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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무드 Oct 26. 2023

나는 도망쳤다.


‘나는 도망쳤다.’ 나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아마 이 문장일 것이다.


유년 시절, 집은 조금 어수선했다. 친부와는 일찍 헤어졌고 엄마는 많이 힘들어했다. 어린아이가 이해하기 힘든 그런 이유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불행하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생각을 했던 적이 종종 있었다. 친구와 트러블이 있을 때면 나는 부모를 탓했다. 남 탓이 습관이었던 나는 나와 비슷한 상황의 친구들과의 관계를 갈구했지만, 한편으로는 나와 상반된 가정의 아이들을 동경했던 것 같다.


이후 어찌 보면 가장 단순한 형태의 삶으로, 현실에 만족하며 작은 행복을 탐하던 그저 그런 생활을 계속 보내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왜 그들과 다를까’ 하며 그때부터 나는 나를 갉아먹거나 도망쳤다. 나를 프레임 안에 가두고, 프레임이라는 모습의 끝없는 채찍질과 두려움은 현실을 회피하고 이상과 동경에만 집착하며 나의 자아를 불행하게 방치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그 프레임에 내가 담기지 않기 위해 그저 도망가는 삶을 살고 있다. 항상 쫓기는 느낌, 그 감각을 지울 수 없음에, 가득 찬 자기혐오와 불만족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면서 아마 대부분의 '발버둥 치지 않는 인간'에게 느끼는 맹목적인 불쾌함도 이쯤 시작한 것 같다.


보통 문제를 해결하기보단 벗어나는 것이 훨씬 간단하다. 그런 나에게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단 나와 같지 않은 사람의 삶을 따라 하는 것이 훨씬 편한 길이였다. 미디어의 그런 사람들은 보통 미술을 좋아했던 것 같다. 이게 내가 예술에 대한 첫 번째 태도였다.


은사님이 계신다. 한참 방황할 때, 나를 예술에 매진할 수 있게 만들어주신 분이다. 처음 예술을 접한 건 인사동에 한 갤러리였다. 학생에게 갤러리와 미술관은 관대했다. 지하철 차비만 있다면 한 시간 안에 갈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저 뭐라도 된 것 같은 느낌에 매료되었다. 자연히 많은 시간을 미술관에서 보내다 보니, 남들에 비해 조금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예술이 보여주는 스토리, 정신병이 있는 환자도 칭송하는 그 세계, 그 집합이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니 나에겐 조금 더 특별한 느낌이었다. 예술을 사랑하고, 그 파도 속에 유영하며, 그것을 존중하는 사람. 그 여러 레이어가 겹친 어떤 이미지가 내가 생각하던 이상향이었을 것이다.


거창하게 적어보았지만 사실 나는 정말 예술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 속에 잠시 섞여있다는 착각. 그 시간이 좋은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예술에 대한 무지함과 그것을 뿌리로 핀 무례함. 그들에게 미술은 교양 있는 자신을 꾸미기 위한 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정도였다. 하지만 누구도 그 태도에 발 걸을 수 없는 상황까지.


모든 것이 역겨웠다. 내가 바라온 이상향엔 발버둥 친 흔적, 예술을 사랑하는 모습 따윈 찾아볼 수도 없었다. 나름 목표하던 삶의 모습을 부정하기에 충분한 이미지였다. 이 시기 이후로 타인에 대한 혐오감이라던가 역겨움은 더욱 커져갔다. 물론 이 모든 것의 파생은 '현실에서 벗어난 척'하기 위한 나의 환상이기에 그 혐오감과 역겨움의 가장 큰 대상은 나였다.


여러모로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예술은 솔직하다. 남아있는 작은 감정을 의탁할 곳은 오직 예술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이다. 글을 쓰며 예술에 대해 한 번 더 곱씹을 수 있다. 예술을. 혹은 나를 다시금 해석하고 느낄 수 있다. 어쩌면 몇 안 되는 감정을 느낄 시간. 이것은 글은 쓰면 쓸수록 더욱 소중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감정이 타인에게 공유되는 것은 익숙지 않기에, 여러모로 항상 아쉬운 글이 나오는 것 같지만 다음의 개인적인 글을 쓰는 나는 지금과는 무엇인가 달라져 있길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공백포함 1,873자) #글로성장연구소 #별별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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