아저씨와 달랐던 점은 옆에서 누가 지켜보는 와중에 자기 살겠다고 던진 말이 아니라는 것 정도다.
그러니 더 진심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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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내게는 함께 오른 버스였다.
바뀌는 풍경을 함께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는 일이 좋았다.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함께 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처럼 설레는 기분이었다.
창문 밖, 우리와 상관없는 일상을 지켜보는 것도 이벤트 같았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공기를 공유하며 우리의 시간을 기억하는 일도 행복했다. 얼굴 위로 비스듬히 내리쬐는 햇살의 각도를 고스란히 받아내는 것, 흔들리는 버스 의자에서 어깨와 팔, 무릎이 미세하게 부딪히는 감촉조차 노곤하리만큼 편안했다.
흔들리는 버스 같은 연애를 했다.
결국 정류장에 내리고서야 깨닫는다. 서로 다른 곳에서 내릴 수 있는 버스라는 것을.
서로 다른 정류장에서 주위를 살핀다.
지금부터는 풍경이 다르다.
사진 출처: Unsplash의 Ryoo Geon 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