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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Aug 11. 2023

건물을 팔았다


엄마가 건물을 팔았다.

문장이 나를 제법 부잣집 딸로 만든다. 사실 시골 건물이라 서울 아파트 한 채 값도 안 된다.


20년 전 구입한 건물이다.

시장에서 방앗간을 시작하고 막 자리를 잡아 갈 무렵, 건물주가 건물을 팔아야 하니 가게를 비우라고 했다. 방앗간은 IMF로 명예퇴직을 한 아버지 퇴직금으로 마련했다. 그야말로 전 재산이다. 수중엔 1,000만 원이 전부였고 당장 집안에 대학생이 두 명이다. 엄마는 계약금도 안 되는 돈을 합쳐 은행에서 대출하고 친구에게 돈을 빌려 건물주가 되었다.


아픈 오빠가 집에 오게 되자, 건물부터 내놨다.


엄마가 건너에 있는 군에서 이곳으로 온 건 큰돈을 벌 수 있는 일감이 생겨서다. 먼 길까지 와 돈을 벌어도 집으로 돌아갈 차비 45원이 없었다. 아무리 고돼도 걸어서 집에 가야 했다.


그랬던 그녀의 통장에 오늘 잔금이 들어왔다.

세상 만져본 적 없는 액수가 찍혔다. 상상만 하던 동그라미를 세어보다 자기도 모르게 한마디 내뱉는다.


"성공했네. 45원도 없던 년이. "




엄마는 새마을운동 세대다. 지긋지긋하게 가난했던 시절이다. 정부가 주는 밀가루를 타려고 외할머니와 사방공사를 하러 다녔다. 산을 넘지 못할 만큼 배가 고프면 산 중턱 박달 무를 뽑아 먹었다. 청무라고도 했던 박달 무는 빈속에 먹으면 속이 아려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맵다. 그마저도 먹어야 산다고 할머니가 이로 껍질을 싹- 벗겨 주면 허겁지겁 먹을 만큼 배를 곯았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큰어머니가 불러 세우더란다. 일을 도와주면 감자와 밥을 준다고 했다. 횡재를 한 듯 일을 해주고 나니 밤 10시다. 집에 와 받아 들고 온 검은 봉지를 풀어본다. 밥에서는 쉰내가 나고 감자는 진물이 나 찐득찐득 늘어졌다.


"그래서 버렸어?"

"깨끗이 씻어 먹었지. 배가 아플까 봐."

아는 사람이 더 야박했고, 그마저도 감지덕지했다.


가난한 아버지와 결혼했으니 당연히 결혼 후에도 가난했다.


아버지가 연탄배달을 나가면 엄마는 1살, 5살 된 아들딸을 데리고 길거리 포장마차 장사를 했다. 울어 재끼는 딸 얼굴을 수건으로 덮어 포대기로 업고 어르고 달래 가며 술과 안주를 팔았다. -엄마가 해주는 닭발은 지금도 맛있다.- 순했던 아들은 조용히 옆에서 손님이 건네는 오뎅값을 받아 깡통에 넣는 일을 맡았다.

우리가 스스로 자고 일어날 수 있게 되자 새벽에 요구르트 배달을 했다. 자식들 자는 동안 머리맡에 요구르트 하나씩을 두고 새벽 배달을 하고 돌아온다. 요구르트 배달은 건강한 간식을 자식에게 공짜로 먹일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돈벌이라 믿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퇴직금이 있던 건물이다.

남편 목숨값으로 차린 방앗간이라고 손가락질받아 가며 악착같이 빚을 갚았다. 병과 박스를 줍고 떡 배달 수레를 수천 번 수만 번 끌었다. 계절마다 원산지 속여 판다는 거짓 신고로 경찰조사를 받기 일쑤였다. 역대급을 기록한 태풍으로 가게가 침수돼 수십 가마니의 쌀과 깨를 버리기도 했다.


온전한 엄마의 건물이 되기까지 세월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참 많이 섭섭하고 시원하며 아픈 건물이다.


건물이 없으니 매달 받던 월세 수입도 없다. 큰돈은 아니지만 어찌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며 거친 손으로 눈물을 닦는다.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란다.

집으로 내려온 아들이 더는 직장생활이 어려울 거로 생각한 모양이다. 오자마자 뜻이 있어 건물을 내놓았으리라.


건물주 딸이라는 농담도 이제는 못 하겠네.

정말 다른 사람 것이 되었다.


 

사진출처: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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