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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Aug 09. 2023

피해자가 약자인 세상


음주운전 교통사고의 피해자다.

17살 새벽 2시 독서실 차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다 봉고차에 치였다. 옷이 끼였던 모양인지 몇 미터를 끌려갔다.


음주운전, 중앙선 침범에 횡단보도 사고였다.

교복 외에 내복, 카디건, 코트까지 입었는데 옷이 갈기갈기 찢겨 등까지 도로에 쓸려버렸다.

안경이 깨지면서 왼쪽 눈썹 부위가 찢어졌다. 조금만 빗나가도 실명이다. 엄마가 여자애니까 잘 꿰매달라고 했지만, 의사 선생님은 무심하게 찌그러진 십자가를 만들어 주셨다.

의도치 않게 눈 옆에 20여 땀으로 십자가를 새겼다.

반대쪽 얼굴 관자놀이 부위는 살점이 떨어지고 화상을 입었다. 피부 이식을 해야 했다.

볼에 난 세로줄 상처가 수년간 지워지지 않았다.

“너 머리카락”

볼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주려 친구가 손을 데다 상처인 줄 알아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집인데 도착 1분 전 사고가 났다. 엄마가 비명을 듣고 창문을 열었지만 사고 차량을 보지 못했다. 그만큼 속도가 빨랐다. 다행히 독서실 원장님이 쫓아가 가해 차를 막아섰다.

비명은 내가 지른 게 아니라 차량 동승자 3명이 지른 소리다.

부부 동반 만취자이자 방조자다.

그들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 파출소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어 조사가 어려웠다.


3일 만에 중환자실에서 깨어났다.

의사가 말을 시킨다.

"여기가 어딘지 알아요? 이름이 뭐예요. 이게 몇 개예요?"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이다.

무의미하게 구구단을 외워보고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는지 꼽아본다. 머리는 정상인 거 같으니, 팔다리가 다 있는지 궁금했다.


가해자의 아내가 7살짜리 딸과 함께 크리스마스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청소년 피부 해결사로 핫했던 저가 브랜드 화장품이다.

처자식이 있으니 합의해 달라고 한다.


엄마는 앉아있는 내 등을 앞으로 밀며 가해자 처자식에게 똑똑히 보라고 말했다. 진물이 나는 피부에 거즈가 잔뜩 붙어있다. 아스팔트 가루와 안경 파편으로 만신창이가 된 얼굴은 어린이공원 풍선만큼 부풀었다. 그런데도 보란 듯이 곱디고운 7살 딸아이를 앞세워 합의를 운운한다며 나가라고 했다.

화장품을 바를 상황이 아니다.


아빠는 병원비와 피부이식 수술비를 포함해 700만 원에 합의했다. 부모 입장에서 그 정도면 됐다고 하셨다. 사고 난 자식 앞세워 장사할 것도 아닌데 그 정도면 됐단다.




뉴스에 온통 억울한 피해자뿐이다.

사건과 사고를 다루는 뉴스니 당연하겠지만 많아도 너무 많다. 뙤약볕에서 시위하다 쓰러진다. 관계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부짖는다.

피해자가 되는 순간 이상하게 약자가 된다.


어떻게 살아야 사고를 피할 수 있을까.

말 그대로 사고인데 당할 거면 억울하지 않게 당해야 할 판이다.


지켜보는 사람은 - 자식 앞세워 장사한다.-는 말로 비난하며 적당히 하라고 한다.

자식 목숨으로 장사하는 경험을 해볼 테냐고 묻고 싶다.

- 목숨값이라는 말도 조심스럽다.-


가족의 목숨으로 받은 돈을 어찌 편히 쓸 수 있겠는가. 얼마를 받으면 억울함이 누그러지고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까. 지옥 같은 경험이리라.

복구되지 않는 피해 앞에 만족하는 보상도 없다.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뭐 그리 어렵다고 사과가 사라진 세상에 산다.


아빠가 700만 원에 합의한 것을 두고 다들 너무 쉽게 합의해 줬다고 했다. 합의금이 충분해서도, 우리가 부유해서도 아니다.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남이 어렵게 마련한 돈 받아 다른 용도로 쓰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자식 앞날에 죄가 될 것 같다고 했다.


- 그래도 코트 새로 사 입게 옷값은 좀 주지.-

한창 옷에 관심 많은 여고생인데 입학할 때 사 입은 코트가 아까워 혼났다. 선경 스마트 교복 시절이다. TV에서 광고하는 메이커 교복에 맞춰 세트로 장만한 코트였는데 한 계절을 채 입지 못했다.




6주 만에 퇴원하고 독서실 원장님께 음료수를 사 들고 찾아갔다.

이름과 함께 좌석 번호 54-b라고 얘기하는 순간 부모님을 원망했다.

- 왜 사실대로 얘기 안 해 줬지? 사람을 만날만한 상태가 아니란 걸.-


"거기 홍 OO 학생 자린데?"

"네, 제가 걔예요."





사진출처: Pixabay의 ValynPi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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