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라 가난했다기보다 집안이 참 가난한 사람을 만났다.
대학생이 되면 으레 갖게 되는 휴대전화가 없어 삐삐에 음성을 남겨야 했다.
맛있는 밥 대신 10장, 20장씩 원고지에 편지를 써주던 사람이다.
뭘 대단히 함께한 기억은 없지만 그가 아직 생각나는 건 영화 박하사탕 CD 때문이다.
화이트데이가 되면 큰 사탕 바구니와 인형을 주던 시절이다. 사탕보다 초콜릿이 더 좋은데 왜 화이트데이는 사탕을 주고받는지 괜스레 억울했다. 돌이켜보면 유통기한이 임박한 떨이용 사탕과 초콜릿일 뿐이다. 바구니를 한껏 부풀리느라 부직포와 망사 포장지가 사탕보다 많았다. 쓰레기 한 바구니가 5만 원, 10만 원이니 엄두가 나지 않는 가격이다.
가난한 남자친구가 박하사탕 CD를 내민다.
"다음에 진짜 사탕 사줄게."
"나 사탕 안 좋아해."
20년도 훨씬 지났지만, 아직 가지고 있다. 음악은 CD 플레이어가 없어 유튜브로 종종 듣는다. 영화도 때가 되면 다시 본다. 좋아하는 배우의 초창기 영화인데 내 인생의 초반을 돌아보는 기분이다.
배우의 필모그래피는 몇 페이지가 넘어가도록 세월이 흘렀는데 나의 '박하사탕'은 멈춰 있다.
- 잘 지내지? -
사진출처: 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