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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무드 Feb 13. 2024

Ep.10 할머니, 나는 사람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네 엄마가 그러잖니.

엄마와 딸.

엄마와 쇼핑하는 딸.

엄마와 수다를 떠는 딸.


이런 문장과 모녀지간의 다정한 모습은 내게는 와닿지 않는 남 얘기 같은 것이었다.




이번 설 연휴를 맞이하여 거의 1년 만에 방문한 친정집이었다.

사람으로 힘든 나는 가족들과의 관계마저 힘들다. 이 모든 힘듦은 내 부모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철이란 게 든 건지 아니면 엄마와 떨어져서 살고 있어서 그런 모습이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엄마를 보면 안쓰럽고 가엽다.


엄마와 새아빠는 꽤 오랜 시간 별거 중이다. 둘의 문제는 대화가 안 되서라고 그들은 얘기한다. 자식으로서 그런 부모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좋지 않다. 결혼을 해도 부모사이가 안 좋으니 신랑을 처갓집에 데려가는 게 부끄러웠다. 들키면 안 될 치부 같은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한 해. 한 해 지나갈수록 오히려 그럴수록 자식들이 자주 찾아뵙고 사이를 붙여놔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엔 아빠한테 가서 모났지만 여린 엄마를 감싸줄 수는 없겠냐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올해도 역시 하지 못했다. 난 지금 내가 힘들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하고 해결을 해주고 싶은 에너지가 없다. 아직 마음 한편엔 부모를 미워하는 감정이 남아 있어서 해소되지 않은 상태라 큰 숙제이지만 이번 설 연휴땐 깨달음을 얻었다. 이런 걸 성찰이라고 부르는 건가.




한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3대를 알아야 한다.


이런 말을 어느 날 엄마가 내게 했었다. 뇌리에 스치는 명언 같았다. 하지만, 이 말을 엄마 본인이 본인에게 적용했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신랑과 함께 외할머니 집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할 때였다. 사람으로 힘든 내가 할머니에게 넋두리를 해봤다.


"할머니!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주변에 사람이 많은데, 나는 왜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자랐으면서 그런 걸 못 배웠을까? 왜 나는 사람 사귀는 방법 같은 거 왜 안 알려줬어?"


- "왜 안 알려줬겠어? 생겨먹길 그렇게 생겨먹은 걸 알려준다고 되냐 그게~ 넌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기저귀 차고 다닐 때도 할머니가 이리저리 다 데리고 다니면서 알려주고 했는데, 안돼 그건 천성이여~ 네 엄마도 그러잖니. 이번에 ㅇㅇ이모랑도 틀어진 거 같더라. 사람끼리 사는 세상은 그렇게 내가 맞다 하면서 살면 안 되는 거야~"


할머니의 저 말은 맞는 말이지만, 다소 거칠고 폭력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말을 듣고 어렸을 때 할머니가 나를 혼냈을 때가 생각났다. 할머니는 내가 문제행동을 했을 때, 할머니의 판단하에 나를 윽박지르거나 할머니 마음대로 해석했다. 엄마도 내게 할머니와 같은 화법을 써서 나는 엄마를 미워했다. 미운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론 엄마도 참 가엽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성격이나 기질은 타고난 거지만, 저런 말을 다르게 따뜻하게 해 줬다면 엄마도 나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할머니의 어린 시절도 전쟁통으로 인해 아버지를 일찍 여의셨고, 막내였던 할머니를 데리고 재혼을 하셨다고 했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부유하지 못했을뿐더러. 할머니는 배다른 형제들과 지내며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하셨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엄마가 되어 또 한 번의 가난을 겪었고, 이성보단 생계유지에 더 힘써가며 초등학생이었던 엄마를 사회에 나가게 만들었다고 한다. 무능력한 아버지, 생계유지가 급급했던 엄마 밑에서 나의 엄마도 상처를 받고 자랐던 것이다. 지금 같은 시대였다면 엄마도 좀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던 날이었다.




언젠가 학교에 나 빼고 모두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 내가 혼자인 게 덜 두드러질 테니까. 만약 그때의 내가 단순히 외로웠다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인이 되고 난 후의 인간관계는 훨씬 더 다양하고 복잡했다. 그와 함께 내가 모두를 사랑할 수 없듯이 나도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자 오히려 전보다 사람을 대하는 게 조금은 덜 두려워졌다.


모두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친구가 많지 않아도 내가 행복하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친구가 없다는 건 외롭지만,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혼밥(혼자 밥 먹는 것)을 하는 게 부끄러워서 화장실에 들어가 소리도 안 나게 단무지 없는 김밥을 먹는다는 말을 유머처럼 소비하고 있다.


그 말을 들으면 동정심 대신 그 사람을 화장실까지 내몬 세상에 진절머리가 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그게 모든 이의 의무는 아니다. 이 말을 교실에서 외롭게 울던 나에게 전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친구랑 놀지 않느냐고 묻는 대신에, 불쌍하게 바라보는 대신에 친구가 없다고 해서 그게 네 가치를 결정짓는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지금의 나도 지난 유년시절을 조금은 나쁘지 않게 추억할 수 있었을 텐데.


엄마를 이해하고 할머니를 이해해 보니, 내가 나온다. 그들을 탓할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이해하고 나는 내가 사랑해 주면 되는 것이었다. 2024년 서른 중반의 2월 어느 날. 참 많은 것을 깨닫고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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