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인이지만, 가끔 아이들에게 질투를 느낀다.
오후 네 시.
나는 늘 이 시간에 퇴근한다. 홈티비를 보니, 아이와 신랑은 거실에서 둘이 낮잠을 잔다. 나는 차 안에서 브런치를 열었다. 갑자기 우리 아파트 동에서 여자 아이들 셋이 시끌벅적하다.
나는 아이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엄격히 말하면 싫어하는 편에 가깝다. ‘아이’는 길을 걷다 스쳐 지나가고, 미디어 속에서만 만나는 것이 즐겁다는 다소 독특한 지론을 가지고 있는 나는 아이들의 그 활발한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한다. 아이들이 많은 곳은 학습된 방어기제로 피해버리고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에게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릴 때도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우리 엄마는 늘 말한다. 왜 그렇게 유난을 떠느냐, 너도 다 저런 적이 있었다, 조금만 곱게 마음을 써라. 뭐 그런 이야기들이다.
매번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아이들을 너그럽게 바라볼 수 없었는데, 돌이켜보면 내가 싫어했던 건 아이들이 아니라 그들과의 공존으로 인해 내가 겪어야 하는 약간의 불편함이었던 것 같다. 미술관에서 뛰어다니고, 기차와 버스에서 귀가 따가울 정도로 떠들고, 식당이 떠나갈 듯 울어 대는 ‘특정 아이들’로 인해 겪었던 불편함 말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아이들에게 나도 모르게 ‘성인의 기준’을 적용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아이에게 ‘아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부여하지 않고 그저, 성인이 되지 못한 미성숙한 개체로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랬던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있다. 신생아 시절엔 정말 죽을 것같이 힘들었다. 무섭고 공포스러웠다. 나는 ‘불편함’도 싫어했지만, 아이의 ‘울음소리’를 극도로 싫어했던 것 같다. 내 아이에게도 가끔 혹은 자주 성인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 같다.
‘엄마가 하지 말라고 몇 번 말해!’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엄마가 전에도 얘기했지!’
하지만 한 해, 한 해. 흘러감으로써 나에게도 인내라는 것이 생기는 것 같다. 예전에 내가 어릴 때, 서울에서는 시골이라 불리던 시흥에 산 적이 있다. 서울은 서울이지만, 맞벌이 부부들이 많았고, 아이들은 하교 후 방과 후 학습은 물론 학원으로 이리저리 다니다가 밤 10-11시나 돼서야 집으로 귀가하던 동네이다. 사회의 저소득 계층으로 내려갈수록 아이들은 각종 범죄에 너무나 쉽게 노출된다. 아이들 주변에는 각종 욕설과, 폭력, 범죄가 만연했다. 아이들은 한없이 투명해서 해맑게 이것들을 받아들인다. 절도와 재물 손괴, 영업 방해 같은 일들이 아이들의 티 없는 웃음 아래 ‘놀이’로 변모한다. 그 동네는 대부분 일과 가정. 그러니까 육아와 교육보다는 일에 더욱 매진하던 동네였다. 직접적인 보호자지만, 여러 면에서 사회적인 잣대에 미치지 못하는 미성숙한 부모들이 많았던 동네였다.
아마 나는 이때 기억에 아이들을 싫어하는 것 같다. 나는 아이였지만, 아이답지 않은 아이로 자랐어야 했고, 그 나이에 맞는 가르침보단 엄마가 내게 바라던 성인의 기준 잣대에 휘둘렸기에 말이다.
엄마를 마냥 두둔할 생각은 없다. 그녀는 어릴 때 철없이 아이를 낳고, 어떻게든 책임은 지고 있지만 그녀가 딸아이를 키우던 환경은 아이보다 우선순위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이해할 수 없어서 수십 년을 반항하고 방황했지만, 답은 그녀에게 없다. 나에게 있다. 이렇다 할 명확한 답은 없지만, 찾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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