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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무드 Feb 21. 2024

신의 섭리, 결국 해야 하는 건 인간이다.

뜻 밖에 상황에서 들린 메시지.

1.

지난 글에도 썼듯이 며칠 간 나는 힘들었다.


어제와 오늘 회사를 갈 수 없었다. 아니 가지 않았다. 모든 것을 정지했다. 어제는 산 송장처럼 이불속에서 잠만 내내 자다가 배고픔만 채우고 또 잠을 잤다. 가족들이 다 잠든 시간 갑자기 일어나 내일 당장 수영을 가야겠다며 수영가방을 싸고 회사 가서 먹을 다이어트 식단 도시락을 쌌다. 그리고 새벽 1시쯤 잠에 청했다.

그리고 아침 7시부터 맞추어놓은 알람은 계속 '15분 뒤 울리기' 버튼을 눌러가며 오전 9시까지 식구들의 귀를 나의 알람소리로 괴롭혔다. 그렇게 나는 7시에 가기로 한 수영도 안 가고, 10시 출근이지만 9시까지 침대에 누워 연명하듯 눈을 떴다 감았다만 반복했다. 저녁 출근인 신랑이 침대 밑에서 자고 있었고, 신랑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나 오늘도 회사 가기 싫어, 안 갈래.'

'다 감당할 수 있겠어?'

'응.'


다 감당할 수 있냐는 물음에 몇 초정도 대답을 못했지만, 난 오늘 나를 일으켜야 했다.

힘든 일이 있거나 마주치기 싫은 일이 있을 땐 회피해 버리기 일쑤인 나를 잘 아는 신랑의 질문이 날카로웠다. 예전 같으면 그 질문마저 야속했겠지만, 오늘의 질문엔 감당이 가능할 정도로 나는 힘들었다.

무엇이 그리 나를 힘들게 하냐고 묻는지 나도 궁금했다. 우선, 리프레쉬가 필요했다. 몸을 일으켜 나는 회사에 가기로 마음먹었고, 신랑이 저녁에 출근하고 나면 나는 아이 하원과 동시에 근처 카페에 가려고 했다. 같이 몸을 일으켜 아이 하원을 준비하던 신랑은 다시 말한다.


'회사 가지 마, 대신 오늘까지만 가지 말고 내일은 가'

'아냐, 가볼게.'

'아냐, 오늘은 나랑 놀고 내일 꼭 가.'


신랑의 저 말 한마디가 나의 내면의 우울을 일으켰다. 겨드랑이 밑으로 따뜻한 두 손이 들어와 나의 몸을 일으키는 듯한 말이었다. 견딜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 말 한마디에 몇 초간 지하를 넘어 지구의 핵까지 떨어진 내 자아를 일으켜주는 말이었다. 우선, 오늘의 계획은 없었다. 그렇지만 무언갈 해야만 했다. 나를 위한 리프레쉬가 절박하게 필요한 오늘이었다. 화장실로 들어가 떡진 머리를 감기시작했고, 양치질을 했다. 머릿속으론 오늘 가야 할 곳을 나열했다.


비가 오니까, 해무가 잔뜩 끼어있는 바다에 갈까. 아니다 더 답답할 거야.

아냐, 그래도 바다를 보고 오면 조금 리프레쉬가 될 거야. 아닌가? 아니다! 차라리 서울을 가자! 사람 많고 활기차게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오면 다시 리프레쉬가 될 거야! 아니다... 그냥 조용한 카페로 갈까? 아! 꼭 가고 싶었던 렘브란트 전시회를 가자! 오늘 갈 곳이 정해졌다. 제일 좋아하는 옷과 제일 좋아하는 립스틱을 바르고 제일 좋아하는 향수와 제일 편한 신발을 신었다. 정말 오랜만에 꾸민 내 모습을 보더니 신랑도 같이 가자고 한다.


'운전은 내가 한다!'

그렇게 우리는 미술관으로 향했다.



우리가 오늘 본 전시를 잠깐 소개하자면 17세기의 사진가, 렘브란트의 전시회였다.

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의 동판화 120점을 소개하는 전시였고, 나는 자신만만한 렘브란트가 나의 어떤 면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무척이나 좋아하는 작가였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 마침 도슨트 설명이 진행 중이어서 우리는 렘브란트의 성경 속 이야기 작품들을 바로 들을 수 있었다. 아담과 하와의 그림 설명에 이어 렘브란트 판 레인, < 이집트로의 피신 > , 1653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도슨트 님의 말이 뇌리를 스쳐 가슴에 콱 박혔다. 그 메시지를 들은 신랑도 나를 쳐다보고는 '당신에게 적용되는 말이야'라는 듯한 신호를 보냈다.


'신의 섭리이지만, 결국 해야 하는 건 인간이에요. 렘브란트는 그걸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유레카! 신의 섭리, 결국 해야 하는 건 인간이라...

사람에게 데이고 쓸데없는 걱정들로 나를 갉아먹는 나의 요즘 상태에 적용되는 말이었다.




2.

유레카! 신의 섭리, 결국 해야 하는 건 인간이라...


왜 나는 그토록 나를 수십 년 동안 나를 갉아먹기만 했을까?


늘 부러웠다. 사랑스러움이 묻어나는 사람들. 얼굴이든, 말이든, 분위기든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 그런 사람을 지켜보다 떠오른 것이었다. 나에게는 도통 찾아볼 수 없이 결핍된 것.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 나와 다른 저 모습이 부럽다는 생각을 풀어내다 멈춰 섰다.


여리여리함보다는 장부의 이미지가 강한 나. 맞는 소리라 느끼면 직설적이라는 것. 나는 꽤 우울한 사람이고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를 보는 주변 사람들은 너는 진취적이고 용감하며, 너 할 일 잘하고 똑 부러지는데, 왜 그런 걱정을 하냐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정말 이상한 일에 소심해져 고민을 많이 하는 내가 우유부단하고 내성적인 것 같아 답답하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기는커녕 자신에 차 있는 줄 알 때도 있다. 친구가 많지 않은 편이라 하면 네가 무슨 친구가 없냐고 한다. 그런 식이다.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나는 왜 다른가. 왜 나의 결마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가. 알지만 해결하지 못하는 나의 숙제였다.


당장 떠오르는 이유는 아마 내가 나를 잘 모르거나, 내가 나를 잘 숨겨서 남이 날 잘 모르거나, 그리고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거나. 몇 가지 골칫거리만 빼면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인데, 그 골칫거리 몇 가지가 나의 요즘을 매우 힘들게 하고 있다. 심통 맞은 성격, 뭔가 하려고는 하지만 지속되지 못하는 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못한다는 점, 하고 싶은 말은 안 하고 뒤에서 심통을 부린다는 점, 호의를 베풀고 대가를 바란다는 점, 혼자 그 점에서 상처를 받는다는 점, 그리고는 그 사람들의 행동에 굉장히 예민하게 신경 쓴다는 점.


이런 점들이 쌓이고 쌓여 나를 계속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이 힘들었다. 인간관계는 범죄처럼 진실을 밝히거나 가해자와 피해자를 매번 나눌 수는 없다. 잘못이 있어도 처벌과 보상을 체계적으로 받아낼 수도 없다. 사람 사이는 법이 없다. 이런 법이 어딨 냐고 외칠 수는 있겠지만 어물쩡한 구석이 많다.


어차피 나는 당신을 끝끝내 잘 알 수 없을 것이고, 당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유 없이 좋아하고 사랑해 주는 사람도 있고 미워하고 싫어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반대로 내가 상대에게 그렇게 느낄 때도 있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사람이 두 명만 되어도 그런 일은 일어난다. 그렇다고 매번 성벽을 높게 쌓고, 무기만 잔뜩 쟁여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성벽이 높고 무기가 많을수록 역설적으로 그만큼 두렵고 약하다는 뜻이 될 수 있다.(최근까지 내가 그랬다.. 높고 높은 성벽을 쌓아놓고 혼자 벽 안에 갇혀 우울을 호소했던..)


주변에 나와 마음이 맞고 좋은 사람들이 있을 수만은 없다. 아니면 내가 정말 너무 완벽한 존재여서 약점이 없거나 상대보다 대체로 우위에 있으면 해결되는 걸까. 남부럽지 않은 높은 자리, 돈과 힘, 지성과 외모에, 성격까지 완벽하면 되는 걸까. 싸움에 유리할 수는 있지만 우리는 모두 조금씩은 어딘가 부족하고 모자라다. 아니, 우리가 모자란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늘 뭔가를 많이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것 역시 끝이 없는 싸움일 거다. 누구보다 잘나고 싶다는 것은 늘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면 위기를 겪는다. 우리가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해서 부정하고 지워버리고 싶은 건 아니지 않나. 너무 간단한 일인데 나는 위기를 해결하고도 지금 숨어있다가 뜻 밖에 곳에서 메시지를 얻었다.


전쟁을 하는 게 아니다. 몇 척의 배가 남든, 몇 척의 배를 부수든, 얼마나 너른 땅을 갖고 있거나 빼앗겼거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나를 또는 너를 지나가게 흘려보내자.. 그 사이 받은 상처로 다시 나에게 또 상처를 주지 말자. 나를 사랑하는 당신을 만나면 내 어깨를 두드려 주자. 혹시나 이 모든 게 꿈처럼 사라질까 봐 두려운 거라면 괜찮다고. 잘 모르고 있겠지만 너를 사랑하는 건 그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고. 퉁명스럽고 부드럽지는 않지만, 사랑 같은 건 할 줄 모르는 것 같은 너도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주자..


뜻 밖에 곳에서 메시지를 얻고 내가 나에게 쓰는 용기를 심어주는 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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