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엄마를 꼭 안아주고 싶어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매일이 감동이다.
결혼은 안 해도 되는데 아이는 낳아볼 만해! 라며 자신 있게 말하던 언니들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태어나고 눈을 떴을 때에도 감동이었고, 배고픔에 나의 젖을 물때도 감동이었다. 아이가 주는 감동은 소위 말하는 “나 감동받았어” 혹은 “우와 감동이야!”의 느낌과는 다르다. 뭐랄까 벅차오르는 감정과 정의하기 힘든 문장 그리고 눈물이 날 것 같은 느낌. 복받쳐 오르는 여러 감정들의 복합적인 선상이랄까
아이가 처음 엄마라고 부를 때도, 내가 만든 음식을 한 입 처음 먹던 날도. 아이에 통장을 만들던 날도 그 통장에 용돈을 넣어줄 때마다 성장하는 모습을 기록했던 날도. 아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감동이 아닌 순간이 없다. 하물며 아이가 변기에 응가를 한 날도 사진으로 찍고 케이크를 불며 축하를 하던 날에도 말이다.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를 보며 엄마는 말한다. 평생 할 효도를 이 나이 때 다 한단다. 눈에 많이 담거라라고..
그런 엄마에게 나는 “난 효도 더 할 건데?”라고 말했다. 엄마가 웃으며, 말한다. “기대해 봄.” 엄마랑 이런 말을 하며 웃고 통화하는 날도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다. 출산 후 호르몬에 지배받던 시절. 매일 울었다. 아이가 100일이 되기 전 잠을 못 자서 힘들고, 초보 엄마라서 너무 힘든 시기 때 엄마한테 전화해서 울먹이는 목소리를 목 아래로 숨기며 전화하던 날에도 엄마는 “우리 딸 힘들지?”가 아닌 “왜~? 아기가 안자?”라며 나를 위로했으니 말이다. 하하.
자식이란 부모의 사랑이라는 이름을 왜곡하여 맹목적인 사랑을 주는 건 아주 위험하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맹신이나 맹목으로 채우면 안 된다. 자녀는 부모의 올바른 사랑을 받고 건강하게 성장하여야 아름다운 인생을 피워낸다. 부모의 은혜로 피어나는 진정한 사랑은 구김 없이 맑게 피어나야 한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엄마가 되어 엄마의 나이가 되어보면서 느끼는 건데, 엄마는 엄마가 성장할 틈이 없이 나를 낳아 같이 자란 것 같다.
요즘 5살, 9살, 학창 시절에 갇힌 나를 꺼내주기 위한 글을 쓰고 있는데 글을 써 내려갈 때마다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그토록 원망만 하던 엄마였는데, 애증의 존재라고 나를 왜 이렇게 미워하는지 나를 왜 이리 방관하는지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는데, 엄마도 치유받지 못한 시절에 머물러 그냥 살아온 게 아닐까 싶다. 언젠가 내가 나를 안아주고 안온하게 나를 인정해 주는 날 엄마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엄마의 하루도 매 순간순간 감동 있게 살라고. 너무 늦지 않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글로성장연구소 #별별챌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