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어머니는 교육을 위해 세 번 집을 옮김
맹자의 어머니는 교육을 위해 세 번 집을 옮겼지만, 우리 엄마는 터전을 잡기 위해 11번 이사를 했다. 지긋지긋했다. 한 달도 안 살았던 집도 있고, 1년 살았던 집도 있다. 일이 있어서 초본을 뗀 적이 있는데 세상에, 원래 초본이 이렇게 길었었던가? 무려 네 쪽에 걸쳐 살아왔던 주소, 집의 역사가 상세히 쓰여 있었다. 엄마 초본도 상당했지만, 나는 30대인데도, 엄마의 기록에 필적할만한 양이었다.
미신을 그다지 많이 믿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대부분 집이라는 곳은 예로부터 배산임수 지역들이 있듯이 집 터도 중요하다고 한다. 어떤 집에선 유독 아빠 사업이 되지 않거나, 어떤 집에선 아빠 사업이 흥할 때가 있었다. 어렸을 때는 이사를 다니는 게 정말 싫었는데, 그게 또 경험이 되었는지. 커서는 이사에 대한 실패가 거의 드물었다. 옥상 바로 밑 층수는 가면 안 되는 이유도, 단열이 잘 안 되는 집도, 구축이어도 주인이 상주하는 집인지 아닌지, 혹은 남향집이어도 시간대별로 해가 몇 시간 정도 비치는지, 집안에 결로는 없는지, 본 주인이 계속 살던 집인지 혹은 이사가 잦았던 집인지. 화장실 세면대가 없다면 요구해서 설치가 가능한지 까지. 내가 직접 이사를 하지 않았어도 이런 내공이 쌓이고 있었나 보다.
이사는 참 많은 의미와 추억을 남긴다.
거나하게 술에 취해 들어와 몸을 던져 넣던 침대에서 이불이 빠지고, 옷장도 텅텅 비어버리고, 책장에도 아무것도 없고, 내가 직접 깔고 살았던 데코타일 장판들을 뒤로하고 떠났던 나의 첫 자취방.
2년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다른 세입자를 맞이할 준비를 한 집을 바라보며,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밖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집에는 돌아와야 했고, 현관문을 닫는 순간 혼자가 되며 속으로 삭이던 감정을 분출했다. 내 마음대로 세상이 움직여주지 않는 법이라지만, 사람에 당하고 치이는 경험은 면역이 되지 않는다. 집 곳곳에 2년 동안의 스트레스가 아로새겨져 있다. ‘우리가 오래 살아온 공간에는 상처가 있다’는 어느 에세이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살아갈수록 생채기로 얼룩지는 팍팍한 삶을 버티게 해 준 좋은 기억도 물론 있다. 내 자췻집을 아지트처럼 들락날락하며 나와 보내는 시간을 좋아해 준 친구들. 남자친구와 처음 헤어져 이별의 슬픔을 느꼈던 집. 홀로 우울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던 내 공간. 짐은 모두 챙겼지만, 좋았던 일, 짜증 났던 일, 행복했던 일, 슬펐던 일은 이 집에, 이 동네에 놓고 간다. 미래에 여기를 다시 들른다면 추억으로 바뀌어 버린 기억을 반추하겠지. 지척에 있어 조금만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은 과거가 아스라이 멀어졌음을 느끼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만난 우리의 첫 둥지.
이사할 곳을 정할 때부터, 수리까지.
그 누구의 도움 없이 나 혼자 다 선택한 우리 집. 나에게 집은 쉼 이상의 가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며 내일을 살아갈 이유를 확인하는 따뜻한 공간, 아무런 부담 없이 자유롭게 쉬며 나를 발견하는 공간, 집에서 받는 에너지는 너무 크기에. 나에게 집은 이런 존재이다.
마음의 부담이 가장 덜한 것, 하루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 거창하지 않은 것들이 삶을 계속 이어가는 것. 가족과의 대화, 공간을 채우는 사랑 담긴 물건들, 그런 작은 것들이 집을 채우고 나를 채운다. 아이와 함께 작게 시작한 이 집에서 많은 추억들을 만들어야지.
얼마나 살지는 모르겠지만, 매년 같은 장소에서 우리 세 식구 사진을 찍어 남기고 아이와 우리가 같이 지낼 시간이 기대된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의 보금자리. 쉼 이상의 행복한 곳
#글로성장연구소 #별별챌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