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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후 4시

잠깐 나올래?

by 빌려온 고양이


"잠깐 나올래? 눈 온다."

돈이 없던 남자 친구가 감동을 주는 방식이었다.

선물보다, 맛있는 식사보다 그런 순간들이 더 고마웠다.


물론 지금 같으면 그러겠지.


춥지, 길 미끄럽지. 어딜 나가.

그냥 집으로 들어와.

눈 내리는 거 좋아할 나이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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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할 때 늘 듣던 팝 음악 대신 어쩌다 한국 발라드 몇 곡을 넣었더니 가사가 귀에 꽂힌다.


"잠깐 나올래."

이렇게나 설레는 말이었던가.


그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참 진심으로 대했다는 것을 아주 오래, 그리고 자주 기억한다.

별거 아닌 것 같았던 찰나가 내 기억의 전부가 되었다.


가사 한 소절에 돌아갈 수 없는 시절까지 소환하고 보니 정말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이래서 한국어 노래는 위험해.




사진 출처: Unsplash의 Valentin Vlas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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