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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y Nov 23. 2022

환영한다! 모든 감수성을!

참을 수 없이 솟구치는 마음을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짙은 주황색과 밝은 갈색들같이 빈티지한 색감이 거리를 메우는 계절은 매우 위험하다. 노랗게, 빨갛게 옷을 갈아입는 풍경을 환하게 바라보다가, 땅으로 힘껏 낙화하는 모습도 바라만 봐야 하는 담담한 계절!

11월 말은 어쩐지 쓸쓸함과 외로움이 잘 어울리는 시기라 연말의 설렘을 느끼기엔 조금 이르다. 제철 과일을 찾아 먹는 것이 흥미롭듯, 감정에도 제철이 있다면 아마 그것은 '감수성'이지 않을까. 감수성 가득한 여고생. 이 수식어만큼 소싯적의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몇 없을 것 같다. 고향 집에서 가끔 튀어나오는 그 시절의 내 일기장은 비극적인 장편소설 여주인공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니까...


 성인이 되고 사람들과 부대껴 살며 종종 감수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땐 나도 모르게 움찔하고 놀랐던 적이 있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식은땀이 나고 민망하달까.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칭찬도 썩 유쾌하지 않았다. 나에게 감수성은 철없는 사람의 낮은 자존감, 부끄럼 많은 소녀의 도피 정도로 생각되던 날이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최근 나는 이 감수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지 서서히 알아가고 있다. 'Be kind'라고 간절히 외치는 웨이먼드처럼 누군가에게는 이 순수한 감수성이 한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 일 년 만에 다시 만난 붕어빵 가게, 혼자 술을 마시는 어른들, 심야의 공중전화부스, 바스락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 이런 것들을 발견하면서 살아간다.


 평일엔 아주 잠깐 바깥 공기를 쐬며 살다가, 주말이 되면 또 바삐 혹은 느리게 쉬어가는 일상에 감수성마저 없다면 우린 모두 바짝 말라버리곤 말 것이다. 군중들 속에서 혼자만의 풍경을 보고 귀에 익은 소리를 듣는다. 많은 사람과 뒤섞여 다니다가도 마음이 일렁일렁 자주 흔들리고, 어딘지 모르게 터질 것 같은! 묘한 분위기에 휩싸이는 건 두근거리는 일이다. 깊어가는 가을, 자주 오지 않는 이 기회! 참을 수 없는 모든 감수성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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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민감했던 철학가, 괴테의 감수성 가득한 글을 부치며.

겨울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없을 정도로 정원의 상록수가 푸르다. 태양은 밝게 빛나며, 북쪽 저 멀리 산등성이를 뒤덮은 눈이 보인다. 정원 벽을 따라 심어진 레몬 나무는 서서히 갈대로 뒤덮이고 있지만, 등자나무는 아직 갈대에 덮이지 않은 채 서 있다. 이 나무에는 더없이 실한 열매나 수백 개 달려 있다. 독일에서처럼 잘 깎여 손질되거나 화분에 심어진 것이 아니라, 비옥한 땅에서 자유롭고 무성하게 우거져 여러 나무와 사이좋게 어울려 있다. 이런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상상할 수 없다.


완주 대아수목원에서 본 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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