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자는 옥자고 춘애는 추냬다. 길자는 항상 조길자다.
육십년지기다.
추냬와 옥자가 부업으로 오징어를 찢었다. 킬로에 오천 원씩 쳐준다. 둘 다 손이 빠르고 죽이 잘 맞아 공장 기계 돌리듯 했다. 일감이 없을 땐 오징어를 찢던 상에 둘러앉아 엽서를 칠한다. 밑그림이 그려진 엽서에 물감을 칠하는 일인데 검은 선을 조금이라도 넘어가면 돈을 받지 못한다. 장당 1원이다.
애들 옷은 사는 게 아니라 응당 얻어 입히는 것이다. 추냬의 딸은 모르는 사람 이름이 <오바로크> 된 아람단 단복을 입을 정도다. 딸이 창피한 건 모른다. 추냬에게 아람단 단복은 튼튼한 청조끼일 뿐이다.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추냬가 생애 첫 집을 마련했다. 이 일로 옥자와 추냬는 10년을 의절한다. 정확히는 집들이 선물로 추냬가 옥자에게 싱크대를 해 달라고 한 게 화근이 됐다.
옥자가 - 거북표인지 백조표인지 - 싱크대값을 건넸다. 그만하면 그녀가 아는 메이커 중 최고급이다. 추냬는 한샘이 아니라고 싸구려 취급을 했다.
둘 다 한샘이 뭔지도 모른다.
서로가 오징어채처럼 가늘고 얇게 찢어졌다.
옥자와 추냬가 다시 연락을 주고받은 건 자식들이 대학생이 된 후다.
추냬는 옥자처럼 반찬을 만들어 딸에게 택배를 보내는 게 소원이란다. 딸이 집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어 이루지 못한 소원이라며 종종 옥자 딸에게 반찬을 해 보냈다.
그게 어디 해보고 싶은 일이라 그랬겠는가. 옥자 딸이니 맛있는 걸 먹이고 싶었을 테다.
한샘이 뭐라고 10년을 못 본 체하고 살았는지 내심 미안함을 표현하는 방법이었으리라.
올여름엔 옥자가 반두를 샀다. 계곡에 갈 생각으로 한껏 신났다. 물고기를 죄다 쓸어올 기세다. 잡아 온 물고기는 살짝 갈아서 추어탕처럼 끓여 냉동실에 소분해 둘 요량이다.
물고기를 모느라 발을 얼마나 굴렀는지 바람이 빠진 풍선 같은 다리에 흉터가 가득하다.
옥자가 차에서 반두를 내리다 빽 소리를 지른다.
"야, 조길자!"
이래서 조길자다.
- 조길자야, 잘 지내니?- 는 말이 되지 않는다.
조길자는 좀 느리다. 특별한 고민도 없다. 옥자와 추냬가 융통성 없고 눈치 없는 조길자 때문에 울화통이 치밀어 무안을 주지만 조길자는 그들의 속을 알 리 없다. 항시 평온하다.
"조길자 아줌마가 또 왜? 그렇게 답답한데 왜 만나?"
"애는 착해."
조길자가 음식을 만들어 냄비째 들고 왔다. 아픈 옥자 아들을 보양하려 손수 만든 요리다.
옥자네 애들이 잘 먹지 않는 음식이다.
'아, 이래서.'
추냬처럼 맛있는 거 해먹이라고 돈으로 주면 좋았을 텐데.
조길자 아줌마는 착하다. 날도 더운데 음식을 하느라 불 앞에서 여간 고생한 게 아닐 터다.
다들 중학교 밖에 못 나왔으면서 만날 여고생처럼 놀고 왔다고 한다.
그래.
어떻게 놀든 옥자, 추냬 그리고 조길자만 즐겁고 건강하다면 됐다.
사진출처 : The Korea Times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