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나라면 받아들이겠어요.
요즘 내 남편 순은 (자칭)철학가의 삶을 살고 있다. 아마도 여행 후 소소한 득도를 해버린 것이 틀림없는데, 매일 골똘한 표정으로 '인생이란 뭘까', '인생이 뭐냐면'을 주제로 1시간 이상 말을 한다. 매일 1시간 분량의 이야기를 팀장, 부장 이외에 경청해본 적 있는가? 리스닝에 강한 내가 공감봇(bot)이기에 망정이지, 사실 순의 이야기는 매우 추상적이고, 매우 어렵다. 그렇다. 이건 나 스스로에 대한 셀프칭찬이자 생색이다.
파핫핫!
사실 순의 이야기에 나도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바다. 순은 요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가만히 두기'에 푹 빠져있다. 일종의 '내려놓음', 비움'과도 같은 맥락으로 늘 계획과 할 일이 넘치던 그에게 이런 시도는 매우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셈이다. 순이 한결같이 강조하고 있는 '무위'의 삶은 니체가 좋아하는 주제이기도 했다. 관조와 명상을 삶의 철학으로 삼던 니체처럼,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만히 있는 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불안을 이기지 못해도 괜찮고, 조금 더 나아지지 않아도 상관없다. 평생 불안과 함께 발맞춰 걷는 삶이라도, 지금 이대로 계속 머무는 인간이라 해도...
뭐 어쩌겠는가?
그게 나다. 부정하고 싶겠지만, 그게 나인 걸 어떡한담. 그리고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못난 모습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마음이 가벼워진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된다면 한 번 속는 셈 치고 시도해보시길 바란다.
이런 걸 보면 세상이 참 웃긴단 생각이 들다가도 인생이란 마냥 고통은 아닐 수도 있겠단 희망도 든다.
순이 말한 것처럼 어쩌면 이것은 (참된) 종교인의 마음과도 같을 것이다.
신에게 내 희망 사항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생긴 그대로 살 수 있는 힘을 되뇌는 것.
많은 사람들이 생긴 그대로 살아갈 때 가장 충만한 행복을 느낀다.
이렇게 명쾌한 사실을 이제야 알아버려 조금은 억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