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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y May 15. 2022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니는 대결을 신청한다.


 "정말 효부네요", "정말 효녀야"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자주 듣는 단골 멘트 중 하나다. 엊그제는 직급이 높은 상사와 식사를 하다가 어버이날을 맞이해 고향을 오랫동안 다녀온 것에 대해 깜짝 놀랐다. '요즘 젊은 친구들도 부모님을 보러 가냐며' 놀라워했고, 이어 지난주에 시어머님과 모듬해물집을 다녀온 일화를 듣더니 한 번 더 깜짝 놀라 했다.

"요즘 며느리도 시댁이랑 친하게 지내요?"라는 질문에 파핳~ 나름 알콩달콩 잘 지내는 집들도 많답니다..^^ 정도로 대답하긴 했지만, 가족과 잘 지내는 자체만으로 일부의 사례가 된 것 같아 묘하게 기쁘면서도 또 이상하게 멋쩍었다.


 순과 내가 결혼 후 서로에게 참 감사해하는 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있겠지..?), 그 중 하나는 바로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같다는 점이다. 으레 대한민국에서의 결혼이란 개인과 개인의 사랑만큼이나 양 가족 간의 결합이 중요하다고 한다. 일례로 서로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잔잔한 칭찬이 흐르는 상견례 자리는 굉장히 상징적이면서 난해한 면이 있다. 제아무리 부모를 속 썩였던 자녀라도 그 자리에서만큼은 일등 금쪽이가 되니까. 사실 나도 결혼 전 방송이나 SNS에서 볼 법한 온갖 기상천외한 가족 일화들을 보며 지레 겁을 먹기도 했다. 온화한 인품의 시어머님이 결혼 후 돌변한다면?, 매일 시댁에 전화를 강제로 드려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사과를 토끼 모양으로 깎아야 한다면? 순은 따뜻한 밥을 먹고, 나는 찬 밥을 먹는다면..^^? 등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다행히도 지금은 시댁에서 편히 누워있기도 하고, 반찬을 해주실 땐 멋진 리액션을 발사해가며 즐거운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물론, 남편 순이도 우리 집에 내려 가면 우리 가족 앞에서 온갖 재롱을 부리며 친아들처럼 굴곤 한다. 가족간의 스킨십이 많은 순은 우리 부모님에게도 곧잘 포옹을 하곤 하는데, 처음엔 도통 어색해하고 뻣뻣하던 부모님도 이젠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이렇게 편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 복을 타고난 것과 양가 부모님의 지혜로움과 따뜻함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여기에다가 우리 둘다 가족들과 '즐겁게 지내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고, 인생에 있어 '가족'을 높은 우선순위에 둔다는 점이 매우 컸다.


 어릴 적부터 나는 '돈 벌어서 호강할게', '조금만 나아지면 효도할게'라는 말을 부모님께 뱉어본 적이 없었다. 처음 서울에서 아등바등 적응해갈 때도, 한 달에 10만 원 정도는 꼭 부모님께 이체했고 못해도 두 달에 한 번씩은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지금 생각해도 참 극진했던 그 시절의 나는, 잘난 효녀여서가 아니라 앞으로 내가 가족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늘 앞섰기에 가능했다.

가족과 멀리 떨어져 지내는 내가 한 달에 한 번 고향 집에서 머문다고 가정하면, 겨우 1년에 24일 정도 얼굴을 보는 것이다. 그것도 온전하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만을 계산한다면 1년에 단 20일 정도만 함께 살을 맞닿을 수 있게 된다. 12개월 중 1개월도 되지 않는 시간이다. 그러니 '조만간', '다음에'라는 말은 내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나는 내 몸이 무리 없을 때, 부모님이 조금이라도 젊을때 한 번이라도 더 보고 한 번이라도 더 웃는 것이야말로 리얼 효도라는 생각을 한다.


 매주 일요일이 되면 아빠는 가족들을 데리고 전국의 모든 곳을 데려다주셨다. 우리는 모든 집이 다 일주일에 한 번은 대한민국 탐험을 하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지낼 만큼, 아빠는 나에게 많은 세상을 보여주었다. 화려한 관광 패키지나 세련된 미식 나들이보다는 작은 텐트와 돗자리를 들고 깊은 산골이나 인적 드문 바다에서 우리 가족만의 추억을 20년 가까이 쌓아온 셈이다. 서른이 넘은 지금, 이젠 내가 엄마 아빠를 데리고 새로운 세상을 보여드리러 다닌다. 테이크아웃 커피보다는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아기자기한 카페로 데려가고, 마냥 비싸다는 이유로 거부하던 프렌치 파인다이닝이나 스시 오마카세도 가본다. 좋은 스펙의 휴대폰, 스마트 워치가 출시되면 그것들을 구매해 선물하기도 한다. 휴대폰은 전화만 잘 터지면 된다는 부모님도 새 기계를 들이면 아이처럼 좋아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내 효도와 사랑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내가 부모님에게 '이만큼'의 정성을 보내면, 다시 '이만큼'을 뺀 '나머지'가 내게 돌아온다. 이렇게 다시 받자고 좋은 걸 해드린 게 아니라고 볼멘 소리를 해도 결국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안엔 엄마가 챙겨준 것들이 차곡히 쌓인다. 언젠가 이런 사랑의 형태가 참 신기했던 나는 순에게 물었다. 왜 인간은 부모에 대한 사랑보다 자녀에 대한 사랑이 더 클까. 순은 그게 '내리사랑'의 힘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옛 속담에도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기는 좀처럼 어렵다고 했다. 정말 부모의 사랑은 자식의 사랑을 손쉽게 이기고야 마는 걸까? 이왕 내가 부모와 자식의 사이로 만나게 된 이상,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한 번쯤 겨뤄보는건 어떨까? 나의 끈질긴 사랑에 엄마, 아빠가 고개를 저을 때까지 진지하게 겨룰 수 있다면, 내가 먹고 자란 사랑만큼 하나하나 똑같이 되갚아(!) 주고야 말 것이다. 우리가 언젠가 헤어지고 또 만나지 못하는 날이 오더라도 한 줌의 아쉬움도 남지 않게, 진하고 뜨거운 사랑을 마구 보낼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 보낸 사랑에 억만 겹의 사랑을 더 보태서 말이다.



하나의 기왓장에 가족이 서로 다른 필체로 자신의 이름을 적으며 '행복'이나 '화목' 같은 말들을 적는 것이 보통이지요. 그 글자들을 하나하나 눈에 넣으며, 사람의 바람과 희망에는 이미 자신이 이루어낸 것들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행복하고 화목한 가족이 아니었다면 그 깊은 산사까지 여행을 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 기왓장에 소원을 쓴 가족은 이미 소원을 이룬 셈입니다. (박준, 계절 산문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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