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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y Jun 12. 2022

죽이 되는 밥이 되는 주 4회 운동을 해보았다.

180일 간의 헬스번뇌기


평소 계획성과는 거리가 먼 나지만, 2021년 초부터 꾸준히 생각해오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주 4회 운동하기였다. 아마도 일년 전, 어떤 자극이였는진 모르겠지만 인생을 살면서 나 스스로의 약속 하나쯤은 평생 지키며 사는 것이 멋진 인간으로 가는 길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냉장고 앞에 달력을 붙이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일주일에 네 번만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참 잘했어요>의 성인 버전이랄까..


작년 처음으로 이 약속을 시작하고서 몇 개월은 참 잘했다. 운동을 다녀와서 달력에 '운'이라고 써두는 것과 한 달이 지난 뒤 '운'이 몇개나 적혀있는지 세어보는 일은 꽤 짜릿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겨울이 온 것이다.

작년 겨울엔 유난히 눈도 많이 왔었는데, 주로 남산에서 러닝을 했던 나는 눈이 오면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쉬움보단 아쉬운 척을 하게 되는 나를 보게 되었다. 추우면 혈액순환에 위험해, 눈이 오면 미끄러져서 안돼, 겨울엔 미세먼지도 의외로 많아.. 등 온갖 핑계를 만들며 주 4회 운동은 점점 주 3회, 그리고 주 2회까지 작아져갔다. 괜찮은 척, 숙원사업으로 운동을 마음 한 켠에 욱여넣고 연말을 보낸 2021년 12월. 이대로 가다간 멋없는 인간으로 역행하겠다 싶어,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래서 이번엔 좀 더 야심차게! 자본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돈이 아까우면 아까울수록 내 몸은 더 잘 움직인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그렇게 2022년 1월 1월, 순과 함께 동네 헬스장에 연간 이용권을 등록했다. 마침 헬스장은 코로나로 사람도 한적했고, 신규 회원모집 이벤트도 있어 등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pt 레슨을 슬쩍 영업하는 직원에게 정중히 no라고 대답한 후, 우리는 실내운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헬스장에 골프연습장이 함께 있었는데, 순은 이 기회를 틈타 골프도 함께 배워보자고 나를 유혹했다. 나역시 지금이 아니면 영영 골프를 배울 일이 없을 것 같아 그러기로 했다. 골프까지 신청했기에 나는 헬스장을 가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


올해 운동의 목표는 역시 간단했다. 계속해서 주 4회 운동만 지켜나는 것. 눈발이 휘날리던 1월, 말그대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밥솥에 취사버튼만 누르자는 심정으로 꾸역꾸역 헬스장으로 나갔다. 처음엔 런닝머신 위에서 오랫동안 뛰는게 왜 이리 지치고 또 짜증이 나던지. 지하 헬스장에서 소리없이 흐르는 예능을 보며 뛰는 일이 너무나 심난했다. 그럴 때마다 순은 내게 일단 하면 된다, 조금씩 꾸준히만 해보자고 코치처럼 날 달랬다. 순 선생님과 나는 참 부지런히도 운동을 다녔다. 일이 늦게 끝나도, 일찍 잠에 들고 싶어도, 저녁 약속을 다녀와서도, (심지어^^) 소소한 부부싸움을 하고나서도 같이 헬스장으로 향했다.


오늘 일요일인데 아직 1회 남았어..^^


그렇게 6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런닝머신 위에서 40분 정도는 가뿐히 뛸 수 있게 되었고 어느 정도의 높낮이와 속도를 내면 내 몸이 땀을 팡팡 내는지도 알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내어, 조금씩 무산소 운동도 병행하게 됐다. 처음엔 순이 하는 걸 옆에서 쭈뼛쭈뼛 따라하기만 했지만, 이젠 혼자서도 어깨와 가슴, 그리고 허리와 허벅지에 어떻게 자극을 줄 수 있는지 터득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 내 몸의 두 배나 되는 덤벨을 번쩍 들어올리는 멋진 헬스인은 아니지만, 내년 쯤엔 또 그 세계에 입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득근득근하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몸을 일으켜 일년치 나의 소중한 돈이 저축된 헬스장으로 나가는 자체가 운동의 전부였다. '헬스장에서 주 4회 운동을 한다'는 명제에는 그 어떤 핑계도 쉽게 먹히지 않기 때문. 눈과 비가 쏟아져도 헬스장은 안전했고, 너무 덥거나 추워도 헬스장은 산뜻했다. 핑계를 댈 수 없다는 그 작은 포인트가 나를 움직이게 하고 또 단련시켰다. 싱거운 도출이지만, 정말 그게 전부다. 덕분에 나는 크게 살찌는 것 없이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고, 주 4회 운동을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를 칭찬할 수 있게 됐다.(현대 사회에서 나를 칭찬해주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요? 정말 개이득입니다.)


물론 아직도 헬스장 가는 발걸음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무겁고, 안갈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찾아보려 머릿속은 바쁘다. 하지만 일단 가면 된다. 아무런 생각없이 도착해서 회원카드만 입력하면 된다. 그때부턴 자랑스러운 순간이 코앞으로 점점 다가오며, 재미없는 런닝머신도 나만의 안식처가 된다. 현란하게 움직이던 예능화면을 off로 꺼두고 오늘 한 일, 내일 할 일,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모든 일들을 상상하며 까만 화면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는 것. 그것을 기점으로 나는 자랑스럽고, (스스로에게) 사..랑스러운 인간이 된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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