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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무드 Apr 27. 2024

예민하고 화가 많아서 별명도 개복치입니다.

삶이 흘러가는 무수한 시간 동안 우리는 참 많은 사람을 마주친다. 순간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겠다. 아침 출근길에 나를 빤히 쳐다보고 지나가는 사람, 몇 번 보지 않은 김밥집 사장, 나한테 무례한 말을 하던 사람, 본인의 답답함을 나한테 화풀이하던 사람, 내 어깨를 쌔게 치고 바쁘게 뛰어간 사람. 그 사람들은 내게 만족스러운 사람일 수도 있고, 만족스럽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다.


필자는 주로 짜증을 많이 낸다. 식당에서 밥 먹다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 때문에도 기분이 상해 짜증 내버리고 나와 한 번도 말하지 않은 사람이 웃으면서 나를 쳐다봐도 화가 난다. 이런 일상들을 공유하면 주변사람들은 내게 "무슨 개복치도 아니고 왜 이렇게 예민해? 왜 이렇게 화가 많아?" 나의 이런 푸념들은 '너 스스로 너를 사랑해 봐'라고 말이라도 맞춘 듯 얘기한다는 걸 이제 알았다. 아 내가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구나.


양치를 할 때도 엘리베이터에 탈 때도,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도 하루에 적게는 3-4번 많게는 10번 정도 거울을 마주하는데 그럴 때마다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다양한 표정을 지어보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얼른 외면하고 거울 앞을 떠나기 마련이었다.




사랑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말처럼 나를 사랑해보고 싶었다. 사랑한다고 말해줘야 하는 건가 아니면 나를 좀 가꾸고 꾸미고 하면 나를 사랑하는 건가. 정답을 모르고 유영했다. 지금보다 더 암흑의 시간 속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때에도 나를 계속 사랑해보려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장점들을 나열해보기도 했지만 그 장점은 곧 빼곡히 나열되는 단점들에게 밀려났다. 행복한 것만 보자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행복한 걸 보면 행복해질 거야.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말처럼 쉽게 바뀌는 거였다면 그건 연극이고 가면일 것이다. 실패했기 때문에 나는 늘 제자리걸음을 했다. 행복 확언을 매일 들으면 행복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방법도 내겐 효과가 없었다.


기간이 오래되진 않았지만, 최근 1년 사이 매일 했던 일과 말, 마음가짐이 있었다. 나 혼자 보고 나 혼자 쓰고 집중할 수 있는 감정일기를 쓰는 것. 감정일기에 자책은 금물이라는 말을 듣고 말을 고쳐 썼다. 예를 들어 예전에 일기는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 하.. 왜 그랬을까 다음부턴 하지 말아야지.'라고 적었다면 고쳐쓰기 시작한 일기의 문장은 이러했다. '오늘 이런 일이 있었는데, 많이 힘들고 수치스럽고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지만 눈 질끈 감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해 버리니 속은 시원했겠어.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 앙금이 남아 있겠지만 그래도 오늘 너는 이걸 해 냈네. 다음번엔 오늘 했던 거 기억하고 이와 같은 허들은 넘어보는 거야.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살아줘서 고맙다 나야.'라고 쓴 것이다. 이렇게 일기를 쓴 지 1년. 정말 놀랍게도 감정을 글로 적어내고 표면으로 드러나니까 정확이 내 감정이 어떤 마음인지 알게 되고 눈에 띄게 달라짐을 볼 수 있었다.


나 스스로에 대한 감정과 모습들을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직설적이고 명확하게 표현하다 보면 객관적인 시각이 생기기 시작한다. 모든 상황에서 공통점으로 느끼는 내 감정도 알아볼 수 있고, 더 내면 깊숙이 관찰할 수 있다.






답은 찾은 것 같지만


Love Your Self. 가 답인 줄 알았는데 How to love yourself? 가 나에게는 좀 더 와닿는 답이라는 건 찾았다. 매일 일어나서 몸을 쓰는 것. 매일 일어나서 스트레칭으로 긴장된 몸을 좀 풀어주는 것. 건강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비타민과 영양제를 챙겨 먹어주는 것. 그리고 점심시간 때까지 공복을 유지할 내 위에 간단한 음식을 입에 넣어주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그리고 거울을 볼 땐 보기 싫다고 외면하기보단 한번 웃어주고 이렇게 얘기해 보자. 좀 낯간지럽다면, 음 - 배우처럼 뛰어난 외모는 아니지만, 매력 있어. 좋아!라고 말이다.


화해는 내가 나와하는 겁니다. 부모는 죽을 때까지 나에게 사과하지 않을 수 있어요. 우리는 죽을 때까지 부모를 용서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 마음 그냥 그대로 두세요. 누구도 나 아닌 남을 어쩌지 못해요. 부모도 내가 아닌 이상 남입니다. 결국 내가 화해해야 하는 것은 나 속절없이 당했던 나와 화해하고 이 사람들이 나를 망치면 어떻게 하지 했던 나와도 화해해야 합니다. 자신을 형편없이 생각했던 나와 화해하고 자신을 비난했던 나와 화해하고 자신의 나쁜 면에 진저리를 쳤던 나와 화해해야 합니다. 이제는 힘도 있고 작지도 않은데 여전히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 작은 아이에게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나의 내면과 내가 손을 잡는 것이 ‘나와 화해’하는 시작입니다.’

- 오은영의 화해 中


오은영박사의 책 '화해'라는 책에서 나온 말처럼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준다면, 상처가 내 몸속에 침투하도록 두지 말자. 속절없이 당해주지 말자. 타인에 행동에 영향을 많이 받는 나라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화가 났을까?라고 생각해 보자.


하루가 이렇게 무사히 지나갔다면, 잠자기 전 밖으로 나가서 자연이 주는 메시지를 들어보자.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몸을 이완하고 내 눈에 보이는 자연을 관찰하자. 한두 달 피고 지는 벚꽃의 꽃봉오리 - 만개한 벚꽃 - 지고 난 후 떨어진 꽃잎에 집중해 보자. 그리고 잠깐 쌀쌀해진 날씨와 봄비 소리도 들어보고 느껴보자. 아이가 자연에 심취하여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이것들에 집중하다 보면 그 자체가 나를 사랑하는 일이었더라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올해 첫 수확한 명이나물을 1kg 사서 장아찌를 만들어 먹었던 나처럼. 출근길 초록초록한 나무를 보다가 4분 지각한 나처럼. 아이와 놀이터에서 놀다가 문득 새소리가 아름다워 하늘을 마주했더니 하늘과 나 사이에 걸쳐있는 나뭇잎처럼. 행복과 자존감은 여기서 찾아오더라.


만약 당신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우리 같이 고민해 보자. 그 고민을 당신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같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천천히 스스로에게 접근해 보자. 언젠간, 스스로에 만족하며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날이 빨리 올 수 있게, 우리 함께 고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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