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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Jul 31. 2023

진흙 가마니를 지고 갯벌을 걷고 있다

버겁다


오빠가 퇴원한다.

엄마에게 "살고 싶어요."라고 말하던 아들이 퇴원을 한다.


목을 겨우 가누는 정도인데 퇴원하라고 하니 내쫓기는 심정이다.

“걸을 수 없는데 퇴원하라고요?”


아침부터 분주하다.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병원 생활임에도 짐이 차로 한가득하다.

간호사분에게 인사를 하려고 데스크부터 들렀다. 감사하다는 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진심을 담아 90도로 허리를 숙인다. 어떤 상황에도 일정하게 친절했다. 쉽지 않은 환자를 밤낮으로 웃으며 응대한다. 가족도 이렇게 힘든데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큰일을 겪고 보니 무심코 지나친 사람마저 소중하다. 착하게 살고 싶다. 좋은 일을 하고 싶어진다.


만기 출소하듯 병원 회전문을 밀고 나와 시원한 바깥 공기에

- 이런 날이 오는구나.- 달라진 세상을 한번 훑으며 걸어 나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로또 같은 상상이다.


한 달 치 약봉지와 서류, CD를 잔뜩 챙겨 휠체어를 타고 퇴원한다.




집에 와서도 오빠에게만 매달렸다.

병원도 아닌데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아기 보살피듯 곁을 지키고 섰다.


보조기를 의지해 다리에 힘을 줘본다. 밥도 대접으로 몇 그릇을 해치운다. 타지에서 엄마 밥이 얼마나 그리웠을지 먹고 싶다는 음식을 하루가 멀다고 해 먹였다.


집밥, 드디어 살이 오른다. 앙상해 팔뚝만 하던 다리에 힘이 붙는다. 노파심에 잔뜩 사 온 기저귀는 한 팩도 채 쓰지 않았다.

갓 태어난 송아지가 일어서려 애쓰듯 바들바들 걷기 시작한다.


생명이 어미 품에서 살아난다.


다들 잘 버텼다. 돈도 안 벌어도 된다. 앞으로 무조건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




담배를 달라고 한다. 정말 살만해진 모양이다.

이게 아닌데.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부터 엄마의 고된 뒷바라지까지 감정으로 호소했다.

소용없다.


쓰러질까 봐 의자에 앉아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아 당긴다.

퇴원하고, 보름만이다.

담배 개비가 수북이 쌓여간다.


살아서 집으로 갈 수만 있다면 바랄 게 없었다. 전쟁통에 피범벅이 된 가족을 구해오듯 꽉 잡았던 손이다. 노력도 몰라주고 그 손으로 담배를 잡고 있다.


기껏 이 짓거리를 하려고 악다구니 쓰며 버틴 게 아닌데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가족의 건강이 무너지는 순간 내 삶이 무너졌다. 오빠는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는 할까.

겨우 멱살을 부여잡고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 애쓰는데 나만 애달파 허둥지둥한다.

 

진흙 가마니를 지고 갯벌을 걷고 있다. 가족이 물귀신처럼 끌어당긴다.


오빠는 거동만 불편한 줄 알았는데 상식적인 대화가 안 되는 날이 대부분이다. 평생 밥 먹듯 연구했던 분야의 수식을 이틀이 지나도 풀지 못했다. 그런데도 예전 같지 않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기운이 생기고 고집을 부리니 영락없는 치매 환자다.

내가 모르던 모습이다.


투정과 분노를 받아주기에 지쳤다. 나를 추스를 시간 따윈 필요 없다고 착각했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천천히 설명하고 상황을 정리하다가 갑자기 죽고 싶어졌다. 내가 없어지면 나만 바라보고 있는 일이 함께 사라질 것 같다.


짐을 챙겨 도망쳤다.




몇 달 만에 돌아온 집은 사람 손을 타지 않은 티를 제법 낸다. 구석구석 퀴퀴한 냄새가 난다. 화분은 반 이상이 죽었다.


음식을 주문했다. 돈푼 아낀다고 먹지 못했던 음식을 잔뜩 주문했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진다. 다시는 못 먹을 음식처럼 먹었다.


가족이 없는 공간에서 그제야 잡고 있던 정신을 놓아본다. <꺼이꺼이>란 단어를 온몸으로 표현하듯 울어버렸다. 땅바닥에서 발을 버둥거리는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다.


엄마에게 전화했다.

왜 아무도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냐고 따져 물었다. 왜 고생했다고 말하지 않냐고 소리를 질렀다.

급기야 단어도 문장도 없는 괴성을 내지른다.


- 또 얼마나 후회하려고.-


엄마가 울면서 미안하다고 한다. 자기도 모르게 의지했다고 미안하다며 운다. 미안한데 엄마가 너무 늙었다고 말한다.


사실 미안할 일인지, 왜 사과를 받아야 했는지 알지 못한다. 혼자 치열하게 싸우며 긴 터널을 빠져나와 보니 생채기가 난 온몸이 곪아 터지고 있었다. 상처가 물에 닿아 쓰라리고 아팠을 뿐이다.


아무 문제도 없는 줄 알았던 가족이 무너져 내린다. 환자가 생기면서 몰랐던 균열이 드러났다.




한 달 만에 다시 본가로 내려간다.

외면하고 있던 문제를 직면하러 간다. 생각만 해도 심장이 조여 오고 배가 아프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는 것처럼 두렵다.


나만 바라보고 있을 가족에게 가야 하는데 자꾸 눈물이 난다. 살아만 있어도 바랄 게 없는 가족이다. 서로 의지해야 하는 가족에게 가야 하는데 숨이 안 쉬어진다.





사진출처: Unsplash의 Karthik Thogulu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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