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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y Jun 26. 2022

상냥한 에너지

조용하지만 힘이 있는 상냥인들을 만난 날



어제와 오늘,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그건 바로 '상냥함'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얻었다는 것. 보통 상냥하다는 말에는 (사람이나 그 태도가) 사근사근하고 부드럽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어쩐지 나는 친절하면서도 나긋한 이미지가 연상되는 이 단어를 다소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해왔다. 내가 생각하는 상냥한 사람이란 조건없이 친절하기만 하거나, 마음 속 깊은 곳까지는 잘 모르겠다는 편견이 있었던 것. 그렇게 살아가던 와중에, 이번 주말에 마주친 상냥한 사람들에게서 기묘한 에너지를 느꼈다. 그 썰을 풀어보자면..



첫 번째 만난 상냥인: 보라매공원 앞 상냥한 사장 A

푹푹 찌는 무더위에 도망치 듯 들어온 카페. 보드를 즐겨타는 듯한 사장 A는 까만색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웃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손님을 향해 인사를 나누며 내비친 미소는 몹시 근사하고 여유로웠다. 메뉴를 고민하고 있는 짧은 순간도 그냥 넘기지 않고 빤히 바라봐주고, 남편과 조용히 주고받던 작은 대화에도 기분좋게 참견해주던 그녀에게서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에너지를 감지했다.


커피를 받고 기분좋은 마음을 즐기고 있는데 출입구 쪽으로 귀여운 소리가 들렸다. 2살, 3살쯤 보이는 어린이 두 명과 젊은 어머니들이였다. 어린이용 킥보드와 유모차를 끌고오던 그들을 향해 사장 A는 빠르게 달려나갔다. 그리곤 유모자를 함께 들어주며 손님들을 맞았다. 아이들에게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던 그녀는 편안한 대형 좌석으로 그들을 안내하며 밝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몇 분 뒤, 강아지를 데려온 손님에게도 똑같은 말투, 똑같은 미소로 응대했다. 그 말소리에는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은 친절함이 있었고, 방긋 웃는 미소에는 순수함과 편안함이 있었다. 그녀는 단지 하루에 커피 몇 잔을 파는 카페 주인이 아닌, 자신의 세계에 방문한 사람들을 환대하는 호스트같았다.




두 번째 만난 상냥인: 연희동 골목의 상냥한 사장 B

작은 상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연희동 골목. 그냥 지나쳐버리기 좋은 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힙하거나 개성있다는 카페들을 2~3년 열심히 다녀본 결과, 결론적으로 내가 카페에서 기대하는 것은 '맛'이었다. 단지 핫하다는 포토스팟에서 사진만 남기고 올 것이 아니라면 다시 그 곳을 방문하고 애착을 가지게 되는 포인트는 절대적으로 '맛'에 달려있다. 이 카페 역시 냉철한 후기로 유명한 '카카오맵' 평점을 통해 알게된 곳이였다. 카페에 들어서자, 나무로 덧댄 낮은 천장 아래로 씩씩한 사장 B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라는 짧은 인사 한 마디를 듣자마자, (조금 과장을 보태) 이제껏 멋없는 카페에서 보낸 시간들이 안타까워졌달까.


아! 소문대로 커피는 맛있었고 몇몇 좌석엔 두 잔, 세 잔씩 비운 컵이 놓여있기도 했다. 사장 B는 잠시도 가만 있지 않고 분주했다. 작은 카페 안을 조용히 돌아다니던 그는 손님의 불편함을 감지하는 가드같기도 했고, 친근하게 말을 붙이는 동네 친구같기도 했다. 사장 B는 근처 편집샵에서 쇼핑을 하고 온 커플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는데, 그 화법이 굉장히 유쾌하고 인상적이였다. 보통은 당황할 법도 하지만 예의바르면서도 씩씩하게 말을 걸어오는 그의 말투에 손님들도 친근함을 느꼈을 터. 이것저것 물건들을 꺼내보이며 자랑을 하는 커플 손님에게, "아, 거기는 양말이 유명한 곳인데요. 제가 알기로 종아리나 발목의 컴플렉스를 보완해줄 정도로 디테일하게 만들었다고 해요" 라는 호기심을 불러오는 설명을 더했다. 손님들은 양말도 살 걸 그랬다며 웃었고, 한 동안 손님들과 사장 B는 마치 여러 번 만났던 사람처럼 박수를 치기도 하고 크게 웃기도 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눈에 띄게 행동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어쩌면 '상냥함'이란 내가 기필코 피하고 싶은 이미지였을지도 모른다. 상냥하다는 그 말이 마치 내향적인 사람, 소심한 사람들을 향해 마지못해 응원해주는 말이라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이제껏 나의 편협한 사고로 '상냥함'을 너무 낮게 평가해왔다. 이 세상엔 수많은 에너지가 있지만, 그 중 상냥한 에너지는 많은 이들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고 있었다.


이번 주말, 영화  주인공 같은  사장님을 만나며 안녕하세요나 감사합니다 같은 상냥한 에너지가 좋아졌다. 상냥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에겐 유해한 생각이 파고들  없는 단단한 내공과 풍요로운 마음이 있다. 나는 그런 그들이 부럽고  부러워졌다. 조만간 다시 돈쭐내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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