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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Aug 31. 2023

안녕, 베르나



황금 모래색 베르나 1.3.

생애 첫차였다.

“야, 베이지색이지.”

“정말 격 떨어진다. 황.금.모.래.색. 모르냐?”


첫차가 수재민이 되던 해 색깔처럼 사라졌다. 태풍으로 불어난 물 색깔이 딱 황금 모래색이었다.


“비가 많이 와 네 차가 떠내려갔고 나는 다른 집으로 대피했어.”

“어쩌라고? 다시 끌고 오면 되지.”

밤새 술을 마신 다음 날 엄마의 전화에 말하는 본새가 정상은 아니다.


그제야 티브이를 켠다. 뉴스 현장 화면에 우리 동네가 나온다.

- 우리 집인데.-

재난지역 학생이라 14일간 수업을 빼고 본가로 내려갔다.


엄마가 챙긴 짐은 보자기에 싼 귀금속과 거실에 걸어두었던 액자 하나가 전부다. 아버지와 엄마가 젊었을 때 찍은 사진이다. 키가 160센티미터도 안 되는데 가슴까지 물이 차버렸으니, 보따리를 머리 위로 바짝 올려 들었을 터다. 물에 전기가 흐르고 물살이 일어 이마저도 떨구지 않으려 몹시 애쓴 모양이다.


처참했다. 우리나라 모든 건축자재와 세간살이를 집 앞에 쓸어다 놓은 듯하다. 떠내려간 차량까지 한데 엉켜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천장까지 물이 찼다가 빠진 집에 진흙만 가득하다. 성한 물건이라곤 단 하나도 없었다.

엄마 방앗간에 쌀과 깨는 수십 포대를 버려야 할 판이다.

명절 앞두고 대목을 준비하던 엄마가 털썩 주저앉는다.

아버지 산소가 일부 유실됐다. 잔디를 입힌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날이 더워지자, 온 사방 악취가 진동한다. 역병이 돌아도 이상하지 않을 환경이다.


군대 차가 줄지어 들어온다. 천군만마 군인이 물에 젖은 가구를 꺼내느라 땀에 절여진다. 제설과는 다른 삽질로 끝도 없이 물과 흙을 퍼냈다. 맥이 빠져 토사가 벚꽃처럼 깔린 길바닥에 철퍼덕 뭉거진다.

망연자실한 수재민이다.


가전제품 수리 기사님이 군인만큼 반갑다.

"여기요. 우리 집이요."

수리를 접수하러 잽싸게 뛰어간다. 쓸만한 건 하나라도 더 살려야 하는데 물과 토사에 버틸 제품이 많지 않았다.


어두워지기 전에 밥을 받아와야 한다. 여기저기서 봉사를 나온 천막 앞으로 줄이 생긴다.

"몇 명이요?"

"3명이요."

인원수만큼 봉지에 밥과 국을 담아주면 서너 가지 반찬이 담긴 봉지를 함께 받아 왔다.


도배, 장판값이라며 100만 원이 나왔다. 피해 규모가 큰 만큼 가구당 돌아오는 보상액이 턱없이 부족했다.

수재민 돕기라고 모금한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연예인이 기부한 돈은 무슨 용도로 쓰는 걸까.

지금도 역대급 기록을 유지한 태풍이다. 어떤 보상기준을 적용한 건지 우리 집은 또 가난해진다.


"추석 대목이 큰일이다."

동동거리는 엄마를 홀로 두고 올라와야 했다.


국립대를 다니던 오빠는 한 학기 등록금 전액이 면제됐다. 사립대인 우리 학교는 70%를 지원해 줬다.


사고가 나면,

"자연재해도 아닌데 국가가 왜 보상해 주냐."라고 말을 한다.

자연재해가 나도 국가가 엄청난 보상을 해주는 건 아니다.

'자연재해', '불가항력'은 정부에 오히려 좋은 명분이다. 천재지변이라 보상이 안 되는 규정이 기가 막히게 많다.

이재민도 약자가 된다.  

음주운전 사고가 났을 때 얻었던 교훈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자연재해도 억울하지 않게 당해야 할 판이다.


황금 모래색 베르나 이후 운전면허증은 장롱 면허가 되었다.

이쯤 되면 면허가 없다고 하자.


마주하는 가을 태풍에 다들 안녕하시길.


사진출처: Unsplash의 pure ju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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