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촉장] 연말까지 100일이 남았습니다.
올해를 마무리할 때 '가장 놀란 소식 best 5'를 꼽는다면 단연 두 가지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는 부모님이 운동을 시작했다는 점과, 또 하나는 아빠가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케케묵은 이야기일 순 있으나) 낯간지러운 것들을 배척했던 경상도 부모님이 자발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는 첫 번째 소식은 쇼킹 그 자체였다. 내가 열변을 토하며 운동을 권할 땐 숨쉬는 것도 운동이라며 대화를 차단했던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더욱 놀라웠던 건 운동 종목이었다. 으레 난생처음 운동을 시작한다고 하면 가벼운 조깅이나 홈트레이닝으로 시작할 법 한데 엄마는 과감히 6개월 치 헬스장을 등록했고, 아빠는 체형교정 필라테스를 배우러 문화센터로 향했다.
'두 분의 종목이 바뀐 것 같은데...' 하고 잠시 생각했던 나도 한낱 평범한 사고의 인간이다.
어쨌든 엄마는 생각보다 헬스장을 잘 다니셨다. 무릎이 아프시진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뼈가 굵고 근육이 큰 엄마에게 러닝머신 사이즈는 좀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아빠 역시, 스트레칭 도구까지 준비해 예/복습까지 하신다고 하니 괜한 참견을 했었구나 하는 머쓱함마저 들었다. 그래. 나만 잘하면 되는구나.
부모님의 운동에 이어 아빠는 기타까지 배우기 시작하셨다. 아마도 문화센터의 합리적인 레슨비용과 비슷한 연령대의 아버님들 사이에서 학구열 같은 것이 불타셨던 것 같다. 정확히 내 나이 31살까지도 아빠와 기타의 조합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그림이다. 추석 때 방문한 고향 집에서 아빠의 연주를 지켜봤다. 연주라기엔 아직 걸음마 단계인 손짓에 불과했지만, 그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수업마다 배운 코드들을 써 내려간 악보엔 누가봐도 명백한 60대 어른의 글씨가 있었다. 가나다라를 처음 배우는 어린이의 마음같이 설렘과 서툼이 동시에 묻어있는 글씨였다. 아빠의 첫 연주회가 언제인진 기약할 수 없지만, 도레미파솔라시도를 튕기는 모습에서 난 이미 큰 감동을 받았다. 솔직히 좀 울컥해서 큰일날 뻔했다!
'처음'이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좋다. 사회인 8년 차, 내게 '처음'은 조금씩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마주한 '처음'은 여전히 뭉클하고 산뜻한 것이었다. 고유한 분위기는 결코 바뀌지 않는 유럽의 여느 나라들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 것.
앞으로 대략 100일 뒤면 12월 말이 온다고 한다. 수많은 100일의 기적을 일궈낸 일상의 영웅들처럼, 많은 이들이 '처음'을 시도했으면 좋겠다. 100일 후의 성과와 관계없이, 함께 시도하는 100일 동안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건네준다면 그 어떤 겨울보다 더욱 낭만적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