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의 말을 해석하며 느낀점
"좋아하는 걸 많이 해봐!"
태어나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을 순에게 들은 날은 지난 주말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져라/좋아하는 일을 꾸준히해라.. 같은 비슷한 말들은 들어본 것 같고, 잘하는 걸 해보라는 말이 아니라 안심이긴 한데 좋아하는 걸 '많이' 하라는 건 분명 좀 이상하다.
왜 이상할까?
순을 가장 잘 아는 아내로서 그 이유를 발라내려 해도, 문맥 상 특징이 돋보이는 점도 없다. 한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간 순과 내가 한참 고민하던 주제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순은 언제부턴가 사람은 왜 사는지, 삶과 죽음의 정체는 무엇인지, 종교는 왜 필요한지와 같은 철학적인 고민에 빠져있었다. 웬만한 고민 상담에 능숙한 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답을 주지 못한 건 처음이었다. 날 번뇌에 빠지게 한 타인은 당신이 처음이야..
도움을 주지 못해 속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순이 그 고민 속에 오래 머물며 멋진 해답을 찾길 바랐다. 순이 찾은 답이라면 분명 내게도 큰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물론, 순이 나에게도 그 답을 공유할 것이란 전제하에)
한 계절이 지나고 나서야 순은 답을 슬슬 찾은 듯했다. 결코 작지 않은.. 그의 머릿속에 고민 목록이라는 게 들어 있다면 경쾌한 밑줄이 하나씩 그어지고 있을지도.
추측건대, 순은 좋아하는 일을 '많이' 해보는 걸로 가닥을 잡은 듯했다. 그 후로 순은 오랫동안 입에 달고 살던 웹툰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유독 청춘 소재를 좋아하는 순은 자신의 글과 그림으로 청춘 시리즈를 만들어 보고 싶어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이 센건지, 순은 마치 미쳐버린 천재처럼 시나리오를 술술 쓰고 등장인물을 쓱싹 그려냈다. 그리고 그의 작업물은 아이패드 속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 내 나이 서른 넘어 돈방석에 앉는다는 말이 이것을 말하는 걸까..
어쨌든, 지난 주말 순이 내게 건넨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일을 많이 하게 될까? 이 작은 고민 하나로 마음이 뜨겁고 신난다. 우리집 천재처럼 뚝딱 붓질을 할 수는 없지만, 이 동네에 거주할지 모르는 신동처럼 소소한 결과물을 낼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