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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내 마음 속 1등 브이로그

예진문 브이로그

by stay


밤 늦은 시간, 유튜브를 골똘히 보고 있는 내게 남편은 뭘 그리 열심히 보냐고 종종 묻는다. 집중력이 짧은 내가 볼 수 있는 미디어류로는 '브이로그'가 유일하다. 그럴 때면 남편은 왜 브이로그를 저렇게 열심히 보고 즐거워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브이로그가 유튜브에 등장한 지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마치 스타들의 셀프 카메라만이 유일했던 시대를 건너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의 일상을 십오분 남짓한 시간 동안 시청한다는 것은 다소 비일상적이긴 일이긴 하다.


나는 정말 많은 브이로그를 보고 또 그들의 삶에 영감을 받는다. 그 중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들은 자신의 직업에 완전히 몰입한 사람, 전원 생활을 수고스럽게 해내는 사람, 부모님이나 가족들과 유쾌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일상이 곧 예술이 된다는 말이 아마도 이런 사람들의 영상을 보며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 중에 '예진문'이라는 사람의 브이로그를 알게 됐다. 평소 oth, 라는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냥 평범한 셀러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아래의 브이로그를 보고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끈기있는 삶. 아마도 오랫동안 내 마음 속 1등 브이로그가 될 것 같다.



https://youtu.be/9PJLpucSWgw


이 브이로그에 등장하는 주제는 '서울에서 집 구하기'라는 콘텐츠다. 나역시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친구집, 하숙집, 4평 원룸, 7평 원룸 등 정말 많은 동네의 집에서 살아봤다. 브이로그에 나오는 말처럼 "그 돈으로 집을 구하겠다고?", "그 돈으론 안돼요" 같은 중개인들의 냉정한 말도 숱하게 들어왔다.


지금은 남산 아래 남편과 작은 전세집을 구해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나 역시 로망이 있는 집이 있다면 '숲이 보이고, 새소리가 들리는 집'이다. 예진님도 똑같이 이 얘기를 하면서, 만약 그게 여의치 않다면 창문 앞에 나무 한 그루만 있어도 좋겠다고 말을 이어갔는데 나 역시도 1000% 공감하는 말이다. 예진님은 결국 1억으로 숲이 보이고 새소리가 들리는 전세집을 구했다. 깨어있는 18시간 중 10시간을 집 구하는 데에만 투자한 결과였다. 한 달 가까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지 눈에 훤했다.


브이로그 중반에는 예진님의 부모님 이야기도 나온다. 아버지는 "1억이 아니라 더 많은 돈으로 부동산을 가면, 네 입맛에 맞는 집을 알아서 구해줬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미안함을 표현했고, 다음날 어머니는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메시지를 남겼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예진님은 마음이 찢어들 듯 아프다고 했다.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하면서, 시공이 마무리 되지 않은 부엌을 처리해야만 했는데 예진님은 집주인과의 협의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면서 언제 이런 공사를 해보겠냐는 마음으로 직접 수리를 했다. 고생스러운 일은 늘 재미있다고 말을 덧붙이면서. 이 브이로그는 정말 평범한 브이로그가 아니라는 것을 후반부에서 확실히 알게 됐다. 영상들 위에 밑줄을 그을 수 있다면 정말 많은 표식이 태어났을 것이다.


영상이 마무리되면서 청주에 계신 예진님의 부모님이 딸의 집을 구경하는 장면이 나온다. 큰 움직임 없이 집을 한 번 훑어보고 다시 내려가셨다고 한다. 나는 이 때의 부모님 마음을 알 것만 같다. 나 역시 4평짜리 원룸을 구했을때 그 좁은 방을 엄마, 아빠가 들어와 창문은 단단히 닫히는지, 뜨거운 물은 마음껏 나오는지만 확인하고 조용히 내려가셨다.


1억에 집을 구한다는 것이 어느새 이상한 일이 되어버린 요즘이지만, 예진님은 결국 숲이 보이고 새소리가 들리는 전세집을 구했다. 그리고 10분에 한 번씩 방을 둘러보며 기뻐한다고 한다. 얼마나 기쁠고 신날까.

자신만의 둥지를 갖는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로망이 실현되는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은 이렇게나 감동적이다. 그 어떤 초고층 아파트나 고급 빌라보다 더 마음이 가고 사랑스러운 집. 나는 오늘 이 브이로그 한 편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에세이를 읽은 것만 같다. 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치열하면서 뭉클한. 정말 평범한 소설같은 일이구나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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