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에 갇히길 싫어하는 새 같은 친구가 있었다. “새 같은” 어감이 조금 이상하지만 무튼. 자기 자신을 자꾸 가두려 하지만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존재 가치를 잘 모르는 그녀 H는 늘 외로워했다. 의존적이고 사람을 이용해 내 외로움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은 그런 그녀가 이기적이고 못 된 년이었겠지만, 나에게 H는 너무 가여웠다. 어느 날 나는 캔맥과 소주 몇 병을 사들고 그녀의 집으로 갔다.
처음 가 본 그녀의 집은 그녀만큼 아담했다. 덩치가 큰 내게 그녀의 집은 걸리버 여행기 같았었다. 몇 병의 술과 요기거리로 우리는 인생을 논하고, 좋아하는 노래를 공유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지나간 사랑도 얘기하고, 취미도 얘기하고, 그렇게 하나하나 이야기를 풀어가며 한 잔 한 잔 술잔을 기울였다.
서로 가장 힘들 때 세상에 아무도 필요 없다 느낄 때 만난 H다. 그녀도 내가 그랬다고 한다. 나도 힘든데, 쟨 내가 좀 위로해줘야겠다 싶은 사람이었단다. 우리는 취기가 올랐고, 취기가 깨고 싶지 않아 양손에 캔맥주 한 캔 씩 들고선 그녀의 오피스텔 복도 끝 테라스로 나갔다. 테라스에 벤치에 앉아 인생 다 산거처럼 한 얼굴로 ‘인생 뭐냐?’ 하며, 담배 하나씩을 물었다. 실없는 웃음이 나왔고, 우리는 조금 더 친해진 기분이었다.
벤치에 앉아 맥주를 나눠마시면서 우리는 낭만에 대해 이야기했다. 너는 낭만이 있어. ‘이 시대의 마지막 낭만걸’이라는 이상한 수식어를 붙였다. 한자와 영어가 섞인 이상하고 나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단어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낭만실조의 세상에 너는 마지막 낭만걸이야. 확신에 찬 H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낭만이 무슨 물건이라도 되는 양, 손에 잡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낭만이 뭔데?
그냥 있잖아, 지금 같은 거.
퇴근길 집에 바로 갈 수 있지만 좀 더 걸어 야경을 좀 더 즐기는 것. 아무 대책 없이 발걸음 닿는 대로 간 곳에 앉아 그 풍경, 시간에 빠지는 것. 서로가 생각하는 낭만이 나 한 번, H 한 번 겨루듯 오갔다. 어느덧 리스트가 되어버린 그것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면 H의 말대로 나는 낭만걸이 맞다.
당신이 좇는 낭만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사실 똑 부러지게 설명할 자신은 없다. 일상에 작은 빛이 들어오는 순간들이 아닐까. 방금까지는 너무나도 미웠던 세상을 한 아름 안아버리고 싶은 만큼 가치 있는 것들을 발견했을 때가 아닐까. 고된 하루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발견한 눈부신 노을처럼.
내 낭만은 그렇게 거창하지는 않다. 그냥 ‘아 이런 세상이라면 좀 더 살아보고 싶다’, ‘지금 너무 행복해서 죽어도 좋을 것 같다’의 순간의 합계 정도일까. 세상의 구석구석을 좀 더 다정히 보고 싶은 마음과 일상을 소화해 내야 하는 현실이 부딪힐 때면 그 갈등을 겪어내야 하는 나를 위해 적절한 낭만을 적용한다.
이를테면 무작정 차를 몰고 좋아하는 드라마 촬영지에 가서 앉아있거나, 시 한 권을 들고 한강에 나가 팔이 따가울 정도의 햇빛을 받으며 몇 km든 걷기도 하고, 서울숲에 가서 네 잎클로버를 찾을 때도 있다.
물결 랑(浪)에 흩어질 만(浪). 낭만의 낭과 낭비의 낭은 같은 자를 쓴다. 낭비를 해서 좋은 것은 없다지만 낭만만큼은 가능하다면 계속 낭비하고 싶다. 빚이 없이 사는 것이 꿈이지만, 낭만이나 열정 같은 것들은 빚을 내서라도 쓰고 싶다.
부질없고 덧없는 감정과 순간들을 무용하다 깎아내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예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어차피 지나가는 시간인데 그렇게 박하게 굴 건 없잖아.’ 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과는 여름밤 새벽을 걷고 싶다. 끝없이 걷게 되는 요상한 여름의 밤을. 낭만으로 벽을 새운 시간들을.
어쩌다 보니, 나의 낭만에 대해 논한 글이 되었지만, 무튼 나는 낭만 있는 사람으로써. 나의 낭만으로 내 사람을 초대한다. 이게 내가 내 사람들을 위로하는 방식이다. 다들 사는 게 똑같지만 내 인생도, 네 인생도 특별할 수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