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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후 4시

그의 베란다

by 빌려온 고양이



앞집 남자가 나를 범죄자로 만들 생각인 게 틀림없다.


욕을 달고 살던 앞집 여자, 늘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던 그녀가 이사를 갔고, 젊은 신혼부부가 들어왔다. 앞집 여자가 쩌렁쩌렁 통화하던 베란다엔 운동용품이 채워졌다.

운동 좀 하는 사람인가.

건조대에 러닝복을 널면서 앞집 베란다를 힐끗 보곤 했었다. 어떤 운동을 하는지 궁금했을 뿐이다.


그런데 오늘, 눈을 의심했다.

거짓말.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앞집 남자의 뒷모습이 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오전 열 시가 훌쩍 넘었다. 어둠에 가려질 시간도 아니었다. 시야가 또렷해졌다. 그럴만한 거리였다.

아, 이를 어쩐다.


적당히 태닝 된 피부, 그리고 정말 애써 잘 만든 몸.

내가 러닝을 하면서 마주치는 몸이란 대부분 레고처럼 평평하게 쭉 뻗은 몸뿐인데,

달랐다.

그러니까 저렇게 굴곡진, 살아 있는 선을 본 건 정말 오랜만이란 소리다.


공연음란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훔쳐본 것도 아닌데 뭐랄까, 이게 참 묘하다.

죄는 아닌데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다행히 그가 몸을 돌리기 전에 커튼을 닫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나도 모르게 기웃거리듯 앞집을 훔쳐보고 있다.

범죄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구나.

한두 번 몰래 보다가 관음증이 되고, 끝내 불법 촬영까지 하게 되는 거겠지.


호기심은 죄보다 빠르다.


불행해 보이던 앞집 여자의 욕설을 사 년이나 들으며 살았으니, 이 정도 스릴은 보상쯤으로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슬며시 우겨본다.




사진 출처: Unsplash의 Florin Gor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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