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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y May 22. 2022

어느 시골 여행 이야기 <1>

8만원짜리 펜션의 낭만


 만인이 사랑하는 계절 5월, 어디로든 떠나기 좋은 날씨가 잔잔하게 이어지고 있다. 대기는 맑고, 바람도 적당해 집에만 있기엔 어딘지 억울한 요즘이다. 이럴 땐 서울만 아닌 어느 곳이라도 좋을 것 같아 지도를 켜고 바람 쐴 곳을 찾아본다. 이번 내 여행의 기분은 양양이나 속초처럼 한없이 밝기만 한 것은 싫고, 유적지와 볼거리가 많은 경주나 통영처럼 바쁘게 돌아다니는 곳도 영 내키지 않는다. 이번 감성은 뭐랄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일상에서 완벽하게 제외되고 싶은 염세적인 상태였달까.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에서 여행하려면 '그때의 기분은 나는 잘 모르겠고, 숙소부터 정하자'라는 규칙이 생긴 것 같다. 좀 괜찮다는 숙소나 SNS에서 인기를 얻는 (감성)숙소는 늦어도 3개월, 부지런히는 6개월도 먼저 예약을 해야 한다. 사실, 그 시기쯤에 여행을 가고 싶을지 아닐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숙소를 예약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막상 여행을 갈 시기가 왔을때 일상이 너무 즐거우면 어쩌지 하는 사서 하는 걱정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일치기 여행이 아닌 이상 몸을 누울 곳이 필요하고, 이왕이면 아기자기하게 갖춰진 숙소가 좋으니 다들 부지런히 움직인다.


 즉흥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숙소의 만족도를 살짝 내려놓으면 된다. 기대를 낮추면 실망도 적으니까. 여행을 떠나기 5일 전, 산골에 위치한 작은 펜션에 연박으로 예약을 걸었다.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숲, 새, 꽃.. 등 목가적인 이름을 가진 방은 아직 넉넉했고 도착한 여행지는 정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지역의 70%가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라 그런지 정말 산수화 속에 그려진 작은 사람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숙소로 올라가는 길은 어쩐지 익숙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이나 올라갔어야 했고, 급커브를 주의하라는 표지판이 쉼 없이 이어졌다.


 숙소가 위치한 동네는 전형적인 펜션촌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는데 '감나무집', '하얀집', '숲속 별장'같이 여기저기 비슷한 이름을 가진 펜션과 가든의 모습은 마치 1997년이나 2001년쯤에 가족들과 다녀왔던 것만 같았다. 어쩌면 시간여행을 하다가 잠시 어린 시절로 불시착한 것 같은 기분. 점잖으신 부부 내외의 간단한 안내를 받고 도착한 '숲'방엔 6평 남짓한 공간으로 접이식 테이블, TV, 이부자리 세트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벽지와 장판을 눈으로 스윽 살피며, 솔직히 난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너무 저렴한 곳만 찾았나?' 하고. 하지만 순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리 꼭 대학교 MT 온 것 같아!"


 짐을 풀고, 바베큐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2만원에 숯불을 피워 우리가 준비해간 소고기, 양고기, 가리비를 하나씩 구웠다. 금요일이었지만 펜션에 손님은 우리가 전부였다. 마치 산의 주인이 된 것처럼 앞에 펼쳐진 높은 산들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감상했다. 이따금 길 건너 펜션에서 족구하는 소리와 함성이 연달아 울렸는데 그게 꼭 나쁘지 않은 소음이 되어주었다. 시끄러운 사람들의 소리 속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순과 인생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눈물이 조금 났다. 오랫동안 묵혀온 우울감도 반짝반짝 강렬하게 살아 움직이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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