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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무드 Aug 01. 2023

Ep.5 제발 좀 휴식이 필요해.

이렇게 처절하게 살아갈 필요는 없잖아. 지겨워! 지겹다고!




J초등학교 입학 1학년 > H초등학교 2학년 > S초등학교 3학년 > Y초등학교 3학년 > K초등학교 4,5학년 > J초등학교 6학년 > Y중학교 1학년 > K중학교 2학년 > J중학교 3학년 > Y고등학교 1~3학년



불안한 유년 시절은 지나갔다. 유년 시절은 지나갔지만 악몽 같은 학창 시절이 시작됐다. 지긋지긋했다. 문제는 계속 쌓여만 갔고 불화는 계속되었다. 그 당시 오은영 박사가 유명세를 치렀었다면, 내 자아에 큰 문제는 없었을까 생각해 본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랑 떨어져 살았던 내가 엄마와 새 가족들과 산다는 건 쉬울 리 없었다. 엄마는 내게 부당함을 강요하지 않고 키웠다고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감내해야 했다. 가족이라는 구성원으로써 낯설고 차별받는 새아빠의 고향 할머니네도 가야 했고, 안 간다고 나는 외할머니네 있겠다고 하면 늘 눈치를 받았다. 태어나기를 외동으로 태어난 내게 넌 늘 이기적이라며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고, 네가 그러고도 나이 한 살 더 먹은 누나 언니냐는 부당한 말을 듣기도 했으며, 양보도 안 하는 애. 이기심이 배 밖으로까지 튀어나온 애라는 소리를 줄곧 듣곤 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 후 엄마에게 몽둥이로 숨이 안 쉬어질 때까지 맞았다. 악을 써도 소용없었다. 씨발 소리가 목 끝까지 나왔다. 어떤 날은 책상 서랍에서 떨어진 나무 막대기 끝에 타카 핀이 박혀있었는데, 그쪽으로 머리를 잘못 맞았다가 머리에서 피가 난 적도 있었다. 상황은 늘 극에 치달아야 종료가 됐다. 이 모든 건 엄마가 내게 한 일이다.


도대체 내가 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 몰랐다.

하기 싫은 게 아니라 엄마가 내게 바라는 게 뭔지 전혀 몰랐다. 엄마 또한 나라는 첫 자식을 키워가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겠지만 난 그런 엄마 밑에서 불안했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사 사준 물건 혹은 애착의 물건들이 수두룩했다. 물건에 대한 집착도 심했으며, 동생들이 내 물건을 만지는 순간 나도 그들을 때렸다. 냄비로도 때리고, 주먹으로도 때리고, 학용품으로도 때렸다. 미친 듯이 때렸다. 내가 이러는 건 너 때문이야라는 마음으로 가득했고, 집에만 있으면 너무 괴로웠다. 강박 증상도 있었던 것 같다.


늘 내 물건의 위치, cm, mm까지 체크하고 표시하고 다녔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져 있거나 건드렸다는 표시가 눈에 띄면 두 살 어린 여자 동생을 쥐잡듯이 잡았다. 엎드려 뻗혀를 시키고 30cm 자로 때린 적도 있다. 때리다가 눈에 멍이 드는 순간을 보자 놀래서 계란을 던지며 비비라고 한 후 나는 새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내가 J 때렸어, 그래서 눈에 멍들었어. 혼내려면 날 혼내. 엄마랑 싸우지 말고. 근데 그전에 얘가 잘못해서 때렸으니까 그것도 알았으면 해."



이 일은 놀랍게도 내가 초등학교 3-4학년 때의 일이다. 마음이 너무 불안했다. 남매로 태어나 똘똘 뭉친 걔네와 산다는 건 내게 너무 곤욕이었다. 어렸을 때 표현을 빌려보자면 나는 쥐새끼 같은 애들과 살았다. 엄마 아빠가 없으면 늘 사고 치고 집을 어지르고, 손버릇도 안 좋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으며, 내가 혼날 땐 가소롭게 쳐다보거나 쌤통이다 하면서 지나가거나 혹은 큰 목소리로 깔깔대며 웃었다.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악에 받혔다. 진짜 매일 억울했다. 물론 걔네도 그랬겠지만, 어린아이 셋이 이 상황을 이해하려 할 때는 부모들의 자세가 중요했었는데, 다들 처음이라 몰랐던 것이었다.


새아빠는 엄마에게 사별한 전 아내의 빈자리를 채워줬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청춘을 빼앗겼다고 느낀 엄마에게는 사람으로서 가장으로서의 도리를 다 하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엄마 아빠도 정말 매일 싸웠다. 그것도 우리 앞에서.


엄마는 엄마 친딸인 내가 두 남매를 매일 때리고 학교도 잘 안 나가고, 매일 컴퓨터만 했던 나를 엄마가 감당하기 매우 힘들었을거다. 어떤 날은 게임 아이템 결제를 전화기로 계속  했던 적이 있다. 전화 비용 50만 원... 그날도 미친 듯이 맞았다. 내가 분명 잘못한 건 맞았다. 하지만 나는 그날 미친 듯이 맞고, 미친 듯이 울다가... 엄마가 나를 포기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너 감당 못해. 내가 내 청춘 다 버려가며 그렇게 살았어. 나 너한테는 그렇게 못해. 그러니까 니 친부한테 가던지, 할머니 네로 내려가."


내가 백 번 천 번 잘못했다. 하지만, 새아빠 앞에서 그 두 남매 앞에서 두들겨 맞고 나한테 사라지라고 하는 엄마는 정말이지 너무 야속했다.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힘든 건 다 내 탓이라고 생각했고, 나만 없으면 되는 건가 생각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으로 다시 내려갔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나는 아픈 손가락이다. 할아버지가 내게 말한다. 호적 파서 할아버지 밑으로 넣어줄까. 한번 가서 물어나 보자!, 호적은 그렇게 바꿀 수 없다고 들으셨는지, 할아버지가 주희 아빠라고 너의 가족은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늘 말씀해 주셨다. 외할아버지가 아니라 친할아버지라고 진짜 가족, 진짜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뿐이라고 말해주셨다 정말 늘...


태어나서 엄마가 날 포기하려 했다가, 친부에게 버려졌다가 악에 받혀 살다가. 또 엄마에게 포기 당한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자랐을까... 정말 따뜻하게 건강하게 그나마 살을 비비고 온기를 나누며 잘 자랐다. 하지만 그렇게 자랐어도 눈치와 동정의 시선, 가엾어하는 사람들의 눈빛을 잘 안다. 그걸 못 느끼게 하기 위해 할아버지, 할머니가 부단히 노력해 주셨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랑 평생 살고 싶었다. 언제 또 엄마랑 살아야 할까 정해지지 않은 결말을 가지고 그냥 하루하루 재밌게 살고 있었다. 방학이었나 내 친동생도 볼 겸 엄마도 볼 겸 같이 살았던 그 집에 갔다. 기차 타고 버스 타고 도착했는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너무 쌔했다. 조용히 들어가 분위기를 살폈다. 작은방에서는 1살 어린 남자 동생이 태연하게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고, 옆에는 여자 동생이 앉아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제일 어린 5살의 친동생은 겁에 질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안방 문을 열어보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바로 알았다. 분노의 눈으로 새아빠를 죽일 듯 쳐다보며 말했다.



나 - “뭐야? 왜 이래?”

그때 새아빠의 표정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엄마 - “주희 왔어? 별일 아니야. 문 닫아 방에 가있어. 좀 다쳤어 방에 가있어 얼른”

엄마의 목소리 톤은 평소 같지 않았다.



정리되지 않은 난장판이 된 이불이 반쯤 걷어져 있었고 TV 선반 앞에는 수건들이 흐트러져 쌓여 있었다.  엄마의 손목엔 피가 나고 있었다. 피에 젖은 수건을 칭칭 감고 내가 문을 여니 황급히 숨기고 일어나 아빠랑 나갔다 오겠다며 병원으로 가려고 신발장으로 나가고 있었다. 내가 집에 들어오고 다들 내게 숨기는 것 같았다. 5살짜리 꼬맹이를 붙들고 물어볼 수는 없기에 남동생 여동생한테 물어봤다.


엄마 아빠가 싸우다가 일어난 일인데 무서워서 여자 동생은 오빠 방에 있었다고 말한다. 왜 아무도 안 말렸냐니까 대답이 없다. 씨발. 이러고도 이 족속들이 사람 새끼들이 맞나 싶은 생각에 혼자 방에서 무섭고 두렵고, 걱정되고 화가 치밀어 오는 감정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데 엄마가 돌아왔다. 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긴 옷으로 숨기고 들어왔고, 새아빠는 안방으로 들어가 방을 정리했다.


엄마는 그 팔로 저녁을 준비한다. 방에선 애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고, 새아빠는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엄마는 수저를 식탁에 놓는다. 나는 수저를 뺏어 들었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타이밍에 엄마에게 물어볼지 왜 손목을 그었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없을 때 엄마가 사라져버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 거 같은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숟가락을 놓았다.


“다들 너무 한거 아니야? 왜 수저는 엄마 혼자만 놔? 왜 아무도 밥상 차리는 거 안 도와?”


“.......”


엄마는 괜찮다는 눈빛인지, 걱정하지 말라는 사인인지 뭔지 모를 눈 맞춤만 잠시 하고는 말이 없다.


‘나 사고 친다고 할머니네 보낸 건 좋은데 엄마는 왜 이러고 살고 있던 거야. 왜 손목까지 그런 일을 왜 한 건데 도대체 엄마를 힘들게 하는 게 뭔데 이럴 거면 안 살면 되잖아. 나 할머니한테서 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크고 엄마 혼자 살면 되잖아. 씨발 이게 뭐야 진짜......’  속으로는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와야겠다. 사고 안치고 엄마 곁에 붙어있어야겠다.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






* 미친듯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냥 빨리 서른살이 되기만 기다렸다. 뭔가 그때 나이에 30살은 이 세상을 다 알고 의연해 질 나이인 것 같았다. 하지만 서른의 중턱에서 어린나를 돌아봤을때 나는 아직도 의연해지지 못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어린날의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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