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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무드 Aug 01. 2023

Ep.6 신이 어디에나 함께하지 못하기에,

어머니를 만드셨다.





모든 시선은 나의 기준이겠지만, 내가 본 그들은 상종하기 어렵고, 이기적이고, 편협하고, 배타적이며, 이기적이기까지 한다는 것이 나와 엄마를 주기적으로 터트리고 파멸시켰다. 악으로 가득 찼고, 분노로 꽉 찬 시간들이 지나갔다. 엄마는 나보고 곰처럼 하지 말고 여우처럼 살으라고 했다. 세상에서 손해를 본단 다나.. 왜 그래야 하느냐니까 그럼 니 알아서 살으란다. 90년 대생의 나와 60년대 생 엄마의 시대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남존여비 사상이 분명 있는듯했다. 조선시대 마인드까지는 아니지만, 여자가 해야 할 일, 남자가 해야 할 일을 구분 지었다. 아빠가 퇴근하면 밥을 해야 되거나, 혹은 된장찌개를 끓이는 일, 아빠가 출출하면 라면을 끓이는 일 말이다. 자식으로서 할 수도 있는 일 말고, 딸이라서 했어야 하는 부당한 일들이 많았다. 이 시대 대부분의 딸들이 겪는 그런 것들 말이다.


엄마에게 미친 듯이 맞고, 새아빠와 그 자녀들 앞에서 엄마한테 맞고 내쫓긴 신세가 된 나는 분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마치 나를 이렇게 보는 것 같았다.


‘친모가 친딸을 저렇게 때리네. 불쌍해라 저렇게 맨날 악을 쓰니까 맞고 자라지. 쌤통이다.’ 하는 눈빛이었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내가 내 배 아파서 난 새끼니까. 때리든 말든 신경 쓰지 마!’하는 모습이었다. 정말 왜 그렇게 맞았을까. 한참 맞다 보면, 한참 욕을 듣다 보면 정신이 몽롱해진다. 나 왜 맞고 있지.. 나 뭐 땜에 혼나기 시작했지.. 사실 아직까지도 내가 그 정도로 맞으면서 혼나야만 했는지 모르겠다.


예상컨대, 자존심이 엄청 센 엄마는 새아빠 앞에서 잘 자라지 못하고 방황하는 내가 자존심 상했을 거고, 새아빠 자식들한테 저능아라고 서슴없이 말하던 엄마에게 나는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 컸으면 좋겠는 마음이 있었을까.. 싶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보고 느끼고, 방치되고 방관되기도 하면서 나의 애착은 정상일 리 없었다. 그렇게 크다 보니 교우관계는 물론 성적도 학교생활도 자아도.. 모든 게 정말 모든 게 싹 다 흐트러졌다. 난 단언컨대, 엄마의 보호를 끝까지 받았을지는 몰라도 혼자 잘 컸다. 오기로 살아냈다. 남몰래 두 주먹 불끈 쥐면서 다짐했다. ‘울지 마, 손주희. 살아남아 보란 듯이 살아내서 나중에 다 따져.’라는 다짐.








이게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다. 꾸준히 쓰던 일기는 내 마음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줬고, 슬프고 분한 마음들은 학창 시절 글쓰기 대회에 많은 도움(?) 영향을 주었는지, 글에 대한 상들이 많다. 살아온 시간들이.. 단지 살아오기만 한 날들이 자격증이 된다고 김미경 강사가 말했다. 나한테도 적용이 되는 말일까. 이해되지 않는 어린 날의 기억들. 내게 언어로든 행동으로든 상처를 주고 그 이상으로는 폭력을 행사한 사람들을 어떻게 용서해야만 할까.


그게 엄마라면.. 3N 년이 지나 아이를 살고 있는 엄마가 가끔 내게 요즘 들어 넌지시 말한다. 엄마로서 엄마 노릇을 못했던 시절이 아프다고. 아니지 정확히 아프다거나 미안하다거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거나 확실하게 무슨 말이라도 제대로 끄집어 내서 짚고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단 한 번도 얘기를 해본 적이 없다. 서두에서 말했듯 자존심이 엄청나게 강한 엄마는 아마 앞으로도 그 일을 그 얘기들을 꺼내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내가 나를 안아주는 글들을 쓴다.


어느 날 엄마나 새아빠, 혹은 친부까지도 내 글을 보게 된다면 내 책에서 그려진 그들은 파렴치한 인간들로 그려져 서술되어 있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내게 그들은 그 당시 악마들이었고, 애증의 존재들이었다. 엄마란 가장 편해야 할 존재이고, 따뜻하고 편안해야 할 존재라고 들 하더라.. 근데 나에게 엄마는 흠.. 글쎄. 가깝지만 가까이 지내지 못했던 존재. 남들은 엄마와 다 하는 걸 나는 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가깝지만 매우 먼 사람. 애착형성이 잘 되어있지 않아서 불안정한 애착의 모녀지간이었다.


지금의 나이에서 엄마를 돌아보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한 아이를 알려면 그 아이의 3대 위까지 봐야 된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 엄마의 엄마, 할머니의 엄마까지 말이다.


할머니나 엄마의 살아온 이야기들을 들으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 면도 있다. 얘기를 듣다 보면 아이는 정말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정말 좋은 양분으로 정말 바르게 자라야 한다. 아이를 키워가면서 나 또한 매일 별로인 나를 발견하듯이 어떻게든 아이는 좋은 것만 보고 꽃보다도 더 소중히 자라야 한다. 갖은 풍파를 겪은 한 아이는 성인이 되어 자가 치료를 하는 중이지만, 이 치료가 멈추지 않기를. 헛된 노력이 아니기를 바라본다.




* 신이 어디에나 함께하지 못하기에, 어머니를 만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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